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LOOK]한국 영화-애니메이션의 갈 길

  • 입력 2003년 3월 5일 19시 27분


코멘트

《오늘은 현대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 장르인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짚어 봅니다. 요즘 한국 영화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구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칸, 베를린 같은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감독상, 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스크린쿼터를 지켜내 할리우드의 무차별적 문화공세를 막아낸 한국 영화인들의 사례는 국제적으로도 칭송되고 있습니다. 김소영 교수는 아시아 영화의 진흥을 개괄하면서 한국 영화가 진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할리우드보다 아시아를 비교의 근거로 삼아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성찰하는 인터 아시아(Inter-Asia) 영화에 주목할 것을 권합니다. 박세형 교수는 제9의 예술이라 불리며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부흥하기 위해서는 제작분야 전문가의 입지를 넓혀서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김윤철 연극원교수》

현재 아시아 영화계에서 떠오르는 스타는 분명 한국 영화다. 태국의 사무직 여성들은 ‘엽기적인 그녀’에 폭발적 열광을 보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일본에서 한국 영화의 이미지를 바꾸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한국에도 예술 영화가 있다는 것을 홍콩에 알렸다. 한국 영화가 TV 드라마, 가요 등이 일으킨 한류의 파도를 타고 아시아를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최근 아시아의 관객들을 주 대상으로 아시아에서 소통되는 영화들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바로 이들이 만들어 내는 물결이 ‘인터 아시아(Inter-Asia)’ 영화다. 극장 필름으로만이 아니라 이제 비디오나 VCD 그리고 DVD의 보급으로 인터 아시아 영화의 유통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

최근 한국 영화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것은 ‘낭낙’과 ‘잔다라’의 감독 논지 니미부트르가 이끄는 태국 영화. 태국 출신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친애하는 당신’은 작년 전 세계 비평가들로부터 주목받았다. 이전 아시아 영화가 일본 중국 인도만의 ‘삼국지’였던 것에 비해 현재 아시아 영화의 지도는 광대하다.

이란과 대만의 예술 영화는 꾸준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또 일본, 한국과의 합작을 통해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명실상부한 초(trans)아시아 영화로 부상했던 홍콩 액션 영화들은 2000년대 할리우드 액션 장면들을 환골탈태시키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약진은 점차 디즈니를 아이들 장난으로 보이게 한다.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에 맞서는 한국형, 태국형, 중국형, 발리우드 등의 지역 블록버스터들이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꾸준히 제작되어 아시아 전역에서 유통되고 있다. 인도의 영화 ‘춤추는 무뚜’는 일본에서 ‘타이타닉’에 버금가는 흥행을 거두었다.

부산 국제 영화제와 다른 각종 영화제들을 통해, 또 극장 상영 등을 통해 아시아 영화는 한국 영화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화적 상상력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마치 곁에 있는 이웃이기나 한 것처럼 우리는 왕자웨이(王家衛)의 차기작 ‘2046’을 궁금해하고, 허우샤오셴(候孝腎)의 다음 작품이 무엇일까 마음 졸인다.

왕자웨이의 홍콩과 허우샤오셴의 대만과 한국은 이렇게 영화들을 통해 서로 소통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소무’의 자장커(賈樟柯), ‘애정만세’의 차이밍량(蔡明亮)의 재능과 용기에 감탄한다. 그들을 한국 감독들과 비교해 보기도 한다. 그들이 그려내는 청년 문화를 근거로 한국의 문화를 성찰하기도 한다.

바로 이렇게 비교와 성찰의 참조 틀이 변하는 것. 말하자면 할리우드 대 한국이라는 불가능한 욕망의 지도를 버리고 아시아와 한국으로 비교의 근거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시아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인식론적 선물이다. 그리고 이것이 탈식민주의적 사고이기도 하다.

서구 제국주의가 서구와 비서구, 동양이라는 이분법을 만들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서 아시아는 서구와의 차이 속에서 만들어진 범주다. 그 결과, 식민지를 거친 비서구의 사람들은 이웃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배우는 대신 서구의 중심, 뉴욕 파리 런던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다. 예컨대 한국인들은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다른 동남아시아에 대해 학교에서 배울 기회가 매우 적다. 그래서 동남아시아의 영화들은 유쾌하고 정감어린 대안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할 것이다.

떠오르는 별이긴 하되 한국 영화는 아직은 기라성이 아니다. 각국 영화제 관계자들은 아직도 한국 영화에 어떤 독창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한국 영화가 진정으로 아시아인으로부터 사랑받는 인터 아시아 영화가 되기 위해선 생각하는 방식을 좀 바꿀 필요가 있다. 중국과 일본에 이은 아시아의 맹주가 되기를 욕망하면서 아시아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작지만 성찰적인 영화, 아시아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에 민감하고 그 미래에 예민한 시선을 보내는 영화만이 샛별, 한국 영화를 아시아라는 성운 속에서 빛나게 할 것이다.

