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테마여행]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 日나가사키현

  • 입력 2003년 6월 19일 16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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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항구의 아름다운 야경. 나가사키는 일본이 서양 문명과 처음 교류한 곳이고 원자 폭탄이 투하된 도시이기도 하다.사진제공=일본 국제관광진흥협
나가사키 항구의 아름다운 야경. 나가사키는 일본이 서양 문명과 처음 교류한 곳이고 원자 폭탄이 투하된 도시이기도 하다.사진제공=일본 국제관광진흥협
나비부인 카스텔라 원자폭탄….

나가사키(長崎)를 여행하는 매력은 이들 단어를 길잡이 삼아 둘러보는 일본 근대사의 애달픈 후일담에 있다. 나가사키 개항은 1571년. 서방인으로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인들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포르투갈의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운 음식과 일본을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만들어준 단단한 화기가 함께 들어왔다.

문화적 혼돈도 존재했다. 나비부인 같은 일본 여인들의 애환이 그 중 하나이다. 그래서 나가사키를 여행할 땐 빛바랜 유럽 스타일의 저택들이 담담히 전해주는 독특한 내력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푸치니의 손끝에서 살아난 향수

“이별하던 그날에 사랑하는 그이는/ 내게 말했다오, 오 버터플라이/ 그대가 기다리면 내 꼭 돌아오리라/ 어느 갠 날 바닷물 저편에/ 연기 뿜으며 흰 기선 나타나고/ 늠름한 내 사랑 돌아오리라….”

나가사키의 명소인 하우스텐보스 전경. 네덜란드의 거리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테마파크다.사진제공=일본국제관광진흥협회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나비부인이 미국 해군인 남편 핑커턴을 그리며 부르는 아리아 ‘어떤 갠 날’이다.

‘나비부인’의 공간적 배경은 일본 서쪽 규슈(九州) 지방의 나가사키현이다. 원래 존 루더 롱이라는 소설가가 1858년 미국의 센추리지에 게재한 소설이었는데 작가는 미국 선교사의 부인으로 나가사키에 오래 살았던 누나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썼다고 한다.

소설에 따르면 “나비부인은 그의 조상에게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배웠고 핑커턴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웠는데 결국 그녀는 죽음을 택하게 됐다.”

소설 ‘나비부인’은 대단한 호평을 받았고 데이비드 벨라스코가 1900년 희곡으로 다시 써 뉴욕 헤럴드 극장 무대에 올렸다. ‘나비부인’은 연극으로도 흥행에 성공했고 런던 공연을 보고 눈물을 흘린 푸치니가 오페라로 제작했다.

1904년 2월 27일 밤 밀라노 스칼라 극장의 막이 오르고 오페라 ‘나비부인’이 초연됐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푸치니는 수정을 거쳐 3개월 후 다시 무대에 올려 대성공을 거둔다. ‘나비부인’의 뮤지컬 버전이 ‘미스 사이공’이다.

●글로버가든에서 만난 나비부인

나가사키현은 5개의 반도와 수백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항구도시다. ‘나가사키엔 오늘도 비가 내린다’는 일본의 가요를 들먹이지 않아도 다른 지방에 비해 비가 잦은 편이다. 우리나라 남해를 거쳐 북상하는 태풍의 대부분이 이곳을 거친다.

동서 문화가 교차하는 나가사키의 이국적인 모습은 일본 속 또 다른 나라 같다. 시내는 그다지 크지 않은 편이고 관광 명소도 대부분 중심부에 모여 있어 전차만으로도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나가사키의 명물 데지마는 1636년 천주교 탄압을 목적으로 만든 인공섬이다. 부챗살처럼 생긴 섬의 규모는 5000평 정도. 그때까지 시내에 살고 있던 포르투갈인들이 이 섬에 격리됐고 그 후 200년 동안 데지마는 일본 유일의 해외 무역 창구가 됐다.

