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단어]예수탄생교회

  • 입력 2002년 5월 2일 14시 59분


나사렛의 목수 요셉은 만삭의 아내 마리아와 함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간다. 로마 황제가 모든 주민에게 호적등록을 지시한 것이다. 요셉은 고향 집에 못 미쳐 하룻밤 마구간에서 묵기로 한다. 이 날 밤 태어나 말구유에서 첫날을 보낸 이가 아기 예수다.

330여년 후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어머니 성(聖) 헬레나와 함께 말구유가 있었던 동굴 위에 예수탄생교회(the Church of the Nativity)를 세웠다. 그러나 첫 교회는 529년 사마리아인 폭동 때 훼손됐고 이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재건해 현재까지 최고의 기독교 성지로 꼽힌다.

7세기 페르시아의 침공, 10세기초 무슬림의 기독교 성소 파괴, 이후 십자군 전쟁의 불 바람을 건너온 예수탄생교회가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와중에 파괴 위기를 겪고 있다. 4월 초 팔레스타인 무장대원 200여명이 이곳으로 피신하자 이스라엘군이 포위, 저격에 나서 교회 내에선 팔레스타인 사상자들이 잇따랐다.

이 신음 속에서 예수는 무슨 말을 할까.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는 ‘대심문관’편이 나온다. 15세기 스페인 세빌랴의 대심문관이 예수를 만나 “인간은 이미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니 인간 세상을 떠나달라”고 요구한다. 예수는 대심문관에게 쓸쓸하게 키스한 후 사라진다. 정말 신이 떠나기 전 인간은 무얼 해야 할까.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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