김소영 영상원교수 ·영화평론가

▼머리 큰 만큼 손-발도 키워라 ▼

성인이 볼만한 애니메이션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조형, 스토리, 음악 등이 구현되어야 하고 극적 ‘리얼리티’가 있어야 한다. 위로부터 한국의 ‘마리이야기’, 일본의 ‘센과 치히로’, ‘이웃집 토토로’. -동아일보 자료사진

디지털 인프라의 발전과 함께 정보기술(IT), 문화기술(CT) 시대로 대변되는 현 사회에서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은 보다 광범위하다. e메일 한 통에서부터 자동차와 항공기를 생산하는 첨단 공장의 시뮬레이션에 이르기까지 애니메이션이 쓰이지 않는 곳은 없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실사 영상을 제외한 모든 동영상이 애니메이션이다. 또 애니메이션은 이미지 구현에 있어서 초현실적인 특성을 갖는다. 미술의 다양한 조형 양식을 모조리 차용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은 사실, 비사실의 개념마저 초월하는 다양한 표현 양식을 갖고 있다. 문자마저 애니메이션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각, 서사, 음향, 매체기술을 아우르는 복합적 연출 특성을 모두 가졌다.

지역적 장벽도 무너져서 만화 영화에서 대화형 게임 애니메이션, 웹에 이르기까지 국내뿐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접할 기회도 많아졌다. 디즈니로 대변되는 미국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실험 정신과 예술성이 넘치는 유럽 애니메이션, 또 섬세한 장인 정신이 돋보이는 일본 애니메이션까지 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관객과 청년 마니아 층의 안목은 매우 높고 전문가들의 작품 수준도 날로 향상되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극장조차 잡기 어려운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이 ‘21세기 비교 우위 전략 산업’이란 명제에도 불구하고 그 장래가 밝지만은 않다.

최근 한국 영화가 흥행에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가 ‘볼 만한 것’에 대한 대중의 지지라면 애니메이션이 ‘볼 만한 것’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인이 볼 만한 애니메이션은 그만한 수준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조형, 스토리, 음악 등이 구현되어야 하고 어떤 측면에서든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극적 ‘리얼리티’가 있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기획 창작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에 상응하는 인적 물적 시스템이 고르게 형성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영화의 경우는 연출, 스토리, 음악, 편집 등의 제작과 유통의 프로세스를 위한 전문가군이 어느 정도 일관성 있게 확보되고 지원 기구도 안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영화와 만화, 게임, 캐릭터 등의 서로 비슷한 분야가 전혀 다른 시스템에 속하는 등 그 효율성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IT시대인 지금, 애니메이션은 새롭게 분류되어야 한다. 즉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게임, 팬시 등 소위 문화 콘텐츠 산업으로의 다양한 파급효과(One Source Multi Use)와 그 밀접한 상호 관계에 주목하여 콘텐츠 산업이자 문화의 한 갈래로서 다루는 것이 옳다.

20세기가 산업화 시대로서 각 분야의 세밀한 분화작업과 개념 독립을 통해서 전문화시켜 왔다면 21세기 정보 디지털 사회는 이를 다시 통합하고 효율성의 흐름에 따라 조정, 재배치하는 네트워크 시대의 전문특성을 살려야 한다.

애니메이션의 이미지 작업은 디지털 시대라 할지라도 변함없는 엄청난 노동의 양과 조형 연출의 치밀함이 요구된다. 영화와 달리 프레임 하나하나가 해당 전문가의 조형 능력과 그리기 노동으로부터 배어 나와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정작 제작 분야 전문가의 입지는 매우 좁다. 우리에게는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감독이 없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을 받쳐 줄 전문 스태프, 즉 동화나 배경 등의 전문가가 없다.

우리의 인력구조는 가분수다. 즉 상징적 감독, 이론가, 마케팅 전문가는 많은데 제작인력의 튼튼한 받침이 없는 것이다. 기획 창작 인력이란 비주얼, 내러티브, 사운드, 미디어텍, 마케팅의 창의력 있고 조화 있게 아웃풋을 만들어내는 인적 시스템 자체를 말하는 것이지 하부구조 없는 상부구조의 허망함과 상징적 개인의 부각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의 견고함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트랜스 장르적 예술 또는 산업의 덩어리인 애니메이션 발전을 위한 패러다임의 핵심이다.

박세형 영상원교수 ·애니메이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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