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비경]나주 우습제-무안 회산방죽

  • 입력 2001년 8월 22일 18시 30분


나주 우습제의 홍련
나주 우습제의 홍련
올해만큼 모진 여름이 있었을까. 장대 폭우에 불볕 더위, 그것도 모자라 막바지인 지금도 땡볕 폭염에 열대야가 밤낮으로 이어지니. 하나 만물이 어울린 이 세상에서는 폭염과 땡볕을 반기는 물생도 있을 터. 연꽃도 그 중 하나가 아닐 까싶다.

멀리 서역에서 건너와 진흙 땅에 꽃을 피우는 기특한 연(蓮). 무더위 짜증으로 여름 끝을 일각이라도 앞당기고 싶은 사람일지라도 혹여 연못에 소소하게 핀 연꽃 한두송이와 조우한다면 가는 여름을 아쉬워할 듯 싶다.

그래서 떠난 연꽃여행. 영산강 따라 이웃한 나주시의 우습제(공산면)와 무안군의 회산방죽(일로읍)을 찾았다. 호남고속도로(광산IC)를 나와 13번 국도로 나주를 거쳐 회산방죽으로 가는 길. 나주→무안은 나주에서 1번 국도로 가면 금방이지만 연꽃여행길이라면 13번 국도로 나주 시내 통과 후 23번 국도(함평 방면)를 따라 우습제(저수지)를 들르는 코스가 좋다.

칠산 앞바다로 느릿느릿 흘러드는 영산강 왼편(자동차 진행방향으로는 오른 편/강은 보이지 않는다) 나주의 너른 들녘이 보일 즈음 닿은 곳은 공산면. 도로 오른편으로 우습제가 나타난다.

오전 9시. 저수지 둑에 올랐다. 광활한 못은 활짝 핀 분홍빛 홍련과 푸른 연잎으로 온통 뒤덮여 연꽃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늠름하게 물에서 솟은 꽃대는 어른 키 높이다. 그 끝에 축구공만한 홍련이 한 송이씩 피어 있다. 꽃 떨어진 꽃대 끝에 고구마를 반토막낸 것처럼 생긴 것이 보인다. 연밥(꽃씨 주머니)이다. 시커멓게 변한 연밥은 땡볕에 탄 것 같아 안쓰럽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2000년이 지나도 발아하는 연씨를 보듬어 안은 생명의 방이다. 정오를 전후해 꽃을 피운다 해서 ‘자오련(子午蓮)’이라고도 불리는 연꽃. 눈 밝은 이라면 밤새 다문 꽃잎이 조금씩 열리는 모습도 아침에는 볼 수 있다.

몽탄대교로 영산강을 건너면 무안땅. 회산백련지는 의외로 찾기 쉽다. 도로 바닥에 쓰인 ‘연꽃’글씨 덕분이다. 회산 백련이 우습제 홍련에 비해 널리 알려진 것은 희귀성 때문. 홍련에 비해 작은 백련은 흔치 않아 불가에서도 귀히 여길 정도다. 그 백련이 10만평이나 된다는 큰 못을 꽉 채우니 화제가 되고도 남는다. 5년전부터는 백련이 만개하는 이맘 즈음 연꽃축제를 여기 회산백련지에서 열고 있다. 올해는 25∼28일.

무안 회산방죽의 백련

오후 1시. 정오의 햇볕은 등이 따가울 정도로 강렬하다. 그러나 푸른 연잎 사이로 점점이 피어 오른 백련은 생기가 넘쳐 흐른다. 우습제 홍련처럼 화려하지도, 또 온 연못을 뒤덮지도 않았지만 꽃 한 송이 한 송이로 전해지는 느낌은 훨씬 고아했다. 티없이 고운 우윳빛 꽃잎은 갓난 아기의 보드라운 피부를 연상케 하고 활짝 잎을 열어 꽃 피운 모습은 자태 고운 귀부인의 단아한 옷매무새를 생각케했다. “천지 기운이 일기 시작하는 새벽에 오면 은은한 연꽃향도 맡을 수 있는데….” 무안군청 직원이 한마디 거든다.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회산지의 수중잔교는 ‘연꽃대교’라 할 만했다. 연꽃 감상에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서너살 꼬마에게는 우산이 되고도 남을 큼직한 연잎을 코 앞에 두고 볼 수 있고 연잎으로 수평선을 이룬 너른 회산지의 비경을 두 눈에 가득 담아 감상할 수도 있다.

