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부재-기초과학 경시-베끼기 문화가 한국 성장절벽 불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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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에게 듣는다]<2>오마에 겐이치 日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대학원 총장

《 “한국 경제가 ‘중진국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주변 국가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이용할 것은 이용해야 한다.” 새해를 앞둔 지난해 12월 9일 일본의 세계적 경영 사상가인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대학원 총장에게 한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그는 작심한 듯 중진국 딜레마에 빠진 한국 경제의 미래를 경고했다. 중진국 딜레마는 성장 동력 다변화에 실패해 10년째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덫에 빠져 답보하고 있는 한국 경제를 일컫는 말이다. 》
오마에 겐이치 일본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대학원 총장은 지난해 12월 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이 중진국 딜레마를 극복하려면
 인재 양성과 기술 혁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일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이용할 것은 이용하라”는 조언도 곁들였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오마에 겐이치 일본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대학원 총장은 지난해 12월 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이 중진국 딜레마를 극복하려면 인재 양성과 기술 혁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일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이용할 것은 이용하라”는 조언도 곁들였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그는 또 한국에 대해 일본인이 서운하게 생각하는 점을 빼곡히 적은 종이 한 장을 건네기도 했다. 한국이 왜 역사상 훨씬 많이 한반도를 침략한 중국에는 관대하고 일본에 대해서만 원한을 갖고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다른 나라를 비난한다고 자국(自國)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강조했다. 이용할 건 이용하라는 당부였다. 그는 일본 기술력의 원천은 한국에서 배운 ‘도자기’ 제조 기술이라며 한국의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날 인터뷰는 그가 총장을 맡고 있는 도쿄(東京) 소재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대학원 총장실에서 열렸다. 인터뷰는 열기가 더해지면서 예정 시간을 넘겨 점심시간까지 이어졌다.

―경영 컨설턴트로 실전 경험이 풍부한데, 먼저 ‘성장 절벽’에 부딪친 한국 경제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혁신의 부재, 기초과학의 경시, 베끼기 문화 탓에 벽에 부딪쳐 있다. 지금 방식으로는 딜레마에서 탈출할 수도, 노벨상을 탈 수도 없다. 그 뿌리에는 암기 위주 교육이 있다. 지금 한국은 ‘학교 수재’ 만능 사회다. 이래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그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국은 또 경제가 성공하면 원화 가치가 높아져 점점 더 괴로워지는 구조다. 전형적인 중진국의 딜레마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순식간에 두 배 이상 올랐다. 지금 한국 원화라면 달러당 갑자기 400원이 된 셈이다. 한국은 달러당 400원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가. 당시 일본은 경쟁해 살아남았다. 중진국 딜레마를 극복하려면 이런 난관을 이겨낼 인재 양성과 기술 혁신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치 지도자의 연설 어디를 뜯어봐도 그런 얘기는 없고 그렇게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이 드디어 ‘헬 코리아’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진단보다 해법이 어려운 것 같다. 한국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 일본은 이노베이션으로 엔화 강세와 미일 무역전쟁을 극복했다. 무엇보다 미국에서의 생산을 궤도에 올렸다. 지금 자동차 400만 대를 미국에서 생산하고 이익을 내고 있다. 한국도 몇 가지를 시도했지만 어느 것도 잘되지 않았다. 혁신과 생산성, 해외 생산 등 아직 일본에서 배울 부분이 있다.

다음은 스위스와 이탈리아다. 스위스는 인구 800만 명의 작은 나라가 세계적 기업을 많이 배출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거시 경제는 안 좋지만 작은 도시나 마을이 세계를 상대로 상품을 만들고 있다. 나라는 망해도 도시는 살아남는다는 식이다. 파르메산 치즈나 토스카나 와인 등 세계적 상품을 만드는 마을이 1500곳이나 있다. 작은 마을들이 세계화를 주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만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기업공개(IPO)를 가장 많이 한 나라가 대만이다. 미국 통계에는 ‘차이나(중국)’라고 돼 있지만 실제로는 모두 대만이다. 대만의 ‘차이완(차이나와 타이완의 합성어)’ 전략이 제대로 먹혀든 것인데, 일본에서 부품이나 기계를 사다가 중국에서 생산해 미국 등지에 파는 모델이다. 한국은 이제 일본을 활용하지 않지만 대만은 다르다.”

그는 일본을 외면하는 한국이 못내 서운한 기색이었다. “주변국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배울 것을 배우고 이용할 수 있다. 내 고향이 쓰시마(對馬) 섬인데 한국이 일본에 대해 1000년의 한을 갖는다면 우리도 몽골이 내습할 때 고려군에 당했다고 한을 품어야 하나. 또 한국이 옛 고구려의 영토 확장을 자랑스러워하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역시 교육 대개혁이 가장 중요하다”며 화제를 바꿨다. “한국 교육은 암기 위주 주입식인데 40년 전 일본식 그대로다. 이래서는 21세기형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21세기는 개인의 재능이 중요한 시기다. 덴마크 모델이 참고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덴마크는 1994년경 21세기는 정답이 없는 시대라고 봤다. 답이 없으니 가르칠 게 없지 않겠나. 가르친다는 건 ‘답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덴마크는 앞으로의 세상에는 답 같은 건 없다, 답은 모두가 생각해서 찾아야 한다, 한 반 인원이 26명이면 26개의 답이 있어도 좋다, 무엇을 실행할지는 함께 논의해 결정하자는 식으로 교육을 바꿨다. 멋진 교육이다. 오늘날 현실에서 답이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규격화된 대량생산 시대에는 서양에 답이 있었고, 일본과 한국이 차례로 ‘따라잡고, 앞지르자’며 달려왔다.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고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이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

