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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세러피]‘스파이더맨2’를 보고

입력 2004-07-29 16:45업데이트 2009-10-0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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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중인 영화 ‘스파이더맨 2’의 주인공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겪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그는 부모도 없고 경제적으로 취약하며 연애는 엇갈림과 실패의 연속이다. 이는 보통의 20대들이 청소년기에서 성인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겪는 문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후기 청소년기의 젊은이들이 흔히 그러하듯 그는 외부 환경에서 답을 찾기보다 자신의 내면에 늘 신경을 쓰고 자신의 행보가 내면의 목소리에 비추어 합당한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평소의 그는 예민하기 이를 데 없는 자의식을 갖고 있어서 말할 때마다 눈가가 붉어지곤 해 보는 이를 안쓰럽게 한다. 스스로를 통제하는 문제 역시 그에게는 주된 이슈다. 자신의 뇌에 대한 통제를 잃은 닥터 옥타비우스(알프레드 몰리나)는 피터 파커의 자아에 숨겨진, 스파이더맨의 거울 이미지와도 같다.

그렇듯 피터 파커는 영웅담의 주인공 가운데 가장 반(反)영웅적인 인물이다. 사실 스파이더맨 자체도 그다지 전형적인 영웅은 아니다. 스파이더맨은 유연하고 빠르지만 힘이 세진 않다. 만약 슈퍼맨이었다면, 지하철을 멈출 때 그렇게까지 죽을힘을 다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피터 파커가 내면에 관심 갖는 인물인 것처럼, 스파이더맨 역시 자기 내부로부터의 에너지(거미줄)를 주된 수단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그가 가진 거미줄이란 무기는, 적당히 그것을 지지해 줄 구조물들이 없는 곳에서는 무용지물일 수도 있고, 그나마 줄을 잡고 애써서 매달려 올라가야 할 때도 있다. (게다가 그 스판덱스 옷은 세탁하면 물이 빠지기까지 한다!)

사람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영웅을 필요로 한다. 아이들의 영웅은 부모일 수도 있고, 교사일 수도 있고, 이야기 속의 영웅 혹은 대중 스타일 수도 있다. 누구나 마음속으로 내가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 도움을 주고 내가 나아갈 길에 모델이 되어 줄 수 있는 타인의 존재를 갈망한다. 그러나 점차 성장하고 성인으로 독립해 갈수록 현실은 더 이상 그런 타인이란 없다고 알려준다. 오히려 나 자신이 스스로를 통제하고 타인을 돌보며 어떤 때는 다른 이를 곤경에서 구해 주어야 하는, 영웅의 역할을 요구 받게 된다.

그러므로 피터 파커의 고뇌는 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이행하는 단계에서 누구나 받는 압력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안고 있다. 그는 ‘내 내면의 자산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홀로 설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러므로 그의 딜레마는 평범한 청년과 스파이더맨 사이를 오가는 정체성의 문제라기보다 영웅에 열광하고 그를 닮기 원하는 시기로부터 스스로가 타인의 영웅이 되어야 하는 시기로 이행하는 데 따른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때로 무모한 자신감에 넘치고, 또한 끝없이 좌절한다. 그의 내적 갈등은 결정적인 순간에 거미줄이 나오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내부와 외부의 연계를 갑자기 차단해 버리기도 한다.

그런 좌충우돌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가 겪는 성장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를 보고 열광한다면, 자신의 내부에 숨겨진 거미줄을 마음껏 내뿜으며 빌딩 속을 날아다니는, 멋있는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과연 누구의 영웅인가, 혹은 영웅이 되고 있는가? 비록 대중의 열광과 환호를 받지는 못하겠지만, 누구든 단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과 위로를 주는 이로 오래 기억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성충 거미인간의 삶은 아닐까?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경상대 병원 hjyoomd@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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