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LOOK]현대건축의 새로운 물결

  • 입력 2003년 2월 19일 19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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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는 현대건축의 특징을 통해 동시대 예술의 중요한 흐름 하나를 짚어 보고자 합니다. 건축은 인문학과 공학, 예술과 기술, 전통과 첨단, 이론과 실제, 인공과 자연 등 인간의 존재 양식과 관계되는 모든 분야를 수용하고 통합하는 종합예술입니다. 땅은 특정한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그 위에는 통계적 인간이 아니라, 감정적 욕망과 구체적 사회 관계를 맺는 인간들의 사소한 삶이 벌어집니다. 이념적인 건축을 제시하고 실험한 모더니즘 건축은 실패입니다. 인간을 떠난, 대지를 떠난, 사회를 떠난 건축, 다시 말해 일상과 괴리된 이념뿐인 건축이었기 때문이지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담론들과 건축적 시도들은 비판적 지역주의의 태도를 통해 일상을 발견하고, 랜드스케이프(landscape)라는 방법론으로 일상을 실현하며, 새롭게 변화된 인간과 사회의 미래적 일상을 실험해 보는 움직임들로 요약됩니다. 김윤철 연극원 교수》

▼첨단-전통의 행복한 만남 ▼

일상을 꿰뚫는 지역주의 건축

1980년대 루브르박물관 증축 설계에서 피라미드를 유리로 재해석한 아이오밍 페이가 건축한 일본 미호미술관. -사진제공 김봉렬씨

근대 건축의 획기적 발명품들인 공장 백화점 아파트 등이 비판받는 이유는 불편하다거나 못 생겨서가 아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문화와 역사가 다르고 지형적 조건이 다른데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아 사회의 일상과 괴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건축으로 회귀한다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며 또 다른 반(反)일상이다. 아무리 조선시대 한옥이 훌륭해도 현대에는 불편하고 비경제적이다.

현대 건축이 성취한 기술적 진보와 각 지역이 이룩한 문화적 전통을 통합할 수 있는 ‘제3의 길’은 없는가?

이미 20세기 중반부터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 핀란드 건축가 알바 알토는 당시 전 세계를 휩쓸던 모더니즘 건축의 기술적 성과를 수용하면서도, 핀란드 자연과 문화적 풍토에 적합한 건축을 추구했다. 현대 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사용자의 문화적 자긍심을 만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건축을 이룩함으로써 그는 르 코르뷔제와 더불어 근대건축의 5대 거장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의 건축을 케네스 프램턴은 ‘비판적 지역주의’ ‘새로운 지역주의’라 명명했다. 비판적 지역주의는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식의 국수주의적, 대중적 지역주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과거 지향적이고 특수한 형태와 양식에 집착하면서 외래문화에 대해 폐쇄적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사고와 가치를 추구하는 개방적 건축이다.

이 건축양식은 모더니즘 운동의 주변 국가 건축가들, 더 나아가 제3세계 건축가들에 의해 전개되어 더욱 풍성한 성과들을 거두었다. 포르투갈의 알바로 시자, 스위스의 마리오 보타, 덴마크의 요른 웃존, 스웨덴의 스베르 펜이 유럽의 거장들이라면, 멕시코의 루이스 바라간과 일본의 안도 다다오 등은 비 유럽권 거장들이다. 이들은 단지 자국의 문화적 전통에만 안주하는 지역적 건축가가 아니라 세계 건축의 방향을 이끌고 새로운 기술적 대안들을 제시하는 세계적 건축가들이다.

이들은 현대 건축의 진보적인 성과를 수용하며 거대 프로젝트보다는 소규모의 일상적 프로젝트를 선호한다. 건물의 형태보다는 대지와 구조물이 만드는 총체적 환경을 중요시하고 시각적 아름다움보다 재료나 소리, 냄새와 같은 종합적 감성을 추구한다. 결과적으로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개성과 자유, 다양성,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비주류의 건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20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세계 건축이 이룩한 소중한 성과들은 이 같은 태도를 견지한 건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상성 연구의 대가인 르페브르는 “지역적 대상의 탐구는 구체성과 현실성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이며, 건축을 다시 인간화시키기 위한 조건이다”라고 단언한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이 태도는 유효하며 건축이 존속하는 한 소중한 가치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멕시코 건축가 레고레타는 뉴멕시코 토착 인디언들의 흙집의 형태적, 공간적, 기술적 전통을 응용하여 미국 서부에 샌타페이미술관을 설계했다.

아이오밍 페이는 1980년대 루브르박물관 증축 설계에서 유럽 문화의 효시인 피라미드를 유리로 재해석했고 최근의 일본 미호미술관에서는 일본 문화의 진수인 신사 건축의 영감을 경량 철골 구조로 재구성했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는 다르지만 프랑스와 일본의 지역적 전통에서 시작한 첨단의 현대 건축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이러한 태도가 곧 비판적 지역주의 건축의 핵심이다.

