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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세러피]‘트로이’를 보고

입력 2004-06-10 16:28업데이트 2009-10-0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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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사진
상영중인 영화 ‘트로이’에서 무게중심이 놓인 인물은 불세출의 전쟁영웅 아킬레스(브래드 피트)다. 그리스 장군이면서 출근도 안하고 제멋대로 ‘재택근무’나 하던 그는 잔소리를 퍼붓는 아가멤논 왕에게 “그럼 폐하가 싸우시죠”하고 일갈한다. 자신만만한 반항아의 이미지가 물씬한 그는 오디세우스가 찾아가 설득하기 전까지는 전쟁에 나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반신반인인 아킬레스는 고대 전쟁 영웅들이 갖는 전형성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신의 세계에도, 인간의 세계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그는 일생동안 여장을 한 남자로, 여성의 외관을 했지만 그 세계에 속하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그의 반항심리와 이중적 본성의 이면에는 불분명한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과 슬픔이 숨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지독한 개인주의자인 그를 움직이는 것은 국가의 명령이나 대의명분이 아닌 개인적 야망과 애정 복수심이다. 아가멤논 왕을 경멸하면서도 출전한 이유는 불멸의 명성에 대한 욕심이었고 전장의 피바람 속으로 깊숙이 발을 들여놓게 된 것도 여사제 브리세이스의 매혹 때문이다. 그런 아킬레스를 연기하는 브래드 피트에게서는 언뜻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그가 연기한 폴의 이미지가 어른거린다. 그 시절보다 훨씬 선 굵은 외형을 지녔으나 아킬레스는 몬태나의 보수적인 커뮤니티에 속해 있으면서 동시에 그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으려 했던 폴과 닮았다.

국가든 사회든 직장이든, 집단과 개인의 가치관 사이에는 본질적인 간극이 존재한다. 둘 사이의 욕구를 조율하거나 일치시킬 수 있으면 좋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조직의 가치관에 충실하면 조직이 나를 보호해 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트로이를 향해 진격하는 그리스 함선 한 척에서 점차 시점이 뒤로 물러나면서 수천 척의 배를 보여 주는 장면은 미시적 ‘개인’과 거시적 ‘집단’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아 흥미롭다. 아니나 다를까, 그 와중에 검은 돛을 단 아킬레스의 배는 개별 행동을 한다.

반항해도 ‘잘리지’ 않고 되레 모두를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아킬레스에겐 ‘조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열망이 투사되어 있다. 조직사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거기에 완전히 통합되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의 특성을 존중 받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들의 꿈이다. 더구나 그 조직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재능을 가질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욕망, 예컨대 가족을 꾸릴 것인지 전쟁에서 이름을 드높일 것인지 중에서 어떤 하나를 자기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런데 아킬레스나 ‘흐르는 강물처럼’의 폴, 그리고 자신의 욕구에 충실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삶의 절정에 다다르기도 전에 결정적 일격을 당하여 요절하고 만다. 이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유형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갖는 보편적인 불안 혹은 선망이 투사된 결과가 아닐까.

하지만 그런 유형의 인물들은 때로 조직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꾼다. 알고 보면 세상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바뀌어 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속한 집단의 욕망은 어디에 있고, 내 마음 속의 욕망은 어디에 있는지, 그것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한번쯤 돌아볼 일이다. 나는 과연 바다 어디쯤에 있는 배 위에서, 어느 전장으로 향하고 있는가.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경상대 병원 hjyoomd@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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