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범수- 진양혜씨 부부 "이렇게 키워요"]기저귀 가는 아빠

입력 2001-04-18 18:52수정 2009-09-2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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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돕고 아이와 교감 늘리고…"

목욕-놀이-자모회등 남편 적극적

신입사원 시절 덜컥 아기 엄마가 되고 나서 좌충우돌하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득하기만 하다. 출근하면서 시부모님 댁에 아이를 맡기고 퇴근과 함께 아이를 데려오는 생활은 늘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늦은 방송으로 귀가가 늦어지거나 별이 지기도 전에 출근할 때면 ‘자격도 없는 엄마’라는 자책감과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아이가 말을 하기 전까지는 참을 만 했다. 병아리 같은 입술로 “엄마 가지마”라며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 아이를 뒤로하고 출근할 때마다 직업을 가진 엄마가 겪는 열악한 육아 현실에 대해 수많은 욕설을 퍼부었다.

그뿐이 아니다. 아이가 제 또래 아이들에 비해 수줍음을 많이 타고 조심스러운 것도 일 때문에 늘 함께 하지 못하는 엄마 책임인 것 같았다.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친구들에게 슬며시 열등감도 생겼다. 이런 자격지심은 아이와 남편에게 신경질과 짜증으로 돌아가 고 결국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일을 그만 할 것이 아니라면 언제까지 아이 앞에 고개 숙인 엄마로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작전회의를 했다. 우리가 생각해낸 최선의 방법은 바로 ‘아빠도 엄마되기’였다.

우선 새벽방송이 있는 엄마를 대신해 아이를 목욕시키고 아침을 먹이는 일은 무조건 아빠가 했다. 씻기고 먹이는 일에서부터 정서적인 교감을 위한 놀이까지 모든 것을 부모 공동 책임 하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시간 나는 사람이 하기로 한 것이다. 남편은 좀 더 바빠졌고 엄마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처음에는 어설프기만 하던 아빠가 나중에는 아이의 유치원 자모회에도 엄마 대신 참가하는 용기를 냈다. 처음에는 기저귀 가는 일, 우유 타는 일처럼 초보적인 일에도 땀을 뻘뻘 흘리던 남편은 아토피성 피부염이 생긴 둘째를 위해 전문서적을 챙겨보고, 부모만큼 중요하다는 큰 아이의 또래집단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직장 가진 아내가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고 아이에게 떳떳하게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길은 남편에게 달렸다. 가끔 시간을 내 아이와 놀아주고 양육비를 대는 아빠가 아니라 엄마와 똑같이 육아에 책임을 지는 아빠가 필요한 시대다. 미국 국립과학 아카데미 최신 연구에 따르면 아이가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와의 교감이 많을수록 뇌의 활동도 활발해지고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법을 빨리 배운다.

아이는 요즘 아빠와 가끔 요리하고 아빠의 일 만큼 엄마의 일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를 나름대로 평가한다.

“카레는 엄마가 만드는 것이 더 맛있고요, 노래랑 게임은 아빠랑 하는 것이 더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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