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아크로폴리스]<24>경제발전과 한국경제

  • 입력 2004년 7월 7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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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우리는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뤘다. 이 경제발전의 요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명확한 목표를 제시한 강력한 리더십과 자신을 희생한 5060세대의 노력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성공 요인으로 앞으로의 경제발전을 이끌어 내기는 어렵다. 이번 회 신아크로폴리스에서는 권영선 교수(40·한국정보통신대 경영학부)가 이은립양(19·한국정보통신대 IT경영학부 1년) 이승민양(18·아주대 E-비즈니스학부 1년) 임상우군(17·단국대부고 2년)을 만나 한국 경제발전의 요건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발전은 행복의 필요조건

▽권영선 교수=왜 우리는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걸까요? 물론 잘살기 위해서겠죠. 소득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은 되지요.

▽임상우=높은 소득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가치도 중요한 것 아닌가요?

▽권 교수=맞아요. 발전은 성장과 다릅니다. 성장, 즉 경제성장은 양적인 개념으로 국민소득 증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발전은 물질적 성장뿐 아니라 가치관 변화 같은 질적 변화도 포함됩니다.

▽이승민=그렇다면 경제발전에 필요한 요건은 무엇인가요?

▽권 교수=경제발전은 기본적으로 생산 활동이 확대되는 겁니다. 생산 활동의 확대를 위해서는 사유재산제도, 발달된 자본시장, 성과주의, 근대 교육제도 같은 사회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지요.

●한국 경제발전의 요건

▽이은립=우리나라는 20세기의 후진국 중에서 경제발전에 성공한 아주 드문 예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시절의 권위주의적 리더십도 그 발전 요인 중 하나인가요?

▽권 교수=권위주의 정부가 반드시 경제발전을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경제를 발전시킨 경우가 있는가 하면 완전히 망친 예도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박정희 대통령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고, 국민은 경제발전에 동참할 의사가 있었지요.

▽이승민=한국은 다른 후진국들과는 달리 미국의 원조를 크게 받지 않았나요?

▽권 교수=그것도 한 요인입니다. 냉전의 차단막으로서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드러내려는 미국의 의도가 있었지요. 6·25전쟁 후 무상원조와 이후의 차관, 그리고 1970, 80년대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체제도 성장지향적 발전 정책을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한국은 다른 후진국들보다 이런 환경을 잘 활용했지요.

▽임=그러나 냉전체제가 가져온 단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권 교수=맞아요. 만약 냉전체제가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국방비에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건 한국이 처했던 환경의 단점이겠지요. 이 밖에 의무교육 실시로 산업인력을 양성한 점,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 그리고 국민통합을 이룬 공동체문화 등도 경제발전의 요인이었어요. 그러나 무엇보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후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부모세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승민=그런데 저는 김대중 정부부터 분배정책이 너무 일찍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권 교수=그건 판단하기 쉽지 않아요. 성장과 분배라는 두 축 사이에서 박정희 정부가 너무 성장 쪽에 치우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민주적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의 다양한 의견들이 갑자기 분출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요.


권영선 교수는 “1960, 70년대 한국경제의 고속 성장에는 권위주의적 리더십과 국민의 동참이 맞물려 큰 효과를 냈다”고 말한다. 일행은 북한산 자락아래 청와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동아미디어 빌딩 옥상에서 대화를 나눴다. 왼쪽부터 이은립양, 권영선 교수, 이승민양, 임상우군.-박주일 기자

●미래 경제발전의 새 동력

▽이승민=과거에는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권 교수=경제가 발전하면 민주화도 더불어 진전돼요. 권위주의 정부는 권력층의 자의성이 커지고 밑으로부터의 정부 감시가 어렵기 때문에 부패하기 쉬웠습니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 그리고 타협을 기반으로 해요. 의사 결정이 빠르지 않고 경제성장의 효율성은 떨어집니다. 이제 효율성을 높이는 데 정부(리더십)의 역할은 작아지고 개개의 역량에 의존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이은립=앞으로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경제를 계속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권 교수=아니지요.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오면서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부와 번영의 원천과 그것을 만드는 방식도 변했어요. 네트워크 사회에 맞는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고유 지식과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임=우리 사회의 세대간, 계층간 갈등은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오는 건가요?

▽권 교수=과거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진입하는 시기나, 선진국들이 한국 같은 나라에 제조업 기반을 넘기는 과정에서 겪은 산업구조조정과 갈등을 볼 때,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정부는 이런 갈등을 잘 관리해서 국민역량이 생산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여기에 리더십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이은립=그럼 이런 시기에 우리 같은 젊은이들이 배워야 할 새로운 지식은 무엇인가요?

▽권 교수=산업사회의 모방에 의한 성장 방식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네트워크에 기반한 문화, 콘텐츠, 물류, 스포츠, 지식 산업에 쓰일 능력을 익혀야지요.

▽이승민=과거 경제발전에 우리 부모세대가 희생한 것처럼 앞으로의 발전에는 우리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겠군요.

▽권 교수=그렇습니다. 결국이 사람이 희망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성실히 일하는 인재가 발전을 이끈다는 사실이지요. 인내와 노력, 도전 의식과 자신감, 그리고 새 시대에 맞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정리=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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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발전 이해돕는 책-영화

○책

▽경제발전론(정창영 지음·법문사)=국민경제의 성장과 발전 과정을 비교적 쉽게 풀어 썼다.

▽경제진화론(유동운 지음·선학사)=국가경제를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하는 진화론적 시각에서 국가경제의 발전을 설명.

▽사다리 걷어차기(장하준 지음·형성백 옮김·부키)=자유무역을 통해 개발도상국이 발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킴.

▽경제사상사의 이해(박장환 지음·학문사)=경제학의 사상체계와 모형을 한 데 담은 해설서. 주요 경제학자의 사상 및 그들의 이론을 대표하는 저서를 소개.

○영화

▽제르미날(Germinal·클로드 베리 감독·1993년)=산업혁명 과정에서 노동자의 소외와 빈부격차의 확대 과정을 비판적 시각으로 다뤘다. 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날 때 나타나는 갈등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됨.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존 포드 감독·1940년)=미국 경제 대공황의 비정함을 이겨내는 인류애적 구원을 그렸다.

▽빌리 엘리엇(Billy Elliot·스티븐 달드리 감독·2000년)=산업구조조정으로 익숙한 삶의 기반이 점차 약화되는 절박한 상황에서 아버지(전통세대)와 아들(새로운 세대)의 희생과 사랑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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