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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위크엔드]샹송이 흐르는 아이스크림

입력 2006-07-28 03:00업데이트 2009-10-0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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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리노’의 샌드위치 젤라토(왼쪽)와 콘 젤라토를 들고 있는 여고생들. 3, 4종의 아이스크림을 끼워 주는 샌드위치 젤라토는 식사 대용 간식으로 인기다. 파리=김현진 사외기자
올해 파리의 여름은 잔인할 정도로 덥다.

기온이 체온에 가깝게 치솟으면서 더위를 견디지 못한 노인들의 사망 소식이 들려온다.

파리에는 에어컨을 설치한 가정이 드물다. 선풍기조차 없는 집이 허다하다. 대비가 안 돼 있으니 갑작스러운 무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파리에서도 아이스크림은 더위를 식히는 필수품 가운데 하나다.

수은주가 30도를 훌쩍 넘긴 23일 오후. 파리 생제르맹 데 프레의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가게 ‘아모리노’ 앞에는 10m 넘게 인파가 줄지어 있다. 외국 관광객에게도 잘 알려진 이 가게는 파리에서는 드물게 이탈리아 정통 아이스크림인 ‘젤라토’를 맛볼 수 있는 곳. 근처에 하겐다즈, 벤 앤 제리 등 경쟁업소가 있지만 유독 아모리노에만 손님이 몰린다.

아모리노에서 아이스크림을 맛보려면 땡볕에서 20분가량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도 아이스크림을 콘 위에 꽃잎 모양으로 얹어 주거나 빵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워주는 재미 때문인지, 아니면 워낙 유명한 맛 때문인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가게 문을 나선다.

2002년 생 루이 섬의 작은 가게에서 시작해 파리에 7개의 체인점을 갖고 있는 이 브랜드의 성공 비결은 맛과 고급스러운 이미지다.

그 역시 새로운 아이스크림 브랜드를 만들려고 하는 도로시 클로저 씨는 “사실 아모리노는 이탈리아에는 없는 브랜드인데도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이미지를 내세워 쌀, 요구르트처럼 동네 슈퍼마켓에선 살 수 없는 특이한 맛을 선보여 인기를 끌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 가게가 인기를 끌기 전까지 파리의 아이스크림 맛에는 ‘진보’가 없었다. 아이스크림 브랜드가 독자적으로 매장을 열고 맛이나 콘셉트로 경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제한된 몇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사다가 가정이나 식당에서 즐기는 게 파리지앵의 아이스크림 문화였다.

60대 주부인 아니 비리오 씨는 “수십 년 전부터 5가지 맛의 기본적인 아이스크림을 집에 사다 놓고 그 위에 초콜릿이나 딸기 시럽을 뿌려 먹었다”면서 “아이스크림을 테이크아웃해 먹는 것은 전통적인 파리지앵에게는 아직 낯선 문화”라고 말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업자들도 유동인구가 많고 임차료가 비싼 파리 중심지에 계절을 많이 타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여는 것을 모험으로 여겼다. 게다가 5년 전까지만 해도 파리의 여름이 요즘처럼 덥지 않았기 때문에 한철 장사만으로 충분한 수익을 거두기가 힘들었다.

최근 몇 년 사이 갑자기 더워진 날씨와 독특한 브랜드의 성공스토리는 바닐라, 딸기, 초콜릿, 피스타치오 등 기본적인 맛에만 집중해 온 파리의 아이스크림 업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요즘 트렌드는 아이스크림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를 과감하게 쓰는 것. 매운 겨자소스, 누린내가 심한 치즈, 심지어 굴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까지 등장했다.

요리사 7000여 명의 주문을 받아 약 1200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개발하고 있는 아이스크림 회사 폴쉬드는 최근 시큼한 식초 맛이 나는 발사믹 비니거 아이스크림을 내놓는가 하면 풀 향이 나는 셔벗을 개발하기도 했다.

독특한 디저트가 주특기인 레스토랑 제피르의 요리사 뤼도빅 으네 씨는 “몇 해 전만 해도 이처럼 특이한 맛의 아이스크림은 금기시됐지만 이제는 이런 맛을 꺼리는 손님이 드물다”고 말했다. 그는 푸아그라(거위 간) 한 조각을 씁쓸한 맥주 맛이 나는 셔벗과 곁들여 내놓거나 땅콩 맛의 크렘 브륄레를 노린내가 심한 치즈 아이스크림과 매치하는 등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맛의 조화를 시도한다고 설명했다.

맛뿐 아니라 먹는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월드컵 축구 응원을 하러 독일에 갔다가 그곳에서 인기를 끄는 ‘스파게티 아이스크림’이나 ‘라자냐 아이스크림’을 맛보고 똑같은 메뉴를 요구하는 손님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스파게티의 가늘고 긴 면발처럼 뽑아 그릇에 담고 그 위에 다양한 맛의 소스를 끼얹거나,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라자냐처럼 물결 모양으로 담고 그 위에 초콜릿 가루 등을 뿌리는 방식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무리 독특한 맛의 아이스크림을 선보이는 가게라도 손님들이 맛을 평가하는 기준은 바닐라와 딸기, 피스타치오 등 ‘기본 맛’이라는 것. 기본기가 뛰어나면 다양한 변주에도 무조건 믿음을 준다는 얘기다.

파리에서 프랑스와 아시아식 퓨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엘레나 라마 씨는 “아이스크림은 감성적으로 ‘어린 시절’과 맞닿아 있다”며 “‘기본 맛’은 어린 시절부터 맛본 익숙함으로, 새롭고 독특한 맛은 호기심 충족이나 일종의 놀이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파리=김현진 사외기자 kimhyunjin5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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