못가로 갔다. 어렵사리 키워 꽃을 피운 수생식물이 물위에 즐비하다. 분홍빛 수련과 빨간 홍련, 작고 노란 노랑어리연, 앙증맞은 개연, 희귀한 가시연 등등…. 평생 한 번 보기도 어려울 만큼 귀한 자연의 친구들이 객을 맞았다.

연못의 바닥 진흙에 뿌리 내리는 연. 연이 자라면 못물은 맑아진다고 한다. 연뿌리가 물을 정화하기 때문이다. 물 밖에서라고 다를까. 예서는 연꽃으로 세상을 정화한다. 진흙속에서도 청정한 꽃을 피우는 연. 그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성정으로 연꽃은 불가의 지주가 됐다. 그래서 한여름 연꽃여행은 진리를 찾는 구도의 여행이 된다.

귀경길에 들른 충남 아산의 인취사(신창면 읍내리). 하얀 옥잠화가 얕은 산 중턱의 작은 절 주변을 하얗게 장식하고 있었다. 두 개의 연못에서 자라는 백련은 대부분 꽃이 졌지만 그래도 몇몇 송이가 가는 여름을 장식하고 있었다. 모두가 주지 혜민스님이 공들여 키운 애련이다.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외래종 연꽃을 보여주며 들려준 스님의 말. “시들어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후두둑 장렬하게 지는 꽃잎을 보면서, 물방울이 굴러 떨어져 어느 정도 고이면 미련없이 물을 쏟아내는 연잎을 보면서 사람의 도리를 배웁니다.”

연꽃차(꽃잎이 다물리기 전 꽃안에 차를 넣어 두었다가 이튿날 아침 꽃잎이 열릴 때 꺼내어 우려낸 것) 한 잔을 청하자 연꽃술(연꽃잎을 볶아 꿀을 섞어 막소주에 우려내어 묵힌 술)을 이제 막 떨어진 백련 꽃잎을 술잔 삼아 따라 주며 ‘끽다거(喫茶去)’를 대신한 혜민스님. “연꽃잎이 안주여. 꼭꼭 씹어 먹어.” 연꽃잎 안주 삼아 들이켠 연꽃술에 취하니 세상 모든 것이 연꽃처럼 아름답다.

▽연꽃 생태여행〓무박2일. 보성 차밭(아침 산책)∼율포해변(해수녹차탕&갯벌체험)∼영산호 하구둑∼무안 연꽃축제. 5만5000원. 승우여행사(02-720-8311)는 25, 27일 출발, 고산자여행(02-732-5550)은 25일, 9월1일 출발.

◇맛집/백련지 입구 '명산장어집'

영산강에 왔다가 장어맛 못보면 후회할 일. 하구둑 공사로 씨가 말라 양식장어뿐이지만 그래도 맛은 풍미로 인정받는다. 그 가운데 장어구이를 3대째 가업으로 이어온 식당이 있다. 회산백련지 입구 길목의 명산장어집(무안군 몽탄면 명산리).

“아들은 장어를 잡고 아버지는 구워내던 식당인데 지금은 창업자의 손자(김귀선·55)가 주인이지요.” 무안군청 직원의 소개다.

올해로 63년째 묵은 맛의 장어구이. 느끼하지 않고 담백했다. 대여섯 차례 양념장을 발라가며 굽는다는 이 집 장어. 맛의 비결은 양념인 듯. 내용을 묻자 생강 양파 감초 계피 정도만 밝힌다.

반찬 화려한 전라도 상차림 전통이 그대로 밴 식탁. 간장게장 전어창젓 수삼김치 생새우젓갈에 특산인 대갱이(작은 생선)볶음과 살모치(숭어치어)젓갈, 무안 명물인 양파김치 등등…. 젓가락질에 혼란을 느낄 정도였다.

장어는 1㎏에 4만원. 무안읍∼무안병원∼811번∼파군교 직전/좌회전∼2㎞ 지점. 061-452-3379

<나주·무안〓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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