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LOOK]강자와 약자 대화하는 '세계화'를

  • 입력 2003년 2월 5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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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과 전통음악으로 나누는 이분법은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95년 유엔 창설 50돌을 맞아 열린 경축음악회에서 협연한 KBS교향악단(지휘 정명훈)과 사물놀이패. 동아일보 자료사진
서양음악과 전통음악으로 나누는 이분법은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95년 유엔 창설 50돌을 맞아 열린 경축음악회에서 협연한 KBS교향악단(지휘 정명훈)과 사물놀이패. 동아일보 자료사진

세상이 달라진다고들 한다. 영웅적인 인물 대신 다수가 역사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사회에서, 현대화를 외치던 20세기가 가고 세계화를 문화가치의 지표로 삼는 21세기를 맞이했다.

‘전통음악의 현대화’는 어느 새 ‘우리문화의 세계화’라는 구호로 바뀌었고 ‘월드뮤직’이 ‘크로스오버’를 대신하여 새로운 유행어가 되고 있다. ‘혼종’은 이러한 세계화 시대에서 이질적인 문화적 주체들이 만나는 화해의 아이디어로서 환영받는다. 타인과의 대화전략으로서, 그리고 지리적 경계가 무의미해진 정보시대의 문화적 취향으로서 음악적 혼종은 오늘날 우리 주변의 곳곳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서로 다른 문화적 언어가 함께 섞이는 것을 혼종이라고 한다면, 서구화를 지향해 온 우리 문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혼종이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의 경험은 그런 혼종적 성격을 초래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던 혼종화로 인하여 이후 우리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면서 ‘순수’ 혹은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식민통치가 우리를 과거로부터 격리시켰다는 상실감 대신 변화를 거듭해 온 지난 일백년의 경험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오늘의 우리는, 사물놀이나 창극 같은 ‘창조적 전통’을 즐기고자 하고 식민상처에 대한 치유책으로 선택했던 ‘현대화’의 모범, 서구의 고급문화에 대해서도 보다 당당해지고자 노력을 한다.

궁중음악의 정통성 계승에 몰두하던 국립국악원의 무대는 일본 고토와 사미센을 초대했고, 카라얀을 부르는 데 쓰이던 외화는 마이클 잭슨에게도 지불될 가치가 있다며 왈가왈부 몸살도 앓아 보았다. 쿠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삶이 묻어나는 공연에 감동할 줄 알고 ‘스텀프’나 ‘델라구아다’ 같이 서구 ‘순수예술’의 장르를 해체하는 공연의 즐거움도 경쟁적으로 수용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런 우리가 스스로 원하는 오늘의 문화적 혼종화는 지난날처럼 피동적이지도 않고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지도 않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이분법, 서양음악과 전통음악의 이분법은 모호해졌고, 서구로부터 배운 지식으로 오히려 서구에 맞서고자 나선 우리들의 ‘세계화’는 탈식민주의 이론이 말하는 이른바 ‘지적 혼종(intellectual hybrid)’의 전략을 닮은 듯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세계화 작업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어느 창작뮤지컬은 국내에서의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본고장’에서 격찬을 받았다는 문구로 당당하게 ‘작품성’을 주장하고 미국의 음반산업이 주도하는 ‘월드뮤직’은 문화식민주의적 혐의로부터 자유로운 채 탈서구의 해방구인 양 환대를 받는다.

국외 공연시장에서의 경제적 수익을 앞세우는 ‘우리문화의 세계화’ 구호 안에서 재력 있는 서구시장의 주인들은 여전히 예술적 생산물의 심판자로 존재하고 서구의 취향은 아직도 우리의 모범이곤 한다. 꽹과리와 장구가 동원되고 한국인의 혈통을 가진 작곡가와 공연자들이 참여하더라도 서구인이 인정함으로써만이 비로소 이루어지는 ‘세계화’에는 진정한 문화주체로서의 우리사회가 설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간과하고 있다. 세계화를 위해 서구취향에만 몰두하는 우리의 혼종작업에는 먼저 우리자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주성혜(음악원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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