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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세러피]‘빅 피쉬’ 자신을 믿고 삶의 모험을 즐겨라

입력 2004-03-25 16:50업데이트 2009-10-10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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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사진

나는 신문의 ‘오늘의 운세’란을 자주 본다. 물론 모든 사람의 운명을 12가지로 분류해 놓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리는 없다. 그래도 그걸 보는 까닭은 적어도 아침 신문에 나오는 운세가 최악의 상황을 예언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참고 견디면 좋은 결과가 온다’는 등의 운세를 보고 나면 스스로 ‘와신상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을 추슬러 돌파해 보자는 생각도 든다. 사실 ‘오늘의 운세’를 믿는다기보다 거기 나온 문장이 주는 사소한 격려에 의해 내 자신을 한번 믿어 보게 되는 것이다.

상영 중인 영화 ‘빅 피쉬’(감독 팀 버튼)의 주인공 에드워드는 어린 시절 숲속에 사는 마녀의 유리 눈알에서 자신이 미래에 어떻게 죽게 되는지를 목격한다. 숲과 유령의 마을, 낯선 도시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심지어 암에 걸려 죽어갈 때까지도 그를 전진시키는 힘은 ‘나는 이렇게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그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허풍선이의 거짓말과는 다르다.

에드워드의 이야기는 그가 인생에서 어떤 믿음을 갖고 삶을 돌파해 나갔는지를 역설하는 은유이다. 그는 운명이 자신을 긍정할 것을 믿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무조건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이야기한다). 그 대상이 마녀든, 거인이든, 서커스 단장과의 불평등한 계약이든, 좋아하게 된 여자이든, 전쟁이든 상관없다. 그저 뒤돌아보지 않고 삶과의 우연한 조우에 몰입할 뿐이다.

반면 아들 윌은 그와는 다른 삶의 태도를 취한다. 윌은 어떤 이야기가 사실인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인지, 선택에 따를 결과가 어떠할지를 자꾸 뒤돌아보고 심사숙고하는 사람이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 윌과 같다. 그래서 기대와 다른 일이 벌어지면 당황스러워하며,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불편해 한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에드워드처럼 거침없이 모든 새로운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에드워드는 사람의 모습을 한 윌의 소망이며, 존재의 이면에 숨어있는 윌의 또 다른 모습이다. 결국 둘은 에드워드의 죽음의 장면을 함께 만듦으로써, 그 이야기 안에서 하나가 된다.

에드워드처럼 삶의 모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은 어쩌면 마녀 눈알에서 보았던 미래로부터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무의식과 직관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것일지 모른다.

윌이 에드워드에게 말한 것처럼, 사람의 마음은 빙산처럼 수면 위로 나온 10%, 즉 인지할 수 있는 일부분과 그 밑의 90%, 즉 인지할 수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물 밑의 90% 안에는 조절하기 어려운 욕망과 충동뿐 아니라 비논리적이고 자유로운 상상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현실의 법칙에 맞지 않지만, 어쩌면 우리가 어린시절부터 경험하고 꿈꿔왔던 모든 것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갖는다는 것은, 그런 모든 내적 경험들이 나에게 힘이 되어 줄 것임을 긍정하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이해할 수 있는 현상만을 믿는 것은 좁은 어항에 갇히는 것과도 같다.

나 자신의 온갖 경험과 창조성이 스스로를 잘 이끌어갈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우연의 산물들을 한번 마주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제목 ‘큰 물고기(Big Fish)’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속 세계를 통해 정신의 지평을 넓힐 줄 아는 인간의 이름이다.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 경상대병원 hjyomd@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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