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나무]<1>정운찬 서울대 총장

  • 입력 2003년 3월 31일 19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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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필드 할아버지로부터는 ’따뜻한 가슴’을, 조순 전 서울대교수로부터는 ’차가운 머리’라는 가르침을 받은 정운찬 총장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지성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영대기자
스코필드 할아버지로부터는 ’따뜻한 가슴’을, 조순 전 서울대교수로부터는 ’차가운 머리’라는 가르침을 받은 정운찬 총장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지성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영대기자
지성인을 우대해 온 것은 한국사회의 오랜 전통이다. 전문적 지식의 연마는 언제나 사회적 책임을 동반했고, 그렇게 성장한 지성인은 개인적 욕망을 희생하며 이 사회 곳곳에서 크고 작은 기둥이 돼 왔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사회적 책무를 잊은 기능적 ‘지식인’과 전문적 역량 없이 목소리만 높이는 ‘운동가’들이 양산되는 이 시대, 한국사회의 대표적 지성인들이 걸어 온 지적 여정을 돌아보며 이 사회의 이상적인 지성인상을 다시 생각한다.<편집자>

《대한민국 지성의 요람인 서울대를 이끌고 있는 50대 중반의 ‘젊은’ 총장 정운찬(56). 날카로운 비판정신과 함께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를 소홀히 하지 않은 드문 지성인이다. 역대 정부로부터 한국은행 총재, 경제부총리 등 경제관련 요직을 여러 차례 권유받았지만 그는 늘 강단에 남기를 원했다. 학내외의 요청으로 지난해 ‘떠밀리다시피’ 서울대 총장직을 맡게 됐지만 그는 요즘도 임기를 무난히 마친 뒤 다시 평교수로 돌아가 자유롭게 연구하고 발언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어릴적 '큰산' 스코필드 박사 ▼

사회현실과 밀접한 학문인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자로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사회참여에 일정한 ‘선’을 고수하는 그의 입장은 어린 시절 만난 ‘스코필드 할아버지’의 가르침으로부터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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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총장이 ‘스코필드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과 함께 ‘34번째 대표’로 손꼽히는 프랭크 W 스코필드 박사(1889∼1970)다. 석호필(石虎弼)이란 한국 이름을 가진 그는 1916년 의학자 겸 선교사로 세브란스 의전에 온 후 1919년 3·1운동을 외국에 알렸다. 또 1960년대에는 서울대 초빙교수로서 독재정치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경계하며 한국사회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경기중학에 입학한 가난한 수재 정운찬은 당시 어려운 한국 학생들을 위해 장학사업을 펼치던 스코필드 박사를 소개받았다. 정 총장은 그때부터 스코필드 박사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고 성경을 배우면서 사회를 보는 눈까지 깨치게 됐다.

강한 사람에게는 ‘호랑이’ 같은 엄격함을 보여 주고 약한 사람에게는 ‘비둘기’ 같은 자애로움을 베풀어 줬던 스코필드 박사는 그에게 타인에 대한 이해와 사랑, 그리고 사회에 대한 책임을 가르쳤다. 그러나 사회에 대한 책임과 현실참여는 별개의 문제다. 정 총장은 할아버지가 항상 들려주던 말을 기억한다.

“운찬, 너는 정치와 거리를 두어라, 정치판은 그리 깨끗한 곳이 아니다.”

하지만 정 총장은 “사회가 극단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는 몸과 마음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학구파로만 알려졌던 그는 군사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86년 봄 서울대 교수들의 개헌서명을 주도하기도 했다.

