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권력이 움직인다]<2>안민정책포럼

  • 입력 2003년 10월 5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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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安民)정책포럼(회장 장오현)은 ‘공동체적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현실 참여적 지식인들의 모임이다.

‘공동체적 자유주의’란 개인의 존엄과 창의를 존중하되 개인의 자유가 공동체의 자유에 우선할 수 없다는 공동체 윤리를 전제로 개인과 공동체의 적극적 조화를 추구하는 것.

포럼 회원들은 이를 ‘21세기형 자유주의’라고 주장한다.

실무능력과 연구역량을 겸비한 지식인들로 구성된 이 포럼은 한국사회의 현안에 대한 비판과 구체적 대안을 내놓으며 ‘한국 사회의 싱크탱크’를 지향하고 있다.》

▽정책현안에 대한 대안 제시=‘정부의 4대 부문 개혁’(2000년), ‘국가재정, 이대로 좋은가(2001년), ‘한국교육의 새 장을 연다’(2002년), ‘인치·관치·법치:법치주의 확립을 위하여’(2003년).

안민정책포럼이 창설된 이후 정책 입안자들과 학계에 자기 존재를 알려온 방식은 매년 한 번씩 개최해 온 심포지엄과 그 결과물인 자료집이었다. 이 연구결과들은 급조된 것이 아니라 수년에 걸친 학제 간 연구의 성과물인 점이 여타의 심포지엄과 차별화됐다. 안민포럼의 주요 구성원들이 실제 청와대와 각 행정부처 등 정부기관에서 일한 실무경력과 연구 역량을 동시에 갖춘 인물들인 점도 연구결과의 효용가치를 높여주었다.

2000년 2월 처음 연 심포지엄 ‘정부의 4대 부문 개혁’은 1997년 말 시작된 외환위기 극복을 목표로 정부가 추진해 온 개혁에 대해 금융, 재벌, 노동, 공공 등 4개 부문에 걸쳐 전문가의 눈으로 비판한 것. 장오현 안민포럼 회장은 “무엇보다도 4대 부문의 개혁이 탄탄하게 진행돼 시장의 규칙에 따라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해야, 정부 주도의 성장 지상주의로부터 시장자율의 개방주의로 나아가면서 공동체의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2001년 3월의 심포지엄 ‘국가재정, 이대로 좋은가’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3년 동안 대규모 구조조정 과정에서 누적된 재정적자와 정부채무를 검토하는 한편 구조개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포럼 회원들은 실업수당 연금보험 등의 사회복지제도들이 급속하게 도입된 데 따라 늘어난 재정부담을 줄이는 한편 통일 대비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정년퇴직 시한을 연장해 개인의 근로기간과 연금 불입기간을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육아시설을 확충해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증가시키도록 유도하는 정책도 제안했다.

2002년 4월에는 ‘한국교육의 새 장을 연다’를 주제로 한국사회 초미의 화두인 교육문제를 짚었다. 학교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학교간 경쟁을 촉진하되 경쟁에서 처지는 학생들을 특별 지원하는 것을 골격으로 한 학교교육 개혁의 청사진이 제시됐다. 교육의 자율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육자치와 지방자치를 통합해 교육문제를 자치단체장 선거에 연계함으로써 자율적 경쟁을 유도하고, 자립형 사립학교를 포함한 다양한 학교를 허용해 학교에 대한 선택권을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는 방안도 마련됐다. 이는 3년 동안의 학제간 연구와 토론을 거쳐 나온 개혁안이었다.