슬 각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한국 대표기업인 삼성도 위기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같은 문제다. 삼성이 예외적인 업적을 쌓아 왔으나 자신이 처음 내놓은 물건이 아니라 스피드와 규모, 마케팅으로 승부해왔다. 스피드와 규모의 승부는 중국 기업들도 할 수 있으니 벽에 부딪치는 게 당연하다. 삼성이 지금까지 잘해온 건 이건희 회장의 ‘예외적인’ 통찰력 덕이다. 또 한 가지, 한국은 우수한 학생이 사무직이 되려 하는데 이건 문제다. 회사에서 기술자의 위치가 낮다.”

그의 말대로 일본에서는 ‘장인 정신’이 남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도 쏟아진다. 그 원동력이 궁금했다.

“한국에서 배운 도자기 기술이 하나의 원천이 됐다. 우리는 그걸 배워 산업에 접목했다. 예컨대 그게 강력한 세라믹 산업을 일으켰다. 거꾸로 묻고 싶다. 한국에선 왜 그게 안 되나.” 뼈아픈 지적이었다. 기자가 머뭇거리자 그는 말을 이어갔다.

기를 완성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을 들여야 한다. 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 재벌들은 시간이 없으니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며 ‘돈은 줄 테니 기술을 사오라’는 식으로 해왔다. 이는 미국적 경영 마인드인데 미국도 결국 제조업이 뿌리째 사라졌다. 강연차 방한해 중소기업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기업은 납품단가를 후려치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자기들이 가져간다고 한다. 그러니 제안을 해도 손해만 본다는 것이다. 일본은 좋은 제안을 하면 이익의 반을 준다는 게 예컨대 도요타자동차의 명확한 정책이다. 그러니 좋은 제안이 자꾸 나온다. 한국의 전문경영인들은 임기 동안 실적을 내고 급여가 높아지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근시안적이다.”

―한국 경제에 재도약의 기회는 남았다고 보나.

“역시 인재에 달렸다. 정답을 달달 외운 엘리트로는 안 된다. 현대 일본의 대표 경영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소이치로 등은 아무도 대학을 안 나왔다. ‘아카데믹 스마트’가 아니라 ‘스트리트(street) 스마트’가 필요한 시대다. 아카데믹 스마트는 낡은 것만 배운다. 빛의 속도로 세상이 바뀌는데 미국 비즈니스스쿨에 가서 케이스 스터디 외워봤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다. 미국은 그래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독특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경쟁한다. 한국과는 다르다. 무턱대고 따라 배워선 득이 될 게 없다.”

―한국 수출입액의 약 4분의 1은 중국이 차지한다. 그만큼 중국 변수가 큰데 최근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다.

“샤오미가 스마트폰을 만드는 등 중국 기업들의 성장으로 한국은 시장을 잃어가는 상황이다. 일본 기업도 같은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의외로 중국에서 잘나간다. 젖병, 기저귀, 이마에 붙이는 해열제 등 별난 게 잘 팔린다. 중국인이 자국 회사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 착안해야 한다.”

‘신뢰’가 향후 중국 시장에서의 성패를 가름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지적이다.

끝으로 그에게 새해 세계경제 전망을 물었다. 그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 “가장 큰 걱정은 미국의 일극(一極) 번영이다. 금리 인상으로 세계의 돈이 미국으로 몰려들지만, 다른 나라는 금리를 올릴 환경이 아니다. 미국만 번영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중동 불안정이 테러라는 형태로 세계로 수출되면서 미국의 고립주의가 심화될 것이다. 미국의 번영을 세계와 공유하자는 태도와는 반대되는 진영에서 다음 지도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도 그런 경향이 있다. 좋은 일이 아니다. 내년은 미국 일극 번영과 폐쇄주의, 이로 인한 경제의 블록화가 진행되는 해가 될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누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한국 경제에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도쿄=배극인 bae2150@donga.com·장원재 특파원

※ 오토마 겐이치 총장은


1943년 일본 후쿠오카 현 출생으로 일본 와세다대, 도쿄공업대 원자핵공학 석사를 거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원자력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 입사해 일본지사장,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장을 지내며 글로벌 기업 및 역내 주요 국가와 도시의 자문역으로 활동해 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1994년 그를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 등과 함께 세계 5대 ‘경영 구루(사상가)’로 선정했다. ‘국경 없는 경제학과 지역국가론’의 제창자로 ‘국가의 종말’ ‘지식의 쇠퇴’ 등 지금까지 270권을 저술했다. 2010년 인터넷으로 경영학석사(MBA) 교육을 하는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를 설립해 인재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석학#한국경제#베끼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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