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 생각에는]편견없는 우정…아이가 대견스러워

입력 2003-11-18 16:42수정 2009-10-10 08:35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며칠 전 이사를 했다. 먼 곳도 아니고, 큰길 하나 건너로 가는데도 이사는 만만찮은 상대였다. 베란다 창고며 싱크대 구석구석에 숨은 살림살이들, 아이들이 커서 쓸모없게 된 장난감이며 옷가지들과의 힘겨운 ‘각개전투’를 치른 뒤 이사전쟁을 무사히 마쳤다.

이사를 며칠 앞두고 중1인 큰 아이가 물었다. “엄마, 그 동네는 고등학교 어디로 간대요?”

길 건너로 이사를 가기 때문에 전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점을 이번 이사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던 큰아이가 던진 질문에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중학생 때 사귄 친구들과 계속 만났으면 하는 바램이 깔려 있었다.

이웃들에게 물어보니 길 건너 동네도 이사 전 살던 곳과 같은 고등학교에 배정된다는 것이었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큰 아이는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서울 같은 큰 도시에 살다보면 전세기간이 끝나서, 아이들이 자라 더 큰집이 필요해서, 때로는 명문학군으로 이사하려는 욕심까지 아이들 있는 집은 이사할 일도 많다. 중학생 이상이 되면 학습에 지장을 주거나 왕따 피해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전학을 꺼려 아무래도 아이가 초등학생인 가정이 이사가 잦은 편이다.

우리 큰아이도 전학 경험이 많은 편에 속해서 초등학교 입학에서 졸업 때까지 4개의 학교를 거쳤다. 전학을 할 때면 가능하면 새 학기 첫날 전학을 시켰는데, 새 학기 첫날 초등학교 교무실은 나 같은 학부모들로 붐볐다.

전학을 자주 다니다보니 우리 큰 아이는 죽마고우(竹馬故友)가 없다. 운 좋게도 왕따를 당한 경험은 없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알아온 친한 친구가 없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 통하는 친구가 없는 외로움은 어린 시절보다 더하고, 사람 사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엄마가 되어보니 더 절실하다.

그렇게 소중한 친구라는 존재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알아야하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초(浮草)처럼 자라 마음 둘 친구가 없구나 싶으니 안쓰럽고 미안하다.

게다가 엄마 욕심은 그나마 새로 쌓아 가는 우정마저 훼손시키려 든다.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아이가 새 친구 얘기를 하는데 무심히 물었다. “걔는 어디 살아?”

주거여건에 따라 빈부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고, 여유 없는 가정에서는 아이들 돌보기에도 소홀할 수 있다는 편견까지 내포하는 속물스런 질문이다.

아이도 나도 잠시 어색했던 그 질문 이후 가능하면 새 친구에 대한 궁금증은 “친절한 아이니?” “취미가 너랑 비슷하니?” 하는 질문으로 풀어나간다.

이사 후 학교는 좀더 멀어졌기에 오늘 아침 큰아이는 전에 살던 집에서 보다 15분 정도 일찍 일어나 학교로 출발했다. 창 밖으로 멀어져 가는 아이가 보였다. 우정을 찾는 걸 보니 아이는 더 이상 내 품안의 아이가 아니다. 뒷모습도 이젠 청소년 티가 물씬 풍기는구나.

박경아(서울 강동구 길동)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