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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세러피]‘2046’을 보고

입력 2004-10-28 16:19업데이트 2009-10-09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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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46'의 한 장면. -동아일보 자료사진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2046’을 보면, 그가 시간의 불가역성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는 옛 사랑을 이야기하듯 자신의 예전 영화들을 끝없이 인용하고 있다. 반면 ‘2046’속의 새로운 사랑들은 부질없거나, 타이밍이 맞지 않거나, 소설의 이야기 안에서나 소통될 수 있는 것들이다.

영화를 보며,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은 과연 누구인가를 생각했다. 얼마 전 종영한 TV 드라마 ‘아일랜드’의 마지막 회에도 비슷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들이 있었다. 사랑을 찾아 엇갈리던 네 남녀는 각자의 사랑을 찾아 간다. 그런데 결국 선택한 사랑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어린 아이를 알아봐 주고 곤란에서 구해 주는 대상이었다.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은 그런 어린 아이의 마음 같은 것이다. 거기엔 이성이 개입될 틈이 없다.

어린 시절의 환상과 그것이 투사된 대상은 열쇠와 자물쇠 같은 관계다. 그것은 때로 어린 시절에 봤던 부모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그런 이미지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마침내 그런 대상을 만났을 때 ‘운명적인 사랑’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차우(량차오웨이)의 사랑처럼, 나무 구멍 속에 밀봉된 사랑의 원형이 된다.

그런 사랑의 원형은 사실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차우가 2046호가 아닌 2047호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와 유사한 이미지를 가진 누군가를 대신 사랑할 수 있을 뿐이다.

서로가 투사하는 환상이 다르기 때문에, 많은 경우 사랑은 쌍방향이 되기 어렵다. 그리고 사랑은 늘 각자의 환상 속에서 시작되는 탓에 상대의 현실적인 모습과 만났을 땐 필연적으로 깨질 수밖에 없다.

‘2046’의 전편과도 같은 ‘화양연화’에서 수 리첸(장만위)과의 사랑이 차우에게 사랑의 원형으로 기억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환상이 깨지기 전에 이별을 맞았기 때문이다.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제목 뜻 그대로 그의 기억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머물러 있다.

차우는 그 기억을 영원히 밀봉하기 위해 땅에 묻고 싶어 하지만 사실 기억이란 그렇게 변형되지 않고 묻혀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의 방황은 그래서 눈물겹기까지 하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가 얻은 “세상에는 빌려줄 수 없는 것도 있다”는 통찰은, 사랑의 원형에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이 결코 채워질 수 없다는 역설적인 말처럼 들린다.

‘2046’을 보러 간 극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이야기에 숨죽여 열광하는 열기를 감지할 수 없었다. 감정을 느끼는 속도가 달라진 탓일까, 아니면 이제는 다른 영화들을 더 사랑하기 때문일까?

‘아비정전’이나 ‘중경삼림’의 부유하는 인간들에 기꺼이 자신을 동일시하고 상영 금지된 ‘해피 투게더’를 보려고 캄캄한 영화카페를 찾아가던 영화광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걸 보면, 내 20대를 함께했던 왕자웨이 영화의 이미지들은 혹 내 마음속에 있는 사랑의 원형을 자극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해 본다.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경상대 병원 hjyoomd@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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