데지마는 메이지 시대에 매립돼 없어지고 지금은 15분의 1 크기의 모형으로 재현한 미니 데지마와 실물 크기로 재현한 네덜란드 무역 상사, 데지마의 역사를 알려주는 자료관과 극장 등이 있다. 나비부인도 핑커턴을 만나기 전엔 기생의 신분으로 서양인을 위한 이곳 유곽에서 살았던 것으로 설정돼 있다.

나가사키항이 내려다보이는 미나미야마테(南山手)의 언덕에는 서양식 건물과 화려한 정원이 아름다운 글로버 가든이 있다. 오래 전 영국 상인들이 숙소로 쓰던 곳으로 1만평에 달하는 정원이 조성돼 있다.

세계 각국의 꽃이 만개한 이 정원엔 서양식 건물 8동을 복원해 놓았는데 그 이국적인 풍경은 나가사키를 상징하는 관광 포스터에도 자주 등장한다. 스코틀랜드의 무역상인 토머스 글로버의 목조 건물인 글로버 저택, 링거 저택, 오르트 저택 등 독특한 건축 양식의 건물들이 볼 만하다. 이곳에 있는 자유정은 1878년에 지어진 일본 최초의 서양음식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나비부인으로 유명한 프리마돈나 미우라 다마키와 푸치니의 동상, 나가사키 전통 예능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오우라 성당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나가사키를 여행할 때 빼놓지 않고 들르는 오란다 자카(네덜란드 언덕이라는 뜻)도 이곳에서 멀지 않다. 돌이 깔린 산책로로 유럽식 기념품점들이 있고 오래전에 지은 12개의 외국 공관들이 줄지어 있다. 지금은 대부분 카페로 변신해 관광객을 맞고 있는데 세련된 유럽식 거리와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나가사키 시내로 들어가면 일본 최초의 사진관인 우에노 촬영국이 있다. 사진관을 운영했던 우에노 켄바는 이토 히로부미와 제1차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했던 김옥균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시 북부에 있는 원폭공원과 자료관, 평화공원은 원폭 피해의 실태와 대책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전시한 공간들이다.

시내를 벗어나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사세보시의 오무라(大村)가 나온다. 이곳에 또 다른 나가사키의 명물인 하우스텐보스(네덜란드어로 ‘숲속의 집’이라는 뜻)가 있다. 이 테마파크는 17세기 네덜란드의 거리 전경을 그대로 재현한 리조트다.

부지가 46만1000평으로 모나코 왕국의 크기와 비슷하다. 운하와 풍차탑, 궁전 등이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어 네덜란드에 대한 향수를 잘 표현하고 있다. 건설비만 4조원이 들었다는데 모방에 능한 일본인들의 솜씨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테마파크다.

● 찾아가는 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나가사키 공항까지는1시간50분, 간사이 국제 공항에서 1시간

10분. 도쿄역에서 기차로

나가사키까지 약 7시간.

오사카에서 기차로 나가사키까지

약 4시간25분.

나가사키 공항에서 버스로 하우스텐보스

까지는 약 50분 걸린다.

● 여행정보

데지마 자료관 개관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 연중무휴다. 입장료는 300엔.

데지마 극장은 월요일 휴무이고 입장료는

무료. 하우스텐보스는 오전 9시∼오후 7시 연중무휴로 개장한다. 자유이용권 가격은

4800엔, 어린이 2600엔. 입장료는 성인 3200엔, 어린이 1000엔.

(www.huistenbosch.co.jp)

나가사키에서는 카스텔라를 꼭 맛보아야

한다. 포르투갈이 전수한 제조법으로 만든 나가사키 카스텔라는 역사가 400년 정도

된다.15대에 걸쳐 카스텔라만 만들어온 후쿠사야 본점을 비롯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다. 코코아맛 나는

오란다 케이크가 약 700엔이다.

● 기타정보

나가사키에 관한 일반 정보는 일본국제

관광진흥협회(서울사무소 02-732-7525,

www.jnto.go.jp/kor)나 한국어가

제공되는 나가사키 관광청 홈페이지

(www.pref.nagasaki.jp/naisnet/kr)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행칼럼니스트 nolja@world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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