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시대 가로지르기]<5>자연과학-인문학은 남남인가

  • 입력 2004년 3월 21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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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홍성욱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인문계와 이공계의 지나친 이분법이 학문적 창의성을 가로막고 있음은 물론 ‘이공계 위기’를 불러온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영대기자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홍성욱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인문계와 이공계의 지나친 이분법이 학문적 창의성을 가로막고 있음은 물론 ‘이공계 위기’를 불러온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영대기자
《20세기는 자연과학의 세기로 불린다. 그만큼 자연과학이 우리 일상을 지배한다. 21세기는 그런 자연과학이 인문 사회과학적 공간을 압도하는 두 사건으로 시작됐다. 인간배아복제는 ‘신의 영역’에 대한 도전 논란을 일으키면서 윤리적 판단에 대한 사유가 더 이상 자연과학의 밖에 머물 수 없음을 일깨워줬다. 또한 9·11 테러는 ‘핵무기를 쥔 테러리스트’라는 인문학적 상상의 악몽이 현실을 지배하게 됐음을 선포하는 사건이었다.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과학기술사를 가르치다 지난해 서울대로 옮긴 홍성욱 교수(과학기술사)는 자연과학적 시각과 인문학적 통찰은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창이 아니라 하나의 창구를 향한 겹창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 이공계와 인문계로 나누는 구분은 다분히 학사 편의적 발상인데도 평생 따라다니며 세상 보는 눈을 제한할 만큼 구조화됐습니다. 어릴 때부터 수학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는 등 자의적 기준만으로 이공계와 인문계로 구분해요. 이렇게 나눠지면 인문계 쪽은 자연과학은 몰라도 된다고 하고, 이공계쪽은 인문학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홍 교수는 이런 현상은 지극히 20세기적인 것이라며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 뉴턴과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영역 파괴’를 예로 들었다.

“뉴턴은 자신을 자연과학자가 아닌 철학자로 생각했습니다. 자연의 이치를 파악하는 과정을 신의 섭리를 이해하고 이를 널리 전파하는 행위로 인식했지요. 괴테는 이와 반대로 시인보다 과학자로서 자부심을 지녔습니다. 그는 특히 색깔이 빛 속에 있다는 뉴턴의 광학이론을 비판한 저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어요.”

이처럼 좁았던 뉴턴과 괴테의 거리는 사회가 분업화 전문화하면서 엄청나게 벌어졌다. 과학 용어를 이론에 적용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와 과학사회학자를 격렬하게 비판했던 미국 물리학자 앨런 소칼의 저서 ‘지적 사기’는 그런 분열증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철학자나 사회학자가 자연과학 용어를 부풀려 사용하거나 오용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자연과학자가 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채 비판하는 일도 많아요.”

1990년대 중반 소칼의 비판 이후 서구에선 자연과학자와 과학사회학자간 논쟁이 이어졌고 그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양진영의 논쟁을 공동 정리한 최근작 ‘하나의 문화(the one culture·재이 A 래빈저, 해리 콜린스 공저)는 오해를 인정하고 상호이해가 이뤄지고 있음을 털어놓고 있다.

인간배아복제를 둘러싼 윤리적 고민이나 영화 ‘매트릭스’ 등에 등장하는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적 시각이 왜 함께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

자연과학에 대한 인문학의 공포는 자연과학의 발전을 반영하지 않고 고정 관념화된 채 확대 재생산된다. 1960년대에 제기된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는 40년이 흐른 지금도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인지심리학이나 인공지능 연구는 감정의 문제 때문에 인간과 똑같은 인공지능의 탄생이 요원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인간배아복제 논란에서 보듯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기술의 발전에 걸맞는 제도적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지요.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와 과학자가 한 테이블에 앉아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노력을 계속 해야 합니다.”

홍 교수는 국내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공동으로 연구하는 학풍이 하루빨리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외국 학계에서는 이미 이 같은 학풍이 보편화돼 있다. 인터넷 혁명기에 주목받는 젊은 자연과학자 중 한 명인 미국의 피비 생거스는 컴퓨터과학에 들뢰즈의 정신분석학을 접목시켰다. 미국의 네트워크 이론가 던컨 와츠는 물리학자에서 사회학자로 변모했다. 캐나다의 세계적 철학자 이안 해킹도 물리학을 전공했으나 프랑스 철학자 푸코의 이론을 자연과학에 접목시켰다.

“한국에서는 전공을 크로스오버했다는 사실을 감추려 합니다. 학부가 어디냐를 따지는 ‘혈통주의’ 때문이지요. ‘혈통주의’는 21세기적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반드시 버려야 할 후진성입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틀에 갇힌 사고가 이공계위기 불러”▼

홍성욱 교수는 이공계와 인문계의 깊은 골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대학교육의 개혁을 강조한다. 그는 대학이 전문가보다 교양인을 키우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교양인은 백과사전적 지식을 지닌 이를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이공계 학생도 인문학적 사유를 할 수 있고, 인문계 학생도 자연과학의 시각에서 사물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전문가는 석 박사 과정에서 길러내면 됩니다.”

그는 이공계의 위기가 이공계 출신을 그 틀 안에만 가둬 두는데서 비롯됐다고 본다. 이공계 출신 중 일부는 엔지니어나 과학자로 남고 다른 이들은 관리자나 조직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 실험실에 갇혀 있다보면 인간 사회의 맥락에 따라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문사철(文史哲)의 통찰력을 함양할 수 없게 된다는 게 홍 교수의 지적이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졸업 후 곧장 쓸 수 있는 인재를 키워달라’는 기업의 요구와 배치된다. 그는 이에 대해 “요즘 기술의 평균 교체기간은 7년에 불과하다. 대학 졸업 후 당장 써먹을 인재를 찾는 것은 결국 7년만 써먹겠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기업에게 필요한 인재는 당장 써먹을 전문 인력보다 끊임없는 변화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과 이질적 요소를 결합할 수 있는 창의성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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