올 6월에는 박세일 교수(서울대 국제대학원) 등 특히 경제제도 개혁에 관심이 많은 회원들이 주축이 돼 ‘한국제도경제학회’를 창립했다. 이 포럼과 한국제도경제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올해 심포지엄에서는 경제 영역에서의 법치주의 확립 방안을 모색했다. ‘한국제도경제학회’ 초대 회장인 박 교수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병폐를 ‘사익의 과잉과 공익의 과소’로 진단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사익의 과잉’을 통제할 수 있도록 시장에 일관성 있게 적용되는 법과 제도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 실현방안은 철저히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한 바탕에서다. 공동체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문화전통을 고려하지 않고는 어떠한 개혁적 경제제도나 법도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전 연구에서 한국사회의 청사진까지=안민정책포럼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근무하던 4명의 학자가 1985년 각각 다른 대학으로 가게 되면서 시작한 작은 등산모임에서 비롯됐다. 박세일, 장오현, 최광, 이성섭 교수와 지인(知人)들은 매주 토요일 오전 서울 관악구 남현동에서 만나 5∼6시간에 걸쳐 관악산 산행을 함께했다. 이들을 주축으로 1996년 10월 ‘신자유포럼’이 만들어졌고, ‘신자유포럼’은 2000년 ‘안민정책포럼’으로 명칭을 바꿨다. 동양의 지혜를 바탕으로 서양에서 검증된 지식을 결합해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

현재 안민포럼에는 박세일(전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 장오현(동국대 교수·전 교육부 고등교육실장), 강철규(공정거래위원장), 최광(한국외국어대 교수·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성섭(숭실대 교수·전 경실련 정책위원장), 나성린(한양대 교수·전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 유정호(KDI 경제정보센터 소장), 최영기(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전 노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이각범(한국정보통신대학원 교수·전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 김판석씨(연세대 교수·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 180여명의 실무형 사회과학자들이 모여 있다. 의사 변리사 은행원 공무원 등도 함께 어울려 포럼의 활동기반을 넓혀 주고 있다.

안민포럼은 이제 큰 도약기를 맞고 있다. ‘공동체적 자유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하고 이를 한국사회 전반에 확산시키기 위해 청소년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국 대중강연을 개최할 계획인 것. 또 한국사회의 새로운 경제발전 청사진을 마련하기 위해 비회원들에게까지 문호를 열고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안민정책포럼의 회원들이 최근 월례발표회 참석차 회의실에 모였다. 앞줄 왼쪽부터 고영회(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김관보(가톨릭대 교수), 송희연(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대학장), 김태곤(국민은행 상무이사), 이홍규(한국정보통신대학원 교수), 이내영씨(고려대 교수), 중간 왼쪽부터 조호걸(창성학원 원장), 신관호(신관호특허법률사무소 소장), 민문홍(서울대 국제대학원 전임연구원), 장오현(회장·동국대 교수), 김용호(인하대 교수), 박재창(숙명여대 교수) 박세일씨(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뒷줄 왼쪽부터 최병목(경희대 강사), 김종구(한국소비자보호원 수석연구위원), 손광주(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이인재씨(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김미옥기자

김형찬기자 khc@donga.com

▼‘청소년 시민 교육’ 프로그램이란…▼

안민정책포럼이 올해부터 중점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청소년 시민 교육’ 프로그램은 그동안 한국사회 지도층을 주 대상으로 펼쳐 왔던 이들의 활동을 사회저변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다.

장오현 회장은 “장기적으로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 민주주의와 ‘공동체적 자유주의’의 기본 교육이 필요하다”며 “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으로서의 채무 중의 하나가 젊은 세대가 앞날에 희망을 갖고 바르게 살 수 있도록 교육하고 선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3월말 50개 주제를 확정한 후 50여 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현재까지 9회의 모임을 가지며 강의안을 만들고 있다. 우선 내년 1월경 강의안을 완성한 뒤 이를 토대로 전국을 돌며 연속 강연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6개 분과와 팀장은 △철학-손동현(성균관대·철학) △사회-송호근(서울대·사회학) △국제-하영선(서울대·정치학) △경제-장오현(동국대·경제학) △역사(한국사)-김병국(고려대·정치학) △정치-안경환(서울대·법학) 교수.

소주제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가족은 왜 중요한가’, ‘지식인의 시대적 사명과 바른 역할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북한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올바른 시민운동이란 어떤 것인가’, ‘대화와 협상은 왜 중요한가’ 등. 인간관과 인생관부터 현대사회의 주요 문제까지를 망라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포괄하고 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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