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 생각에는]“우리 늦둥이의 뽀뽀는 삶의 보톡스”

  • 입력 2003년 10월 21일 16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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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물고기게임 하자, 응?” 다섯살짜리 우리 집 늦둥이 막내는 오늘도 중학교 1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며칠 앞두고 열심히 공부 중인 형 옆에 붙어 서서 컴퓨터게임을 하자며 조르고 있다.

“안돼!” “왜 안 되는데?” “시험 보잖아.” “그래도 하자….”

참다 못한 큰 녀석이 날 부른다. “엄마! 얘 좀 데려가!”

큰아이가 중학생이 된 뒤 시험 때면 이런 일이 반복된다. 형이 한동안 컴퓨터게임을 같이 안 해 주어 속이 상했는지 막내 눈에 눈물까지 글썽하다. 한 녀석은 놀아야 할 나이이고, 한 녀석은 공부해야 할 나이이고, 우리 집의 딜레마다. 나이 터울이 많지 않으면 놀 때 같이 놀고, 같이 공부하면서 자랄 텐데. 9년 터울이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다.

이뿐인가. 막내가 기어다니기 시작한 뒤 큰아이는 방에 들어와 책이며 공책에 낙서를 하고, 아끼는 장난감도 무단으로 가져가 버리는 철없는 동생 때문에 무수한 ‘시련’을 겪어왔다. 막내도 형이 초등학생 때는 그런 대로 함께 놀아주더니 요즘은 시험이다 학원이다 바쁘다보니 섭섭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늦둥이 막내는 오늘 저녁 형에게 또 ‘바람’을 맞고 혼자 놀더니 어느 틈에 거실바닥에 잠들어있다. 앞으로도 형은 바쁠 것이고 공부가 뭔지 이해 못하는 늦둥이는 한동안 계속 섭섭하겠지.

잠들어있는 아이 얼굴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살 냄새를 맡으면 아직도 달콤함이 느껴진다. 잠시 쉬는 틈에 나와 동생의 손발을 만져보는 큰아이 얼굴도 귀여워 못살겠다는 표정이다. 늦둥이의 장난 때문에 집안 여기저기가 성치 않지만 귀여운 짓에다 ‘살인뽀뽀’까지 온 가족에게 어린 생명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을 잔뜩 선사하고 있다.

늦둥이의 존재는 새로운 책임이기도 하다. 늦둥이가 태어나 병원에서 퇴원한 날 아기가 전적으로 내 손에 맡겨진다는 사실이 두렵기까지 했다. 더욱이 큰아이 때는 직장생활을 하느라 친정엄마가 도와주셨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안 했던 엄마들은 다른 줄 알았더니 너무 오랜만에 아기를 키우게 되니 물 얼마에 우유 몇 스푼을 탔더라 하고 헷갈리는 건 마찬가지라고들 한다.

늦둥이 엄마가 되면 덕보는 것도 있다. 마흔을 갓 넘긴 나를 큰아이랑 같이 가면 40대, 막내랑 같이 가면 30대로 보아준다. 늦둥이는 젊어지는데 보톡스보다도 효과적이다.

늦둥이에게 미안한 점도 있다. 지금이야 덜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다른 젊은 엄마들과 비교되는 게 아이에게 마음 상한 일이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얼마 전 한번 물어보았다. “엄마 할머니 되면 어떨 것 같아?” 아이가 너무나 속상한 얼굴이 되어 와락 내 품에 뛰어들었다. “싫어! 엄마 할머니 되지마” “엄마가 안 늙었으면 좋겠어?” “응,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세상 사람들이 소름이 돋는다 해도 난 늦둥이가 좋다.

박경아 서울 강동구 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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