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문인은 늘고 문학은 죽고”

  • 입력 2001년 11월 29일 11시 25분


문인은 늘어가는데 문학은 스러지는 나라.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구체적인 물증이 여기 있다.

문화관광부는 28일 내년 문화예술지원 방안을 논의차 일간지 문학담당 기자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문화관광부 관계자가 참고자료로 내놓은 ‘문학계 현황’ 자료는 막연하게 ‘감’으로만 알고 있던 한국 문학계의 현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첫번째, 문인 현황. 문화관광부가 추정하는 국내 문인 총수는 약 2만명이다. 이는 90년도(추정 3000명) 대비 6.6배 증가된 수치다. 분야별 구성비에서도 시인과 수필가의 비중이 절반 이상인 58%로 높고, 소설은 15%에 불과했다는 점도 시사적이다.

관계자는 “시 소설 같은 순수문학 작가 뿐만 아니라 수필 같은 ‘응용문학’ 작가들까지 포함해 추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80년대 후반 들면서부터 문학단체와 문학잡지 같은 관련 매체가 많이 늘어나 이를 통해 등단한 문인들이 양적으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짐작했다.

이 자료에는 주요 문인단체 회원이 총 7000여명(중복 가입 포함)으로, 이중 한국문인협회 5055명, 한국펜클럽 1377명, 민족문학작가회의 954명으로 나타나있다.

두번째는 문학단체 현황. 문인협회 같은 문학 전반을 포괄하는 종합단체, 평론가협회 등 단위단체, 여성문학 등 기능단체 등을 합쳐 전문 문학단체는 전국에 30여개였다. 지역, 출신문예지, 직장, 학교, 문하생, 동호인 등 문학동인회은 전국 2000여개로 추정됐다.

세번째는 문학도서 및 문학매체 현황. 지난해 발간된 문학도서는 4826종에 모두 1200만부였다. 이는 6053종 1500만부가 발간된 1994년 대비 20%가 감소했다. 현재 발간되는 문예지는 모두 202종이며, 문학 범주에 드는 단위 클럽 활동까지 포함한 인터넷 문학매체는 무려 10만개 이상 추정(한국문학교육학회)됐다.

네번째는 문학 기념사업 현황. 전국에 문학관은 10여곳. 문학상은 무려 295개에 달한다. 관계자는 “어느 나라를 둘러봐도 문학상이 거의 하루에 하나씩 수여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세계적으로 이만한 ‘문학 강국’이 없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문인수, 문학단체수, 문학잡지수, 문학상수 어느 하나를 꼽아도 이에 필적할 만한 나라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문학이 고사 직전이다”는 현실적인 우려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 흥미롭다. 문인은 느는데 왜 문학은 죽은 것일까.

‘문학의 민주화’ 혹은 ‘문학의 대중화’를 삐딱하게 볼 것만은 아니다는 사실은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이 한국문학의 저변을 지키는 든든한 인프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막말로 전국 문인들이 매달 한 권씩만 문학책을 사본다면, 초판 2000부를 못 팔까봐 양질의 작품이 사장되는 불행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정반대로 ‘문학의 하향평준화’에 일조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얼마전 한 문인단체에 모임에 참석한 내노라하는 중견시인의 전언은 웃어넘기기에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30, 40대 주부들이 중심인 한 문학모임을 이끄는 선배께서 모임에 와서 자리를 빛내달라고 해서 인사차 간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저에게 아는 척을 안하시더군요. 첨에는 쑥쓰러워서들 그러시나 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진짜로 제가 시인인지 모르시는 거예요. 어떤 분은 대놓고 제게 유명한 분이냐고… 물으시는데… 너무 계면쩍어서, 별로 안 유명합니다…하고 웃고 말았죠.”

곁에 있던 한 작가는 이 말을 듣고 박장대소하며 “이제는 국가가 공인하는 작가‘쯩’을 만들어야 할 때”라며 뼈있는 농담을 건넸다. 독일인은 두 사람만 만나면 정당을 만든다는 우스개처럼, 한국인은 두 사람만 만나면 문학단체를 만든다는 우스개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윤정훈 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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