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의 고향을 찾아서]④인도불교의 聖地 마하보디사찰

  • 입력 2002년 10월 27일 17시 40분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자리 에 세워진 마하보디 사찰. 기원 전 250년경 아쇼카왕이 짓기 시 작한 이 사찰은 전세계 불교도들 의 성지로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자리 에 세워진 마하보디 사찰. 기원 전 250년경 아쇼카왕이 짓기 시 작한 이 사찰은 전세계 불교도들 의 성지로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무데나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 인도다. 하지만 석가모니가 그 주변을 거닐었고 이어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보리수 아래서 명상을 한다는 것은 분명히 ‘특별’한 일이다. 불교의 발생지를 돌아보겠다고 처음 찾아간 그 나무 아래서는 예상대로 몇몇 사람이 명상을 하고 있었다. 그 틈에 슬쩍 앉아볼까 했지만, 설레는 마음이 얼굴까지 드러나 있는 그들을 보니 수행이 제대로 될 상황은 아닌 듯했다. 게다가 전 세계에서 찾아온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보수공사를 위한 쇠파이프까지 죽 늘어서 있으니 이미 명상의 장소는 아니었다. 석가모니에게 그늘을 드리웠던 보리수의 손자뻘이 된다는 그 나무는 버팀목이 없이는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노쇠해 있었다.

바로 그 깨달음의 나무 앞에는 마하보디 사찰(Mahabodhi Temple)이 세워져 있다. 세계 불교도들이 찾아드는 이 성지는 순탄치 않았던 인도 불교의 역사를 함께 겪어 왔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인도를 처음으로 통일한 아쇼카왕이 BC 250년 경 이 자리를 찾아와 사찰을 조성하기 시작했고, AD 5세기 경 이곳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대규모 사찰이 완성됐다. 힌두교도인 아쇼카왕은 통일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것을 반성하며 불교를 널리 전파시키는 데 힘썼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곳은 힌두사원으로 변했고, 미얀마를 비롯한 주변국 불교도들의 도움으로 최근에야 현재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주변 힌두교 사원 곳곳에 불교 유적 잔해는 그대로인 채.

“이건 석가모니의 발자국이고 이 벽의 문양은 아쇼카왕 때부터 있던 것입니다.”

이 지역의 문화재 전문가라는 한 인도인은 전설과 역사가 뒤범벅되어 그곳에 쌓인 사연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 수 옆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 수 행자. 이 보리수는 석가모니에 게 그늘을 드리웠던 보리수의 손자뻘이 된다고 한다.

석가모니가 등장한 것은 베다(Veda)시대가 끝나가던 기원전 6∼5세기. 이 시기는 농경생활이 정착되고 철기 농기구의 사용으로 농업 생산력이 높아지면서 사회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사상이 등장하던 때였다. 인도의 전통적인 힌두교 외에 사제계급의 제식주의에 반대하고 육체적 금욕과 고행, 자아에 대한 내적 성찰을 강조하는 슈라마니즘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불교도 이런 움직임 중 하나였다.

힌두교의 전통에서는 속세에서 충실한 사회인으로 삶을 산 후 말년에 속세를 떠나 수행할 것을 권하지만, 석가모니는 힌두교와 같이 업과 윤회를 인정하면서도 현세의 삶 전체를 고통으로 규정하고 당장 속세를 떠나 깨달음의 길로 들어설 것을 주장했다. 카스트 제도를 비롯한 속세의 질서와 그에 따른 영광과 굴욕을 모두 거부하며 세속적 삶 자체를 고통이라고 설파했던 것이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뒤 처음 찾아가 설법을 한 곳이 바로 사르나트. 그곳에서 그가 설했다는 사성제(四聖諦)은 이 세상이 모두 고통인 이유와 그것을 벗어나는 길에 관한 것이었다. 삶의 고통과 정면으로 맞서는 싸움, 그리고 그 고통을 벗어남. 힌두교의 전통에서 빠져 나온 불교의 길은 거기에 있었다. 필자가 찾아갔던 그날도 사람들은 석가모니의 길을 따라 붉은 벽돌로 된 거대한 탑 주위에서 탑돌이를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타자와의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그럼에도 특별한 대상에 집착해 그것이 영원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속의 삶을 인정하는 인도의 전통에서 당장 속세를 등지라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석가모니는 이 깨달음을 전파하기 위해 라즈기르 쿠시나가르 슈라바스티 등을 돌아다녔고, 이제는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 길을 찾아나선다.

석가모니가 45년간의 교화기간 중 가장 오래 머물렀다는 슈라바스티 지역의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는 사람들이 오손도순 모여 법회를 열고 있었다. 인도의 불교 현실을 보여주듯이 다 허물어진 사원의 터에 있는 보리수 아래의 붉은 벽돌 위에는 진지한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한 승려는 함께 예불을 드리다가 시주를 권했다. 그곳에 사찰을 새로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제가 붉은 벽돌을 한 장 올려도 될까요? 저는 유학(儒學)을 공부하는 사람입니다만….”

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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