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로마 오페라극장-韓 솔오페라단의 ‘토스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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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 숨죽인 ‘일상의 폭력’ 떠올린 인상적 공연

‘토스카’ 2막. 스카르피아(엘리아 파비안·오른쪽)의 고문 지시로 만신창이가 된 카바라도시(김지호·왼쪽)를 연인 토스카(한예진)가 끌어안으며 절규하듯 노래하고 있다. 솔오페라단 제공
‘토스카’ 2막. 스카르피아(엘리아 파비안·오른쪽)의 고문 지시로 만신창이가 된 카바라도시(김지호·왼쪽)를 연인 토스카(한예진)가 끌어안으며 절규하듯 노래하고 있다. 솔오페라단 제공
막이 열리자 거대한 천장화가 감탄을 자아냈다. 무대 디자이너 파올로 토마시는 무대 위 또 하나의 천장을 만들었다. 넓고 둥근 천장은 1막 안드레아 발레 성당에서는 천장화로, 2막 파르네세 궁에서는 화려한 천장으로, 3막 산탄젤로 성에서는 별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새벽하늘로 기능했다. 산만하지 않고 아늑한 무대의 안정감으로 인해 청중은 노래와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다.

22, 2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로마 오페라극장과 한국의 솔오페라단이 공동 제작한 무대였다. 23일 공연에서는 타이틀 롤을 맡은 소프라노 한예진의 가창과 연기가 돋보였다. 풍부한 한예진의 목소리는 1막에서 카바라도시를 질투하는 여심과 2막에서 스카르피아의 협박에 번민하는 복잡한 심리를 잘 표현했다. 유명한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에서는 객석의 갈채가 쏟아졌다. 안나 비아조티가 제작한 의상은 토스카 옆모습의 우아함을 부각시켰다.

바리톤 엘리아 파비안의 스카르피아는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거구에 에너지가 넘치는 가창과 연기로 권력과 성적 욕망이 이글대는 발산형 인물을 효과적으로 그렸다. 전형적인 악당의 모습이 아니라 왠지 본모습이 선량해 보이는 얼굴은 평범한 ‘일상 속 악인’의 존재를 떠올리게 했다.

카바라도시 역 테너 김지호의 가창은 1막에서 맑고 싱싱한 청년의 모습에 가까웠다가 2막에서 고문을 당하고 3막에서 피폐해지는 등 작품의 하루 동안 변화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1막 오후에 부른 ‘오묘한 조화’는 설렘이 가득했고, 3막 새벽하늘에 울려 퍼진 ‘별은 빛나건만’은 애절했다.

지휘자 파비오 마스트란젤로는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금발의 머리칼이 흩날릴 정도로 다이내믹하고 열정적인 지휘를 선보였다. 비교적 차분한 무대에 긴장감을 자아내는 지휘로 극에 생명력을 보탰다. 국내 오케스트라인 프라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에게 부응하는 연주를 펼쳤다.

잔도메니코 바카리의 연출은 곳곳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을 선사했다. 가장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부분은 2막. 파르네세 궁전 만찬 식탁 뒤 화려한 그림이 둘로 열리고 그 안에서 카바라도시를 고문하는 장면이었다. 스카르피아가 토스카를 협박하기 위해 그 문이 열릴 때마다 일상 도처에 숨죽이며 도사리고 있던 이 시대의 폭력을 목격하는 것 같았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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