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비경]창녕 우포늪지/300년 뒤엔 사라질 '생태계 백화점'

  • 입력 2001년 9월 19일 19시 07분


우포의 소벌
우포의 소벌
미국 테러 참사와 보복 선언으로 세상이 온통 어수선하기만 한 9월의 땡볕 따가운 오후. 서울에서 여섯시간 차를 달려 찾아간 곳은 경남 창녕의 우포늪이었다.

여의도 만한 국내 최대의 자연늪(70만평). 435종이나 되는 수중 수생 수변식물(국내 식물종의 50∼60% 해당)이 살고 다양한 곤충과 새들이 서식하는 곳. 1억년 전(중생대 백악기) 공룡이 살던 자취가 늪속에 보존돼 있어 ‘생명의 고문서’라 불리는 곳.

그러나 이날 늪을 찾은 것은 이런 환경생태학적 가치나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테러와 전쟁불사로 이어지는 암울한 뉴스의 연속선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연잎으로 뒤덮인 연못 위로 새들이 날고 진보랏빛 물옥잠 꽃가에서 잠자리가 교미하는 한가로운 자연의 일상을 보며 산란해진 마음을 추스르고 싶어서….

창녕읍에서 회룡을 지나 2㎞쯤 가면 우포 세진주차장(유어면 세진리). 농로를 따라 이삭패인 가을벼가 깊숙이 고개숙인 논가를 걷다 보면 금세 늪에 닿는다. 멀리 창녕읍 방향으로 보이는 화왕산의 우람한 자태. 위협적이었다. 둑방에 올라 늪을 보았다. 물은 보이지 않고 융단처럼 고운 초원뿐이다. 거기서 흰뺨검둥오리 몇 마리가 푸드덕 물을 박차고 날아 올랐다.

아! 이게 늪이구나. 수면을 뒤덮은 수생식물로 물 위의 초원을 이룬 늪. 늪다운 늪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도시사람에게 우포는 이렇듯 신비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넸다.

둑에 앉아 한참이나 늪을 바라 보았다. 왜가리 백로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오리류 기러기류가 각각 수십 마리…. 날아가는 왜가리 한 놈의 목 아래가 더부룩하다. 날쌔게 사냥한 가물치 한 마리를 방금 삼킨 모양이다. 오리류는 남행하던 철새떼려니. 한 며칠 먹잇감 풍성한 늪에서 유숙하다가 원기를 회복하면 다시 먼 길을 날아갈 터.

큰기러기들은 남녘 여행길에 앞서 훈련중인지 ‘V’자로 대형을 맞춰 비행했다. 여름철새 왜가리도 우포늪 것들은 겨울이 와도 떠나질 않는단다. 먹을 것이 풍부하다 보니 아예 여기서 죽치고 사철을 난다던가. 철새도 텃새가 된다하니 신기할 뿐.

늪이란 호수가 땅으로 변하는 천이과정의 중간형태. 이 늪은 1억년 전(혹은 6000년 전) 지구 해빙기에 해수면 상승으로 낙동강이 역류하는 바람에 생긴 호수가 변한 것. 굳은 땅이 되는데 불과 300년밖에 남지 않은 상태란다. 그나마도 환경오염과 인간간섭으로 대지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며 생태기행 가이드 박준영씨(우포생태학습원)는 안타까워했다.

토평천 물을 머금었다 낙동강으로 흘려 보내는 우포늪은 크게 네 부분으로 이뤄졌다. 큰 소벌(우포)을 중심으로 뒤에 나무벌(목포), 오른편 왼편에 각각 모래벌(사지포)과 쪽지벌이 포진해 있다.

우포 주차장에서 10여㎞를 돌아 이방면으로 갔다. 이방면은 동요 ‘산토끼’가 탄생한 고장. 이방초등학교(내동주유소 건너편)에 가면 일제 강점기 때인 1930년 교사 이일재씨가 작사 작곡했다고 적은 노래비가 있다. 1080번 지방도에서 장재마을로 들어가 마을 밖 둑방에서 만난 나무벌. 이번에는 늪이 처음과 반대 방향으로 펼쳐졌다.

늪가에 가면 태고적 정적에 짓눌린다. 움직이는 것이라곤 자맥질하는 오리, 부동자세로 물속만 응시하다가 잽싸게 부리로 공격하는 왜가리, 짝짓기에 여념없는 실잠자리…. 온통 초록의 늪에서 짙은 남빛 꽃으로 시선을 모으는 식물이 있다. 물옥잠이다. 멀리서 보니 마치 지도를 그린 듯하다.

물가로 나갔다. 늪에서는 걸음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수면이 온통 물풀로 뒤덮인 탓이다. 부채 모양의 연초록 잎 사이사이에 언뜻 보면 매화를 닮은 작고 흰 꽃이 앙증맞게 피어 있다. 이곳의 대표적인 수면식물인 자라풀이다. 수면은 온통 자라풀과 잎끝이 부챗살처럼 뾰족뾰족한 마름으로 뒤덮이고 그 사이를 아카시아잎 비슷한 생이가래가 뒤덮어 그 넓은 늪에서는 한치도 물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누구나 늪을 처음 보면 ‘물 위에 펼쳐진 초원’이라고 말할 수밖에.

마지막으로 찾은 모래벌. 야산에서 내려다 보니 이 늪은 온통 가시연과 수생식물로 뒤덮여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벌과 나무벌에 많던 가시연이 올 여름에는 모두 모래벌로 옮겨 온 듯 여기에 군락을 이뤘다. 가시연은 국내 110곳에서 발견됐으나 지금은 44곳으로 줄어 우포에 와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잎사귀 지름이 2m나 되는 큰 놈도 있다.



▼식후경/왕순갈비가든▼

축산농가가 많은 경남에서도 쇠고기 품질이 좋기로 이름난 합천 의령 창녕. 그 중에서도 창녕은 특별한 맛소문으로 주말이면 쇠고기 먹으러 일부러 찾는 사람이 많은 곳.

비결은 소에 대한 지극한 ‘사랑’. 질 좋은 사료와 축양기술의 환상적 조합 덕분이란다. 도축되는 비육우의 절반 가량이 누렁이 한우.

창녕읍내 재래시장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왕순갈비가든(055-532-9692)은 장날(3, 8일장)이면 주변이 북새통을 이룬다. 이 곳의 특징은 암소만 쓰며 육질이 연하다는 것. “도축해 진공포장 한뒤 섭씨 2,3도 상태로 냉장고에서 1주일에서 열흘정도 숙성시키면 연해지지요.” 여주인 김인옥씨(44)의 말.

대부분 고기는 직접 운영하는 왕순농장(성산면)에서 키운 한우암소라고. 숙성법은 농림부로부터 ‘한우전문판매점’허가를 위한 교육 때 배웠다고 한다. 식육판매점도 겸해 식사후 고기를 사가는 손님도 많다고. 식당에서는 암소 등심과 갈빗살만 내는데 등심(사진)은 1인분(200g)에 9000원.

<창녕〓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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