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아크로폴리스]<27>북한의 경제

  • 입력 2004년 7월 28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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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게 돈을 쓰는 일이었어요. 1만원으로 무엇을 사고 무엇을 먹을 수 있을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어요.”(한 탈북자) “통일을 꼭 하긴 해야 하는데 통일 이후의 혼란이 겁나요. 선진국이라는 독일도 통일 이후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서울의 한 여고생)

남북한 경제는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넘어야 할 산은 한둘이 아니다. 광복 이후 반세기 동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서로 다른 경제체제로 살아가면서 쌓아 온 ‘분단의 벽’이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북한경제팀장인 조동호 박사가 북한 출신의 대학생 조철진씨(23·연세대 경제학과 4학년)와 남한에서 자란 김미영씨(24·숙명여대 교육심리학과 4학년), 김희진양(18·서울 신광여고 3학년)과 함께 서울 종로구 구기동 이북5도청에서 북한 경제의 현 주소와 남북 경협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시장이 없는 북한 경제

▽김희진=북한 하면 먼저 헐벗고 굶주리는 아이들이 떠올라요. 우리가 일방적으로 도와줘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서울 종로구 구기동 이북5도청 북한전시관에서 북한 출신 조철진씨가 한반도 지도에서 자신이 살던 함경북도 청진 근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북한의 경제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철진씨, 김희진양, 김미영씨, 조동호 박사. -원대연기자

▽조철진=함경북도 청진에 살다가 1998년 북한을 떠나왔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유치원에서 사과 찰떡 사탕 등 간식도 먹었어요. 어른은 하루에 700g, 어린이와 노약자는 300g 정도의 식량도 배급받아 적어도 배를 곯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경제난이 시작되면서 배급이 절반으로 줄었어요. 당시 청진에서 하루에 수십명씩 굶어죽어 나간다는 말이 파다했습니다.

▽조 박사=전문가들은 1990년대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1995년 대홍수, 1996년 가뭄 등 자연재해 등을 북한경제 몰락의 직접적인 계기로 꼽습니다. 소련 등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국제 가격의 3분의 1 정도로 들여오던 석유 등 원자재 공급이 뚝 끊겼고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북한의 주력 산업인 농업마저 붕괴했습니다. 국내총생산(GDP)의 25∼30%를 국방비로 지출하는 북한 경제체제로서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던 거예요. 그렇다면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자연재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김미영=시기는 늦춰질 수 있었겠죠. 그렇지만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회주의체제를 선택한 북한 경제는 언젠가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조 박사=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시장을 통해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룹니다. 북쪽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가 상품 생산을 통제합니다. 책상에 앉은 관료가 ‘올해 소금은 얼마만큼 생산하라’는 식으로 정해주는 것이죠. 계획 경제의 경직성 때문에 어떤 상품은 남아돌고 어떤 상품은 부족해지는 일이 벌어집니다. 사회주의 경제를 ‘부족의 경제’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유재산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도 북한 경제의 한계로 볼 수 있어요.

▽조철진=북한이 시장경제를 도입하려고 해도 이론적 기반이 부족해요. 학자들 대부분이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하기 때문이죠.

▽조 박사=북한에 공장을 세우려는 남쪽의 한 기업인이 북측 인사에게 낡은 기계를 구입하려고 가격을 물었더니 “10년 전에 1000만원을 주고 샀고 수리비가 1000만원 들었으니 모두 2000만원은 줘야 팔겠다”고 하더랍니다. 국가가 가격을 정하고 상품을 생산하는 계획경제이기 때문에 교환이나 감가상각의 개념도 없다는 얘기죠.

● 개방과 남북 경제협력

▽조 박사=북한은 2002년 7월 ‘7·1 조치’로 불리는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통해 노동자에게 차등 임금을 주고 생산량에 따라 월급을 주는 정책을 처음으로 도입했습니다. 일할 동기를 부여한 것이죠. 그러나 경제 발전을 위한 자본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합니다. 개방을 통해 자본을 끌어들여야 하지만 북한 정부는 체제 유지를 위해 개방의 폭을 최소화하는 이른바 ‘모기장식’ 개방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김미영=남북 교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모든 일이 물밑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남북경협에 대해 ‘퍼주기’ 논란도 나오는 게 아닐까요.

