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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세러피]‘아이 로봇’을 보고

입력 2004-08-26 17:06업데이트 2009-10-0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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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사진
휴대전화를 바꾸러 갔다. 흑백 액정의 휴대전화를 써 오다가 드디어 배터리 수명이 다한 탓에 큰맘 먹고 바꾸기로 결심한 것이다. 수많은 단말기 중에 2개를 놓고 고민하게 되었는데 하나는 200만 화소 액정의 캠코더에 MP3까지 되는 신형이었고 또 하나는 흔히 보는 컬러 액정 단말기였다. 첫 번째 것에 몹시 끌렸지만 한참 고민한 끝에 결국 평범한(?) 두 번째 것을 선택하고 말았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새로운 것이 나오면 꼭 경험해 봐야 하는 사람과 오래도록 익숙하고 손때 묻은 것을 자부심을 갖고 고수하는 사람. 상영 중인 영화 ‘아이, 로봇’의 주인공 스프너(윌 스미스)는 로봇을 싫어하는 미래인이다. 2035년, 로봇 발명가의 죽음을 수사하는 경찰인 그는 로봇을 집안의 심부름꾼으로 들이려는 할머니의 요구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신형 로봇에도 무관심하다. 그의 관심사는 “2004년 형 빈티지 스타일”의 운동화를 사는 것 같은 일이다. 반면 로봇 심리학자 수잔(브리짓 모나한)은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을 신뢰하고 로봇에 인간과 같은 심리를 부여하는 일을 한다.

단순한 소통의 수단을 넘어서서 종합 엔터테인먼트의 소스가 되어 가는 휴대전화, 사무용 기기를 넘어선 노트북 컴퓨터, 마우스 클릭만으로 일상의 거의 모든 일을 가능케 하는 인터넷….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이미 로봇을 키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 로봇’에 등장하는 로봇의 3원칙, 사람에게 해를 가할 수 없고, 사람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규칙들은 우리가 첨단의 기계들에 대해 바라는 바와 같다. 휴대전화와 노트북은 오작동으로 주인의 일상을 교란해서는 안 되고, 컴퓨터가 명령을 거부하거나 인터넷이 엉뚱한 링크에 연결되어서는 안 되며, 그들이 바이러스나 악성 코드에 침투 당함으로써 스스로를 파괴해서는 곤란한 것이다.

그렇게 일상의 ‘로봇’들이 숨 가쁘게 진화해 가는 현상은 로봇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새로운 국면을 가져온다. 영화에서 자유 의지를 갖게 된 로봇 ‘서니’처럼, 휴대전화 등 숱한 멀티미디어 기기들은 점차 정교한 프로그램에 의해 작동되고 인간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범위를 늘려간다. 이런 현상이 진행될수록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인간들과 옛것을 고수하는 인간들 사이의 간극 또한 생겨난다. 완벽한 사양을 갖춘 최신형 휴대전화를 추구하는 이들은 5년 된 ‘무전기형’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들을 조금 다른 부류로 여기며, e메일과 메신저를 주된 의사소통 수단으로 삼는 이들은 겨우 며칠에 한 번 e메일을 확인하는 사람들을 답답해 한다.

스프너와 수잔 사이에 생기는 입장의 차이 역시 그러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스프너가 과거의 경험 때문에 로봇을 혐오하게 된 것으로 묘사됐지만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성향은 사실 타고나는 면도 없지 않다. 어떤 이들이 새로운 자극에서 쾌감을 얻는 반면 다른 이들은 위험부담을 최대한 줄이는 데서 안정감과 행복을 찾으며, 또 어떤 이들은 주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감정에 의해 움직인다. 첨단 디지털 문명과 인간의 행복한 공존은 현대의 많은 SF소설과 영화들이 제시하는 미래의 패러다임이다. 아울러 자극을 추구하는 디지털형 인간들과 안정을 추구하는 아날로그형 인간들의 행복한 공존 역시 내가 꾸고 싶은 미래의 꿈이다.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경상대 병원 hjyoomd@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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