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양의 대인관계성공학]남편의 투정

  • 입력 2003년 1월 16일 17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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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
40대 초반의 주부 김모씨. 남편의 지나친 자기 몸 챙기기에 짜증이 날 때가 많았다. 남편은 하루는 간이 나쁜 것 같다고 했다가, 다음날은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아내를 들볶았다(이건 그녀의 표현이다).

어쩌다 늦게 일어나 제대로 된 아침식탁을 차려주지 않으면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 남편 대접 그렇게 하면서 밖에 나가 돈 벌어오기 바라느냐, 내가 새벽밥 차려 내놓으란 것도 아니고 그저 남들처럼 아침에 제대로 된 밥 좀 먹자는데, 그거 하나를 제대로 못 맞추느냐 등등.

“아마 그 사람처럼 밥이 그렇게 중요한 남자도 없을 거예요.” 아내의 말이다.

“건강 염려증 환자처럼 구는 건 또 어떻고요. 그러면서도 병원엔 죽어도 안 가려고 하죠. 확실한 걸 알면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고 해봤자 소용이 없다니까요. 더 한심한 건 정작 술 담배는 못 끊는다는 거예요. 어쩌다 아침밥 한 끼 놓치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치명적인 거 아닌가요?”

아무튼 이 부부는 ‘밥’과 ‘건강염려증’ 때문에 늘 신경질적인 갈등상태에 놓여 있었다. 아내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고, 남편은 아내의 무심함에 적개심마저 품었다. 남편에겐 정말 밥이 중요했다. 그러나 아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히스테리 때문은 아니었다. 건강에 대한 염려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자기 몸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통해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 또한 자신이 기대고 신뢰할 상대가 있다는 것에 위안과 심리적 안정을 얻고 싶은 것이었다.

건강염려증은 40대 남자들에게 부쩍많이 나타나는 증상이다. 가장으로서의 책무는 아직 버겁고 갈 길은 많이 남았는데, 몸은 예전같지 않다. 40대엔 돌연사도 많다는데 이러다 어딘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으로 괴로울 때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병원에 가보긴 싫다. 진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하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다. 술담배도 생각뿐, 결코 쉽게 끊기가 어렵다. 결국 이 세상에서 가장 만만하게 자기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은 아내밖에 없다. 덕분에 이 소리 저 소리 하는 건데, 아내가 그걸 받아주지 않을 때는 서운하다 못해 적개심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부부는 서로에게 무의식적인 의존욕구를 가장 쉽게 투사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다. 때로 상대방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 때는 먼저 그런 의존욕구가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터무니없어 보이는 행동도 일종의 ‘투정’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상처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양창순 신경정신과전문의 www.mind-op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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