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속의 얼짱·몸짱]<5>에로틱한 남자

  • 입력 2004년 2월 1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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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미와 여성미를 동시에 갖춘 아름다운 남자, ‘메트로 섹슈얼’의 인기가 꽃미남의 아성을 넘보고 있다. 수려한 외모와 근육질 몸매, 세련된 패션감각을 지닌 메트로 섹슈얼의 전형은 누구일까?

멀게는 전설적인 록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에서부터 가깝게는 영국 축구 스타 베컴,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축구선수 안정환과 탤런트 권상우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사실, 메트로 섹슈얼의 원조는 고대 미술작품에 있었다. 2500년 전 그리스 미술품들은 양성애(兩性愛)적 매력이 넘치는 메트로 섹슈얼이 독점했다. 당시 그리스 미술의 영원한 테마는 아름다운 남자 누드였으며, 예술가의 임무는 그 완벽한 육체미를 찬양하는 것이었다.

그리스인들이 이처럼 양성애를 지닌 미소년을 신처럼 숭배한 것은 인간은 성별을 초월할 때 가장 완전하고 고결한 존재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매혹적인 미소년은 중세의 억압에서 해방된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도 예술의 주인공으로 맹활약을 했다.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1513년 작). 교황의 묘 앞에 세우기 위한 역작으로 육체에 맞서는 영혼의 투쟁을 상징한 것이지만 에로틱한 남성미를 보여준다. 웃옷을 걷어 올린 채 한 손은 올리고 다리는 수줍게 오므린 죽어가는 노예의 에로틱한 아름다움은 남성적 육체미와 여성적 관능미를 함께 보여준다. 사진제공 이명옥씨

첼리니, 도나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기라성 같은 천재들이 앞 다투어 남성미에 농염한 여인의 체취를 풍기는 에로틱한 남자상을 창조했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카스틸리오네의 ‘궁정 신화의 서(1528년)’는 르네상스 인들이 메트로 섹슈얼을 얼마나 열렬히 찬양했는가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신사들의 교과서인 이 책은 궁정인의 자질로 부드러움과 우아함을 지닌 양성적 아름다움을 0순위로 꼽았고 진정한 젠틀맨은 예술품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미술을 양성적 에로티시즘으로 화려하게 수놓았던 메트로 섹슈얼의 인기는 르네상스의 소멸로 잠시 주춤했으나, 18∼19세기 낭만주의 탐미주의 예술가들에 의해 불사조처럼 되살아났다. 양성애적 아름다움을 지닌 남자는 이처럼 그리스와 르네상스를 거쳐 19세기말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예술을 창조하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현대 화가들에 의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미국 여성 화가인 실비아 슬레이(79)가 대표적이다. 그는 더 없이 매혹적인 메트로 섹슈얼의 누드화를 그렸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누운 남자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본다. 군살 없는 매끈한 몸과 자기애의 최면에 걸린 듯 나른하고 무심한 표정, 어깨를 덮은 풍성한 머릿결은 양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메트로 섹슈얼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남자는 욕망을 느끼는 존재에서 욕망의 대상으로 변한다. 남자는 과연 그렇게 변모한 자신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이 그림은 여성 화가에게 금기의 영역이었던 남자 누드화에 도전한 상징적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재미있는 것은 화가가 정작 자신의 자화상은 저 멀리 초라할 정도로 작게 그린 반면, 남자 모델의 누드는 화면을 압도할 만큼 크게 표현했다는 점이다. 남자 누드를 그리고 있다는 예술의 금기를 깨는 것보다, 에로틱한 남자에게 저항하기가 더 어렵다는 의미가 아닐까.

요즘 사회적으로 메트로 섹슈얼의 급부상은 한쪽 성만이 편애하는 스타 대신 양성의 사랑을 모두 받는 남자가 대중의 우상이 되는 시대가 왔음을 예고한다. 성별을 초월한 신비함으로 남녀 모두를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메트로 섹슈얼! 그는 이성(異性)처럼 신선하고 동성(同性)처럼 친근한 제3의 성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이 빚어 낸 아름다운 환상이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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