▼'멋진 스승' 조순 ▼

9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어머니와 어렵게 생활하던 소년 정운찬은 국가경제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 근대 경제학의 원조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접한 것도 그 때문이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스코필드 할아버지는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이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경제학과에 지망할 것을 권했다. 마침 당시는 제3공화국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던 터라 정운찬은 그 말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고, 1966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막상 입학 후 경제학에 별다른 흥미를 느낄 수 없었던 그에게 같은 과 선배인 신영복(현 성공회대 교수)이 권한 책이 있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J R 힉스의 ‘사회구조론’이었다. 경제학의 눈으로 본 사회과학개론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책을 보면서 경제학이 사회 이해에 도움이 되며, 경제학을 응용해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의 대학생활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은 것은 조순 교수(전 서울시장)였다. 1967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곳에서 가르치다 귀국한 조순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그에게 매료된 것이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그의 지적 방대함뿐 아니라 멋진 외모까지도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조순 교수의 가르침을 받아 P A 새뮤얼슨의 ‘경제학’과 J M 케인스의 ‘일반이론’을 읽으며 비로소 경제학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 스코필드 박사와 조순 교수의 영향, 그리고 어릴 적부터 살았던 동숭동의 지적 환경 속에서 성장한 청년 정운찬은 학문에 더욱 몰두하게 됐고, 조순 교수는 그에게 미국에 유학 가서 공부를 더 할 것을 권했다.

▼개혁적 케인스주의자로 ▼

홀어머니를 모셔야 했던 그는 대학 졸업 직후 한국은행에 취직을 했지만 1년반 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는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더불어 케인스학파의 아성인 프린스턴대에서 앨런 블라인더, 윌리엄 브랜슨 교수 등의 지도를 받아 케인스의 대표작인 ‘통화개혁론’(1923), ‘화폐론’(1930), ‘일반이론’(1936) 등을 섭렵했다. 또 당시 전 세계 지성계를 뒤흔든 J K 갈브레이스의 저서 ‘불확실성의 시대’를 탐독하면서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케인스주의에 확신을 가지게 됐다.

정 총장은 “정부는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적극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케인스의 이론에 공감했다.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에는 “한국처럼 아직 시장 인프라조차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우선적인 역할은 미시적 구조적 개입을 통해 시장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개혁적 케인스주의’를 주장하게 된다.

그는 특히 케인스의 출생지 명칭을 따라 ‘하비로(路)의 전제’라고 불리는 그의 가치관, 즉 “엘리트들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 사심 없이 정책을 구상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입장에 동감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의 대학이 기능적인 지식의 영역에만 치중해 막스 베버가 말하는 이른바 ‘비지성적 전문가’들만 양산하고 있음을 우려한다. 그가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라는 프랑스의 교육개혁가 M 콩도르세의 말을 자주 인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케인스가 말한 엘리트를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비판적 지성을 갖춘 인재, 공동체적 덕성을 갖춘 인재”를 키워내고 싶어한다.

▼'프로정신' 일깨운 야구 ▼

그는 열렬한 야구광이다. 초중고교 시절 동네 야구에 몰두해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했던 그는 ‘정중하게’ 퇴짜를 놓은 중학교 체육선생님 덕분에 그 열망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인 1958년 미국 메이저리그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팀이 내한해 국가대표팀과 경기하는 것을 보고 ‘최고(Excellence)’를 추구하며 끝없이 연마하는 프로의 세계에 매료됐고 야구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갔다. “미국 유학 중에도 야구경기를 관람하느라 학위 취득이 조금 늦었다”고 변명할 정도다. 지금도 틈만 나면 잠실로 달려가 ‘두산 베어스’를 응원하는 그는 이 팀의 경기만 해도 1년에 20번은 본다.

그는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훌륭한 사회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영국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의 말을 신봉한다. 전문성과 함께 타인에 대한 ‘이해’를 동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프린스턴대 재학시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서 루이스의 ‘경제발전론’ 강의를 통해 훌륭한 경제학자는 경제학 이외의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정치학을 포함해 인접 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읽었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시절(1976∼1978)에도 틈만 나면 정치학이나 법학세미나에 참석했다. 정 총장은 “지금도 사회에 대한 ‘따뜻한 가슴’이 여전히 부족함을 절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학 분야의 새로운 성과를 소화하기 위한 ‘차가운 머리’도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며 끊임없이 자신을 독려한다. 총장으로서 그의 과제는 그래서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서울대생들을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진정한 지성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김형찬 기자·철학 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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