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비경]오대산 두로령/발갛게 물든 애기단풍

  • 입력 2001년 9월 26일 18시 37분


오대산 상왕봉 아래 능선의 가을 풍경
오대산 상왕봉 아래 능선의 가을 풍경
가을이라 오대(五臺)는 그 산색이 곱다. 독야청청 소나무, 사철 푸른 전나무, 진짜나무 참나무, 흰옷 입은 자작나무, 옻오른다 옻나무, 다래난다 다래나무…. 저마다 제 모습으로 서서히 옷을 바꿔 입기 시작했다.

‘첫 단풍 보려거든 오대산에 가라’는 산사람의 말. 그 뜻도 헤아리지 않고 무턱대고 오대산을 찾았다. 월정사 지나 상원사로 오르는 지방도 446번. 비포장 너덜길이지만 승용차도 무리없이 오를 수 있는 산악도로다. 가을로 접어든 오대산 비경을 찾아 승용차로 이 코스에 도전했다.

길은 상원사를 지난 직후 가팔라졌다. 구절초 하늘거리는 길. 그 밖의 깊은 계곡은 온통 원시림. 길가에서는 이제 막 물든 애기단풍이 인사를 건넸다. 옻나무의 잎도 벌써 빨강 물감보다 더 빨갛게 변했다. 그렇다 해도 추분(23일)을 막 지난 오대산 숲은 여전히 푸르고 길가에는 개쑥부쟁이 미역취 전호 등 들꽃이 여전했다.

그러나 푸르름 제 아무리 도도해도 누렁잎 달아주는 가을을 막기는 어려울 터. 산 위에 올라 비로봉 두로봉 정상을 쳐다 보니 산아래와 달리 일대는 단풍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지.

구절초

오대산은 그 자체가 ‘단풍 시계’다. 정상에 서면 산아래로 조금씩 발갛게 물들어 내려가는 가을 산의 단풍을 한눈에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암절벽이 아찔한 악산(嶽山) 설악보다는 장쾌 넉넉 수려한 품새의 육산(肉山) 오대가 단풍 물드는 가을산 감상에 더 좋은 듯 했다. 그러니 첫 단풍은 오대산에서 보라고 할 수밖에.

이 땅 수많은 들꽃의 피고 짐을 마감한다는 ‘마지막 들꽃’ 구절초. 그 꽃이 핀 산길로 오르기를 40분. 오름은 끝나고 내림이 시작되는 고개 마루다. 이정표를 보니 446번 지방도의 최정상인 두로령(해발 1310m). 이 고갯마루는 오대산의 다섯 큰 봉우리인 상왕 두로(해발 1421m) 두 봉을 잇는 마루금(능선)의 최하단부이자 평창 홍천 두 군의 경계선. 지금껏 올라온 남쪽이 평창땅(진부면), 이제 내려가야 할 고개 너머 북쪽이 홍천땅(내면)이다.

차에서 내려 상왕봉을 찾아 산길(1.8㎞)로 접어 들었다. 짙은 숲그늘이 한낮의 땡볕을 가려 주어 걷기에 상쾌했다. 숲 그늘의 길가에는 아직도 들꽃이 만발했다. 짙은 남빛의 이삭바꽃. 꽃잎 모양이 중세의 투구를 쏙 빼어 닮았다. 시들어가는 큰용담도 눈에 띄었다. 산정에는 수리취가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었다. 밤새 닫혔던 용담 꽃잎 안에서 잠을 잔 호박벌은 겨울이 멀지 않음을 감지한 듯 뽀얀 솜털옷으로 무장하고 겨우살이 식량을 찾아 자주빛 바늘잎으로 뒤덮인 수리취 꽃안에서 뒹굴고 있었다.

상왕봉에 서니 오대의 풍광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점봉산∼단목령∼북암령∼조침령∼구룡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북서에서 남동방향으로 장대 호쾌하게 펼쳐졌다. 주봉인 비로봉(해발 1563m)과 두로봉, 노인봉, 그 뒤 황병산도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었다. 여기서 비로봉까지는 등산로로 2.3㎞.

홍천의 명계리로 하산하는 길. 큰북대골의 도로가에는 오르던 길과 달리 들꽃이 더 많았다. 하얗고 분홍빛을 띤 개쑥부쟁이, 연분홍빛 까실쑥부쟁이, 노랑빛 미역취, 하얀 전호와 마타리가 길가에 피어 있었다.

겨울채비에 부산떠는 다람쥐가 쪼로록 길을 가로질렀다. 8㎞쯤 내려오면 조개동 계곡. 철새로 보이는 오리 한 마리가 계곡물로 돌진, 배를 채우고는 날아 올랐다. 여기서 1㎞ 아래가 국립공원 매표소, 거기서 2㎞만 더 가면 통마름골이다. 56번 국도(홍천∼양양)는 통마름골에서 2.5㎞.

<평창·홍천〓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식후경/입암메밀타운▼

메밀국수. 누구든 소개할 만한 맛집 하나 쯤은 알고 있을 법한 이 평범한 음식. 그래서 ‘이 집이다’라고 소개하기 어려운 음식 가운데 하나다. 그렇지만 30년이상 메밀국수 한 가지만 내온 토속식당이라면 글쎄….

강원 양양군 ‘입암메밀타운’. 국도 6번(월정사 입구∼진고개∼연곡)이 7번으로 이어지는 곳에서 10.5㎞ 북상, 원포삼거리(7번 국도상)에서 주유소 오른편으로 1.5㎞ 들어간 마을에 있다.

식당앞에는 ‘since 68년’이라고 씌어 있다. 제비 들락이고 우물물 길어 국수 말던 구옥만 깔끔한 양옥으로 바뀌었을 뿐 자리는 그대로다. “맛은 오히려 더 나아졌다고 해요.”

주인 임용식씨(41)의 말. 가마솥에 국수내리는 흑백사진(식당벽에 걸림)속 주인공의 아들이다. “식재료를 직접 다듬어 쓰니까요.” 메밀은 농협을 통해 매입한 국산을 기계로 직접 갈아 쓰고 참기름 역시 직접 짠다고. 야채는 100% 밭에서 재배한다.

시원한 국물, 칼칼한 양념. 동물성 재료는 계란뿐이라는데 맛은 육수맛이다. 비결을 물으니 ‘어머니 손맛’이란다. 양념은 지금도 어머니(설증순씨·64)의 ‘작품’. 양이 많아 열명이 오면 일곱그릇만 주문하라고 시킨다. 비빔국수 4500원, 물국수 4000원. 033-671-7447, 7171

<양양〓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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