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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아크로폴리스]<29>한미관계

입력 2004-08-18 18:43업데이트 2009-10-0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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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가 급변하고 있다. 일본은 우경화하고, 중국은 고구려사를 왜곡하면서 지역 패권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동시에 한미관계는 쇠퇴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김영호 교수(국제정치학)가 최근 서울 한성과학고 1학년 학생 50여명에게 한미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강연한 뒤 이들과 함께 토론했다. 학생들은 김 교수에게 다각도의 질문을 던지며 한미관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미국 중심의 위계질서가 오늘날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중위권 국가인 한국에 맞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김영호 교수=유엔을 통해 세계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인도적 지원이나 군사적 기여를 해야 합니다. 국제사회는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이지요. 우리 젊은이들은 손끝 하나 다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도움을 받지만 기여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국제 사회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국력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미국은 강경한 외교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집권해도 강경 노선을 유지할까요.

서울 한성과학고 1학년 학생들이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운데 말하고 있는 이)와 함께 바람직한 한미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학생들이 던진 질문은 김 교수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김동주기자

▽김 교수=미국 역대 정치 경제정책의 독트린에는 대통령의 이름이 붙습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부시 독트린’이 있습니다. 첫째, 일방주의입니다. 다른 국가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자기 정책을 밀고나간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대가가 큽니다. 91년 제1차 걸프전 때는 총 전쟁비용 610억달러 중 미국이 낸 돈은 70억달러에 그쳤지요. 그러나 지금 미국의 전쟁비용은 월 40억달러에 이릅니다. 둘째, 선제공격 전략입니다. 미국 국익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먼저 공격한다는 겁니다. 이는 국제질서가 불안정해지는 요인이기도 하지요.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존 케리 상원의원은 ‘신 동맹주의’를 표방합니다. 일방주의는 안 된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미국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케리 상원의원이 당선되면 지금과 같은 일방주의는 완화될 걸로 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주 외교를 중시한다고 하면서도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자주외교 노선인가요, 실용주의외교 노선인가요.

▽김 교수=자주(自主)라는 말의 어원을 살펴볼까요. 조선시대는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였습니다. 조선이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것이 외교관계였지요. 이때 중국은 조선의 내정은 조선의 자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자주라는 말이 나왔어요. 지금의 자주는 너무 많은 개념을 빨아들이고 있는 스펀지 같은 것입니다. 북한의 자주는 사실상 폐쇄지요. 노무현 정부의 자주가 ‘탈미(脫美) 자주’라면 방향이 잘못된 겁니다. 한미동맹 속에서도 국가의 자율성은 충분히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강대국 미국도 ‘자주’라는 말을 쓰지 않아요. 미국 혼자서는 세계질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맹이 있고, 타협이 있습니다. 강대국이 자주를 할 때는 자주가 아니라 ‘고립주의’가 됩니다. 18세기 영국이 그랬고 20세기 초까지 미국이 그랬습니다. 실용주의는 이념보다 국가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지요. 중국의 덩 샤오핑은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제일이다)’을 제창했어요. 이념을 너무 강조하면 경직되지요. 국력의 한계를 냉정히 판단하고 실용주의적 측면에서 보는 것이 옳습니다.

―미국은 제국주의적 성향이 있다고 합니다. 만약 중국이 발전해 미국처럼 커진다면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한미동맹은 어떻게 될까요.

▽김 교수=제국은 민주주의 체제의 제국과 독재자가 지배하는 제국이 있습니다. 지금 미국의 제국주의와 과거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의 제국주의는 다르지요. 한미동맹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말하지 않는 게 하나 있습니다. 한미동맹이 소멸되면 한국은 자주적일 수 없게 된다는 점이지요. 일본이 강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한국인의 정서로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겁니다. 중국은 발전 가능성이 막대합니다. 그러나 우리와는 체제가 다릅니다. 서로 다른 체제로서는 지금의 한미관계처럼 동반 발전하기에는 한계가 있지요.

―우리나라가 대외정책에서 미국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면 군사적 의존을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의 위협 때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요. 지금 우리가 북한에 비해 경제적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는데 주한미군이 꼭 필요한가요.

▽김 교수=통일이 된 뒤라면 주한미군 때문에 우리나라의 대외적 자율성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한다면 북한 관련 정보 수집에 드는 비용 등 대체비용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대체도 빠른 시일 안에 이뤄지기 어렵지요. 현재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2.3%를 국방비로 지출하는데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아마 2, 3배는 더 들 것입니다. 이는 교육예산과 사회복지예산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리=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강연 요약▼

최근 한미관계를 긴장으로 몰고 간 여러 사건은 한미간 협의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양국의 문제 해결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

미국은 한국의 국력 신장과 함께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국인들 사이에 미국에게서 올바른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았다는 점을 간과했다. 미국은 여전히 한국을 안보와 무역의 측면에서만 바라봤다. 북핵 문제에서도 한국인의 정서를 헤아리지 못했다. 한국 정부도 과거와 달리 미국과의 의견차를 노출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들이 전통적 한미관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는 없다. 양국은 이해관계의 공통된 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진지한 논의를 통해 미래지향적 한미관계의 틀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사건을 계기로 한국에 퍼진 촛불시위는 이념적 반미주의가 아니다. 한국의 반미주의는 반미정서에 더 가깝다. 이들의 반미주의는 미국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기보다는 특정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미국의 ‘오만함’에 대한 부정적 태도와 정서로 이해돼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기성세대는 6·25전쟁 때 미국이 한국을 구해주었다며 고맙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젊은 세대는 5·18민주화운동 북핵문제 촛불시위 등을 통해 기성세대와 다른 대미관(對美觀)을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체험에 기초한 각각의 대미관은 대미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지도층은 한미 양국이 공유하는 공통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미국의 여론 주도층은 최근 한국의 반미정서가 그동안 미국의 대한정책이 성공적이었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평화로운 반미시위를 통해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사회가 발전했다는 사실에 그들은 공감을 표시한다. 이런 한국 사회의 발전에는 한미동맹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국가안보는 산소와 같다. 한미동맹이 제공한 국가안보는 한국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우리는 한미관계의 긍정적 측면에 입각해 21세기에 맞는 한미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

▽미국 vs 유럽 갈등에 관한 보고서(세종연구원)=탈냉전 이후 미국의 전통 우방이었던 유럽과 미국의 국제정치 현실 인식에 대한 차이를 미국의 신보수주의적 시각에서 분석한 책. 미국이 구(舊)유럽에서 ‘신(新)유럽’인 옛 동구권으로 군사기지를 이전하는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새로 쓰는 냉전의 역사(사회평론)=냉전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미국의 9개 행정부가 어떻게 일관된 대소 봉쇄 정책을 추구하면서 평화적으로 냉전을 종식시킬 수 있었는지를 여러 사건들과 함께 실증한다.

▽민주주의 제국(에머지)=20세기는 미국으로 힘이 집중되는 과도기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21세기 국제 질서를 주도하는 미국 제국의 성격과 지배 방식을 분석한다.

▽미국 패권의 몰락(창비)=세계체제론의 시각에서 사회주의권의 몰락을 예견한 저자가 21세기 미국 패권주의의 미래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책. 부시 행정부의 군사력을 우선하는 일방주의와 선제공격론에서 미국 쇠퇴의 징후가 보인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정치문명(삼인)=한국 학자가 미국 사회의 세계관 역사관 도덕관에 대한 분석을 통해 미국 대외정책의 이념적 뿌리를 짚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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