[글로벌 위크엔드]‘패션 골든벨’을 울려라

  • 입력 2006년 8월 18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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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들의 치열한 경쟁과 내면 세계를 클로즈업해 인기를 끌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의 이미지.사진 제공 박새나 통신원
디자이너들의 치열한 경쟁과 내면 세계를 클로즈업해 인기를 끌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의 이미지.사진 제공 박새나 통신원
후보로 참가한 디자이너가 재봉틀로 작업하고 있다. 사진 제공 박새나 통신원
후보로 참가한 디자이너가 재봉틀로 작업하고 있다. 사진 제공 박새나 통신원
뉴욕의 하루는 패션에 대한 찬사로 시작된다.

“벨트가 너무 멋져요.” “오늘 멋진데요. 그 셔츠 어디서 샀어요?”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 자주 이런 대화를 나눈다. 이처럼 유달리 패션에 관심이 많은 뉴요커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프로그램이 있다. 미국 NBC가 운영하는 케이블 채널 ‘브라보 TV’의 ‘프로젝트 런웨이(Project Runway)’다.

3월부터 방영된 ‘시즌 2’의 마지막 편은 340만 명이 시청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7월에는 ‘시즌 3’이 시작됐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15명의 디자이너가 각축을 벌인다. 우승자는 유명 잡지 ‘엘르’에 소개되고 상금으로 약 1억 원을 받는다.

심사위원은 유명 디자이너 베라 왕 씨, 부동산 재벌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 씨의 딸 이방카 트럼프 씨, ‘엘르’의 패션에디터 니나 가르시아 씨, 인기모델 하이디 클룸 씨. 이름 하나만으로 세계 패션계를 움직일 수 있는 거물들이다.

이 프로의 매력은 무명의 디자이너가 패션 거물과 방송의 힘을 빌려 단숨에 미국 패션계의 새 얼굴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점. 카메라는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화면에 담는다. 큰 사건이나 사고를 다루는 리얼리티 프로가 아닌데 무슨 볼거리가 있겠느냐고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부와 명예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후보들의 모습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화면 구성은 이렇다. 후보 디자이너들이 묵는 곳은 패션의 중심인 맨해튼 38가의 초고층 호화 아파트. 아파트의 통유리를 통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 화려한 야경이 펼쳐진다.

맨해튼에 동이 트면서 바쁘게 출근하는 뉴요커들의 모습 위로 모닝커피가 끓는 장면이 겹쳐진다. 디자이너들에게는 숨 막히는 하루가 시작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알리는 편지가 도착하고 디자이너들은 약속 장소인 센트럴 파크로 떠난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 패션학과의 학장 팀 건 씨가 디자이너들의 조언자(Mentor) 역할을 맡았다. 그는 엉뚱하게도 시추, 치와와 등 개성이 다른 애완견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의 주문은 간단하다. 개를 데리고 가는 여성의 패션을 만들라는 것. 중요한 것은 개에게도 어울리는 의상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통일된 의상과 라이프스타일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디어 스케치에서 옷감을 비롯한 재료 구입과 작품 제작까지 주어지는 시간은 단 24시간이다. 옷 제작이 끝나면 모델 캐스팅부터 헤어와 메이크업 등 전체 패션이 완성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보여 줘야 한다. 후보들은 심사위원 앞에서 자신의 옷을 입을 여성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개를 데리고 어디로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등 구체적인 스토리와 장면을 제시하고 평가를 받는다.

이번 시즌에는 다른 배경과 스타일을 가진 15명의 디자이너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색 경력의 소유자도 있다. 세 아이의 엄마이면서 건축가로 일하는 42세의 여성, 하버드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하이테크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등이 도전장을 냈다.

이 프로그램이 뉴요커들을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TV 앞으로 불러 모으는 것은 다른 어떤 리얼리티 프로와도 차별화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들은 승자가 되기 위해, 상금을 얻기 위해, 혹은 TV에 나오기 위해 참여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스스로 아름답다고 믿는 것을 만들어 내는 순수함을 보여 준다. 다른 디자이너와의 경쟁을 통해 자신이 스스로 생각했던 것만큼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한다. 창조적이면서 개인적이고, 그러면서도 실제로 존재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예상을 뒤엎는 문제도 나온다. 몇 주 전에는 각자의 방에 있는 침대 커버와 커튼을 이용해 옷을 만들어 내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변호사 스티브(36) 씨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절로 손에 땀이 난다. 비슷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이 다른 시각 속에서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이 눈을 뗄 수 없게 한다”고 말했다.

카메라는 디자이너들이 영감을 얻는 단계에서 출발해 아이디어 스케치와 다양한 모양의 천을 오리고 꿰매는 모습 등을 꼼꼼하게 보여 준다. 옷 하나를 만드는 과정을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면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욕망, 좌절을 함께 보여 주는 것이다.

뉴욕은 뭔가를 창조하고 싶다는 욕구를 꿈틀거리게 만드는 ‘욕망의 도시’다. 많은 이가 승자가 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섹스 앤드 더 시티’가 뉴욕 여성의 삶과 패션을 스타와 드라마로 풀어내고 있다면, ‘프로젝트 런웨이’는 ‘진짜’ 디자이너의 숨은 노력과 열정을 통해 또다시 뉴욕을 세계에 소개한다.

뉴욕=박새나 통신원 패션디자이너 saena.park@gmai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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