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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두의 도시와 예술가]②올림피아와 파우사니아스

입력 2002-11-11 17:55업데이트 2009-09-17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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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사진제공 노성두씨
《세상에서 끗발이 제일 좋은 도시는? 2500년쯤 전으로 돌아가서 그리스 사람들에게 물어 본다면 ‘아, 당근 올림피아지’라는 대답이 돌아왔을 것이다. 사철 물이 넉넉한 알페이오스 강이 기름진 알티스 평원을 휘감아 흐르는 풍요로운 도시 올림피아의 수방 사령관은 다름 아닌 제우스. 올림포스의 으뜸 신이 두 눈 부릅뜨고 벼락까지 꼰아쥐고 있으니 이곳에서 고대 최고의 제전 올림픽 경기가 열렸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까짓 것, 추첨 같은 것도 생략하고 1000년 가까이 올림피아에서 개최를 독식했다고 한다.》

올림피아는 또 고대 역사의 발원점이기도 하다. 기원전 5세기 소피스트 철학자 히피아스가 올림피아의 첫 스포츠 제전이 기원전 776년이라고 못 박는 바람에, 그 후 고대 역사의 편년을 꼽을 때 기준 삼게 된 것이다. 가령, 타소스 출신의 화가 폴리그노토스가 속이 훤히 비치는 알몸 여인을 그려서 뭇 남성을 설레게 한 것이 아흔번 째 올림픽 제전을 앞두고 였다는 기록을 두고는, “가만 있자, 776년에서 사구는 삼십육, 360년을 빼면 416년이렸다. 그렇다면, 옳거니! 기원전 420년부터 417년 사이에 있었던 일이로군” 하는 식이었다.

올림피아 제전은 원래 운동시합이라기보다 동일 신을 모시는 도시국가 사이의 화합과 평화를 내건 종교 문화 축제였다고 한다. 행사기간 동안에는 국가간 분쟁이나 개인송사 따위도 잠시 접어 두었다니까, 단순한 눈요기나 돈벌이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올림피아에 모인 도시국가 대표들은 경기 응원하는 일 말고도 민속장터를 함께 열고 제사를 올리는 등 정치 현안에 머리를 모으며 우호와 결속을 다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니까 체전을 빌미 삼아 무역 엑스포에다 판헬레나 정상회담까지 다 챙기면서 실속을 제대로 차린 셈이다.

모두 엿새동안 진행되는 올림픽 일정을 살펴보면, 첫 날은 대회 선언과 페어플레이 서약, 이튿날은 소년 체전, 사흘째는 오종경기와 올림피아의 창건시조 펠롭스 제의, 나흘째는 제우스신에게 바치는 제사 의례, 그리고 닷새째 가서야 운동 시합이 있다. 마지막 날은 올리브 관 수여식과 폐막식. 그러니까 실제 스타디온에서 경기를 뛰는 날은 고작 이틀뿐이다.

한편, 올림피아에서 승리한 선수들한테는 돈벼락에다 출세길이 활짝 열렸다. 기원전 6세기 솔론 체제하의 아테네에서는 우승선수한테 양을 500마리나 안겼고, 5세기에는 시청 프리타네이온에서 평생동안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특별 식권을 연금 대신 챙겨주었다니까, 국위선양했다고 군대면제 같은 것으로 생색내는 정도는 특혜 축에도 못 낀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건축 이론서를 쓴 비트루비우스는 이런 것이 눈꼴 사나왔던지 “운동선수들은 월계관과 환호를 차지하고 종신연금을 타먹으며 인생을 즐기는데, 힘들여 책을 써서 오랜 세월 인류에게 막역한 공적을 끼치는 우리 글쟁이한테는 웬 푸대접이냐”고 탄식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요즘 억대 몸값을 뽐내는 스포츠 스타들도 꽤 역사가 깊은 셈이다.

여행전문가 파우사니아스는 기원전 175년 올림피아 성역을 방문하면서 입을 딱 벌렸다고 한다. 성역 안에 실물 크기를 넘는 씩씩한 청동 조각상들이 200점도 넘게 시커먼 숲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올림피아 경기의 기념조각들이었다. 초상조각을 청동으로 구워서 성역에 전시하는 것은 올림피아 우승자들만의 신성한 권리였다.

가령 전차 경기에서 일등을 하면 우승자뿐 아니라 말과 수레, 말몰이꾼, 말 시중꾼을 죄다 청동으로 구워서 신전 가까이 영구 전시할 수 있었다. 덕분에 재미를 본 것은 청동조각가들이었다. 올림피아 제전에 때맞추어 그리스 전역에서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는 조각가들이 공방 식구들을 데리고 와서 이곳에다 간이 공방을 차렸다.

이들이 제작하는 우승자들의 모습도 처음에는 어깨에 힘을 주고 뻣뻣하게 서 있는 모습 일색이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경 부터는 뛰고, 달리고, 던지고, 맞붙어서 메치고, 주먹을 주고받는 5종 경기의 역동적인 자세가 인기를 끌면서 조각가들의 창의성에도 불이 붙기 시작한다. 미술의 역사라는 장거리 경주에서 예술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상상력이 뒷심을 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 올림피아에서였다.

노성두 미술평론가·nohsh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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