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의 고향을 찾아서]<8>중국 小林寺와 룽먼석굴

  • 입력 2002년 11월 24일 17시 27분


달마대사가 선(禪)을 전해주었다는 소림사는 불교의 기풍보다는 무술학원의 분위기가 훨씬 더 강했다./덩펑〓김형찬기자
달마대사가 선(禪)을 전해주었다는 소림사는 불교의 기풍보다는 무술학원의 분위기가 훨씬 더 강했다./덩펑〓김형찬기자
‘천하제일명찰(天下第一名刹)’.

그 유명한 ‘소림사(少林寺)’에 들어가는 석문(石門)의 한가운데는 이렇게 ‘천하 제일의 명문 사찰’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그 양 옆의 작은 문에는 각각 이곳이 선종의 발생지요 무림의 본산임을 알리는 구절도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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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국 선종의 발상지라는 ‘소림사(少林寺)’에서는 ‘불교’를 찾기 어렵다. 허난성(河南省) 덩펑시(登封市) 북쪽에 있는 숭산(嵩山)의 소림사로 들어가는 길목부터 보이는 것은 온통 무술학교뿐이고, 소림사 입구에는 온갖 무술의 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소림사의 승려들 역시 예불을 드리고 참선 수행을 하는 구도자라기보다는 무술을 연마하는 무도인의 기풍이 강했다. 중국돈 10위안을 입장료로 받고 무술시범을 보이는 어린 수련생들의 모습은 불법을 수호하고 심신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소림무술이 관광객을 상대로한 써커스로 전락한 현재의 정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소림사의 어린 승려들이 관광객들을 위해 무술시범을 보이고 있다./덩펑〓김형찬기자

520년 경 남쪽나라(남인도 또는 페르시아)에서 온 보리달마(菩提達磨)가 이곳에 인도의 선(禪)을 전했고 그것이 중국선종의 시작이 됐다. 달마가 면벽(面壁) 9년을 했다는 동굴은 세속에 물든 소림사에서 뚝 떨어진 뒷산 꼭대기에 있었다.

인도에서 석가모니가 불교를 개창하고 활동하던 BC 6∼5세기경 중국은 노자와 공자를 비롯한 많은 사상가들이 활약하던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기였다. 단절된 상태로 독립적인 문화를 이뤘던 두 문화권은 BC 2세기경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는 동서교통로가 열리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했다. 인도의 불교는 이 길을 따라 중국에 전해졌고 또 한편으로는 동남아시아의 남쪽 해안으로 우회해서 베트남을 거쳐 중국남부로 전해지기도 했다.

인도에서는 소승불교가 먼저 발전하고 이어 대승불교가 형성됐지만, 중국에 불교가 전해지던 시기에는 이미 대승불교가 번성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중국에는 대승과 소승이 함께 전해졌다. 인도불교의 경전은 중국 도가의 개념을 통해 재해석되어 이른바 ‘격의불교(格義佛敎)’의 형식으로 중국인에게 이해됐다. 지루가참(支婁迦讖), 구마라집(鳩摩羅什) 등 초기에 인도불교의 경전을 중국어로 옮긴 사람들은 이렇게 중국식으로 재해석한 소승과 대승을 함께 전해줬다.

이미 대승불교의 기풍이 전해지고 도가의 수행법이 있는 상황에서 달마가 전했다는 선은 중국인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소승의 정교한 가르침보다는 비논리적 언어와 갖가지 충격요법으로 세간에서 얻은 기존의 지식을 무너뜨리고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선의 방식이 중국인들이 불교를 접하는 주요한 통로가 됐다.

달마의 소림사는 무술학교로 변해 버렸지만, 대신에 중국불교의 종교적 경건함을 볼 수 있는 곳은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허난성 뤄양시(洛陽市)의 ‘백마사(白馬寺)’였다. 여러 차례 중건돼 옛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BC 1세기에 세워진 중국 최고(最古)의 사찰이라는 명망에 걸맞게 대단히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특히 이곳은 수행하는 승려들이 상주하는, 중국에서 몇 안 되는 사찰 중 하나다.

10여 명 정도의 승려가 떼지어 나타나자 관광객들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예불 드릴 때는 사진을 찍지 말라고 제지를 했지만, 이제 승려들이 예불을 드리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구경거리가 된 중국에서 이 신기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관광객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중국에서 불교의 신앙이 절정에 이르렀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룽먼(龍門)석굴이다. 백마사에서 멀지 않은 이곳에는 석회암으로 된 동산(東山)과 서산(西山)에 약 10만개의 불상을 비롯해 석탑과 문양 등이 가득하다. 5세기말∼7세기 후반 불교미술 전성기가 남긴 장관이다.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곳에는 불상을 새기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수많은 불자들의 신앙심이 짙게 배어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곳곳에 목이 잘려나간 불상들이 즐비하게 있어 수나라 당나라를 몰락으로 몰고갔던 출세간의 외래 사상 또는 사회주의 인민의 아편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중국불교의 수난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절절한 신앙심이 배어 있는 이곳도 불교 신도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중국에서는 단지 관광지일 뿐이었다. 용문석굴의 유적을 보호한다며 입구에서 석굴까지 왕복하는 전기자동차는 관광객들을 반드시 상가 앞에 내려 준다. 아무리 돈을 더 준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관광객은 10여 분 동안 관광 상가를 걸으며 그 얄팍한 상술에 혀를 내둘러야 한다.

김형찬 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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