김봉렬 미술원 건축과 교수

▼겉은 아파트, 속은 미로 ▼

새로운 일상 -노마드·노마돌로지

오랜 세월 사람들은 한곳에 머무르는 정주(定住) 사회에서 살았다. 건축이야말로 이런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는 데 효과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정주’란 지식 체계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쳐서 기존의 서양철학사는 정주에 기반한 인간 중심주의의 사유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철학자들은 우리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이념적 전제들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 정당성과 보편 타당성을 허구라고 폭로한다.

요코하마 여객선터미널은 다양한 공간들을 자연 지형과 같이 만들어 냄으로써 내부와 외부 공간의 구별을 없애고 건물과 광장이라는 이분법적 정의도 무너뜨렸다. -사진제공 김봉렬씨

질 들뢰즈는 철학과 사유를 체계화, 전체화하려는 모든 시도를 일관되게 비판하면서 ‘노마드’ 혹은 ‘노마돌로지(nomadology·유목학)’를 제안했다. 가타리와 함께 쓴 ‘천개의 고원’은 인간을 프로이트가 정형화한 억압된 존재가 아니라 욕망하는 기계로, 기관 없는 신체로 설명하고 있다. 노마돌로지란 궁극적으로 한곳에 머무르는 정주의 형식을 뛰어넘어, 스스로가 원인이며 결과로 이행하는 역동적이면서 유연한 삶의 형식을 도모한다.

들뢰즈의 사유방식은 특히 모더니즘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개념을 확장시키는 큰길을 열어 주었다. 평평한 바닥, 벽과 지붕으로 형식화된 건축의 내재적 문법을 벗어나 바닥이 벽이 되고, 벽이 지붕이 되며, 지붕이 마당이나 길이 되는 모험을 시작하였다. 그래서 건축이라는 고정된 형태 속에 삶을 구겨 넣는 것이 아니라 유연한 삶이 건축이 되고 풍경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보사회의 도시 거주인들의 다양한 삶을 담아 내는 그릇으로 일본 도쿄만에 제안한 ‘One room skyscraper(122층) 계획안’은 정주의 개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독신자들을 위한 초고층 주거공간인 이 빌딩은 같은 층에 어떤 사람은 2층공간을, 어떤 사람은 3층공간을 사용하도록 공간을 구성해 마치 내부를 미로와 퍼즐처럼 만든다. 낮에는 유리창이 규칙적인 정형화된 건물이지만 밤에는 다양한 공간의 조명이 비쳐 장관을 이룬다.

정형화된 타워에 이슬람 도시와 같은 미궁을 내장한 새로운 거주 형식은 건물을 인프라로, 인간을 네트워크 인자의 집적으로 보여 준다. 인간은 이제 여기와 저기 사이의 터미널에 거주하며 정주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고, 건축가들은 이러한 새로운 삶을 담아 내면서도 고정된 형상을 거부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정기용 미술원 건축과 객원교수

▼모더니즘을 뛰어넘어…▼

랜드스케이프를 통한 일상성 회복

현재까지 세계 건축을 주도하고 있는 이념은 20세기 초반에 형성된 모더니즘이다. 모더니즘적 건축은 건축물 자체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구축하는 방법을 중요하게 여길 뿐, 자연은 오직 건축물을 위한 배경으로 이용되었다. 대개 자연은 주어진 것이고 인위적인 건축물과는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전제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과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일상적 존재다.

스페인 건축가 에두아드 브루는 ‘새로운 랜드스케이프(경관 또는 풍경)’란 책을 통해 자연과 인공적인 것들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려고 시도한다. 개별적인 건축물과 건축의 배경으로 여겨졌던 자연의 구분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동 수단의 발전에 따라 장소를 내부와 외부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해졌고, 도시 환경의 급속한 변화로 도시 자체가 새로운 인공적 자연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이란 숲이나 초원과 같은 전원적 자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건축물들이 밀집되어 있는 도시적 풍경까지도 포함한다.

건축이 곧 랜드스케이프라는 개념은 건축의 오래된 정의, 즉 자연이라는 배경 속에 놓여지는 형상적 오브제라는 낡은 관념을 버린다. 오히려 건축적 배경으로서의 장소, 또는 대지를 포함한 주변 상황과의 ‘관계’를 디자인하는 것이 곧 건축이라 생각한다.

최근 완공된 요코하마 여객선터미널(설계·Foreign Office Archi-tects)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건물이 가지는 다양한 성격의 공간들을 자연 지형과 같이 만들어 냄으로써 내부와 외부 공간의 구별을 모호하게 하고, 건물과 광장이라는 기존의 이분법적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역시 최근에 문을 연 한강의 선유도공원(설계·조성룡 도시건축)도 개별적인 건축물에 중요성을 두기보다는 기존의 정수사업소 건물을 포함한 주어진 환경이 하나의 새로운 장소로서 역할하도록 건축적인 관계를 맺어주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럼으로써 건축 자체가 도시 환경의 일부가 되어 새로운 랜드스케이프를 만들고 그 친숙한 풍경 속에서 일상적 삶을 회복하려 한다.

김종규 미술원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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