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네트워크]숙명여대 출신 아나운서 모임 '날빛'

  • 입력 2002년 1월 17일 14시 52분


왼쪽부터 이금희 정현경 윤지영 윤현진 이익선 이명희씨
왼쪽부터 이금희 정현경 윤지영 윤현진 이익선 이명희씨
<<“프리랜서가 휴대전화 번호 바꾸면 얼마나 손핸데.” “그 ‘스토커 아저씨’가 계속 전화거는 통에….” “발신자 번호가 뜨잖아요. 저는 아예 그런 번호는 ‘또라이1’, ‘또라이2’ 식으로 입력을 해 놓아요. 받지 않으려고.” “그래? 나는 이름을 ‘받지마’로 입력해 놓아서 그런 전화가 오면 액정화면에 계속 ‘받지마’‘받지마’가 깜빡거려.”아나운서들의 ‘수다’가 한창인 이 곳은 12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 1층 ‘카페 포토’. KBS ‘아침마당’의 진행자인 이금희씨(정외84)를 주축으로 숙명여대 출신 아나운서들이 모여 ‘날빛’이라는 모임을 결성한 자리다.>>

“교가에 나오거든요. ‘빛나거라 날빛같이, 떨치거라 온누리에’. 조금이나마 사회를 비추어주는 역할을 하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이금희·정외84)

이날은 일단 핵심멤버 6명이 모였지만 라디오 시사토크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박찬숙씨(국문64), 음악프로 진행자인 최영미씨(무역81)를 비롯해 김소영씨(행정90·YTN), 전지나씨(무역93·프리랜서) 등 방송에서 활동하고 있는 10여명으로부터 ‘모임에 응하겠다’는 구두확인을 받았다. 연세대나 이화여대 출신에 비해 수 적으로는 열세이지만, 이것이 오히려 아기자기한 동문지정(同門之情)을 싹 틔우는 계기가 됐다. EBS ‘뉴스매거진 교육현장’을 진행하는 정현경씨(행정93)는 “워낙 서로를 잘 알고 있어 한 번 ‘모이자’고 하면 2∼3일 전에 연락을 받아도 거의 다 참석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한다.

재학시절 숙대교육방송국에서 활동했고 현재는 모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인 이금희씨가 모임결성을 주도했다. 숙명여대 출신으로는 이씨를 비롯해 최영미 이명희 정현경씨 등 ‘숙대 교육방송국’ 출신이 꽤 된다. 기상캐스터 이익선씨도 숙대교육방송국 출신이다. DJ로도 오랫동안 활동했던 포크가수 박인희씨가 1기로 활동했던 터라 교내에서 서클의 명성이 높았고, 경쟁률도 치열했다고 한다.

‘자매애’가 두터워지게 된 데는 이금희씨를 필두로 핵심멤버들이 모두 미혼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지난해 화이트데이 때 정현경씨가 이씨에게 초콜릿을 선물하자 이씨가 정씨의 생일에 EBS로 꽃을 보내 ‘상부상조’를 하기도 했다. 이들은 서로간 ‘소개팅’을 주선하며 만나는 자리도 많다.

이금희씨에게는 ‘언니’라는 호칭대신 꼬박꼬박 ‘선생님’이라 부르는 동문도 있다. SBS ‘한밤의 TV연예’‘동물농장’에서 리포터와 진행자로 활동 중인 윤현진씨(중문97)는 재학시절 이씨가 강의하는 ‘매스미디어와 사회’‘저널리즘 실습’을 듣고 이씨를 찾아갔다. “어떻게 하면 붙을 수 있냐고 여쭤봤죠. 이후로 며칠동안 면접 개인지도를 받은 것은 물론이고 화장법과 단골미용실까지 소개를 받아 큰 도움이 됐어요.”

윤씨는 이씨 덕택에 당시 ‘단색 의상을 입어라’ ‘의자에 앉을 때는 엉덩이를 뒤로 깊숙이 넣어라’ 등 간과하기 쉬운 지적사항을 숙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씨는 요즘도 모교후배들로부터 이메일로 ‘어떻게 하면 아나운서가 되나요?’ 같은 ‘한번에 답하기 힘든 질문’을 받지만 꼬박꼬박 답장을 보내준다고 했다.

숙명여대 출신 아나운서들은 ‘연말 독거노인 돕기행사’‘교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등 학교행사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KBS의 ‘북한리포트’를 진행 중인 윤지영 아나운서(사학93)는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빈 자리가 크게 표시나기 때문에 책임감을 갖고 참석한다”고 말한다. 윤씨는 또 “‘선후배’ 사이로 만날 기회가 잦기 때문에 서로의 프로그램에 대해 격의없이 적나라하게 모니터를 해 줘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숙명여대 출신 아나운서’의 정체성에 대해 자평(自評)을 부탁했더니 “튀지 않는다” “이미지 관리를 잘한다(스캔들이 없다)” “인간미가 있다” “결속력이 강해 남자들 중심의 동문회와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등의 말이 대세를 이뤘다.

방송계에서 숙명여대 출신 아나운서들은 말씨나 외양 등 외적으로 두드러지는 ‘기교파’보다는 ‘요란스럽지 않지만 꼼꼼히 일하는 스타일’로 이미지가 구축돼 있다.

프리랜서인 이익선씨(아동복지 87)는 12년 동안 KBS 아침뉴스의 기상캐스터로, 이명희씨(한국사 86)는 CBS에서 여성 아나운서로는 흔치 않게 야구중계 캐스터로 활약 중이다. 또 대 선배급인 박찬숙씨는 역시 여성 아나운서 출신으로는 흔치않게 거물급 정치인들이 ‘흔히’ 등장하는 KBS라디오 시사토크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다.

이날 ‘날빛’을 결성한 아나운서들은 ‘분기별 1회모임’을 원칙으로 정했다. 앞으로 언론, 여성, 경제에 관한 세미나도 열고 모교의 신입생 환영회, 신문방송학과 수업시간 등을 빌려 아나운서가 되고픈 후배들과도 대화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