▽조 박사=1988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7·7 특별선언’을 통해 북한과 경제협력을 선언했고 이듬해에 남북간 첫 번째 교역이 이뤄졌습니다. 지난해 남북 교역 규모는 7억2000만달러로 성장해 사상 처음으로 7억달러를 돌파했습니다. 남한은 북한의 수출시장으로 1위, 교역 규모로는 중국에 이어 2위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북한의 중요한 경제 파트너가 된 거죠. 그러나 남북간 교역의 45%가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가 아닌 인도적 지원 등 비 거래성 교역이에요. 이 때문에 ‘퍼주기’ 논란도 나옵니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면 정책 결정 과정의 불투명성도 해결해야 합니다.

▽김희진=남북경협을 반도체, 휴대전화 등 첨단 정보기술(IT) 분야로 확대할 수는 없을까요.

▽조 박사=국제협약에 따라 펜티엄 486급 이상의 컴퓨터 등 전략 물자를 북한에 수출하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개성공단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불거질 수 있어요. 공장을 세우고도 컴퓨터 등 자동화 설비를 보내지 못할 수 있는 거죠. 북한이 핵 문제 해결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제 사회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남한도 국제 사회에 이를 알리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요.

● 통일 비용과 편익

▽김희진=통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통일 이후 혼란을 걱정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조=북한 사람들은 남한을 잘 모릅니다. 맹목적으로 통일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어요. 이 때문에 통일에 따른 충격과 혼란이 더 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혼란을 극복하고 통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껏 일군 경제성장을 한 순간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전쟁의 위험을 없앨 수 있으니까요. 통일을 해서 인구 1억명 이상의 내수시장이 생기면 외국인 투자도 더욱 늘어날 겁니다.

▽김미영=그렇지만 천문학적인 통일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조 박사=통일 자체보다는 통일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10년간 6000억달러(약 720조원) 정도 통일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전쟁 위험의 감소, 북한의 지하자원과 노동력 등 통일에 따른 편익과 북한 경제의 흡수 능력 등을 고려하면 통일 비용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점진적 평화적 민주적인 통일로 한민족의 삶이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정리=박 용기자 parky@donga.com

▼용어풀이▼

▽무역과 교역=남북간의 거래는 한 나라 내의 거래이기 때문에 국가간의 거래를 뜻하는 ‘무역(Trade)’이 아니라 ‘교역(Exchange)’으로 표현한다. 수출과 수입도 각각 반출과 반입으로 쓴다.

▽비(非)거래성 교역=남북교역 중 거래성 교역은 상업적 목적의 거래인 반면 비거래성 교역은 인도적 지원 등 비 상업적인 목적의 거래를 말한다.

▽통일 편익=통일에는 비용이 지불되지만 편익도 얻을 수 있다. 북한의 천연자원, 인력 등과 내수 시장의 확대는 통일로 취할 수 있는 경제적 편익이며 전쟁 위험의 해소,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 등은 비(非)경제적 편익이다.

▼북한경제 이해를 돕는 책▼

▽북한경제개혁연구(김연철 외, 후마니타스)=최근 북한이 취하고 있는 일련의 개혁조치를 분석하면서 북한의 경제개혁과 남북경협의 상호 연계 방안을 모색한 글

▽한반도 통일핸드북(좌승희 외, 한국경제연구원)=한반도 통일 시나리오와 통일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정치 경제적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

▽북한이해2003(통일부, 통일교육원)=매년 발간되는 북한에 대한 종합적인 개론서

▽북한경제백서2002(대외경제정책연구원)=북한 경제의 현황을 경제 동향, 재정, 산업, 무역 등 항목별로 정리한 책

▽북한경제발전전략의 모색(조동호 외, 한국개발연구원)=북한의 시각에서 북한의 정치 경제 상황을 분석하고 북한 경제 발전을 위한 정책 대안을 모색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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