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에세이/이병림]암(癌)을 가슴에 품고 히말라야 오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이병림 한국유방암환우회 합창단 대표
이병림 한국유방암환우회 합창단 대표
부정-분노-받아들임.

암 진단을 받은 후 대부분의 암 환우들이 겪게 되는 과정일 것이다. 나 또한 2001년 갑작스레 맞이하게 된 ‘유방암 3기’라는 진단에 이러한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분노 속에서는 주위 사람들과 모든 연락을 끊은 채 지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비너스회’라는 유방암 환우회를 만나 또 다른 세상과 접하게 되었다. 워낙 매사에 고지식한 편인 나는 암 환우가 되어서도 의사의 말을 잘 듣는 모범 환자가 되어 병원의 교육지침에 따랐다.

운동과 식생활도 중요하지만 환우들의 자조모임에도 꼭 참여하라는 의사들의 권유도 있었고 선배 환우와의 만남이 내게도 간절히 필요했었기에 환우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 당시 유방암 3기의 5년 생존율은 65%라는 숫자가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고, 생존율 65%에 속하든 그 반대의 35%에 속하든 어차피 앞으로의 남은 시간은 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결연한 생각도 했었다.

우리나라 여성 암 중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유방암은 병원별로 환우회 모임이 특히 활발하다.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모임이니 비록 암 환우들의 모임이긴 하지만 그 씩씩함과 용맹스러움이 가히 하늘을 찌를 듯하다. 내게도 그 씩씩함이 더해졌다. 처음 몇 년 간은 검사 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진정한 유방암 환우가 되어 가슴을 졸이기도 했었고,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눈물짓기도 했었지만 유방암 환우인 ‘우리들’과 함께하면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과 계속 만나고 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어떤 자리에서도 사양했던 내가 ‘한국 유방암 환우회 합창단’에서 8년째 합창을 하고 있다. 그것도 가장 신나게, 또 열심히. 그러다가 2년 전, 합창단원 9명과 히말라야의 고사인쿤드 호숫가에서 ‘I HAVE A DREAM’을 합창하며 어릴 때부터 간직했던 히말라야에의 꿈을 이루기도 했다. 떠나기 전, 왜 하필 히말라야인가를 우리끼리 이야기하면서 ‘나의 도전’과 ‘암 환우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원대한 목표까지 간직하고 떠났었다.

지금도 이제 막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암울한 환우들에게 히말라야 이야기를 꺼내면 경이로움에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곤 한다. 그 히말라야(랑탕∼고사인쿤드)에의 등정은 평범하게 살아온 대한민국 유방암 환우 아줌마들 9명이 해낸 일이었다. 11일 동안 매일매일 10시간 이상을 꼬박 걸었었고, 4700여 m의 캉진리 등정에 이어 다음 날 5003m의 체르코리를 오르던 날은 오전 5시부터 시작한 등산이 오후 10시를 훌쩍 넘겨서야 끝이 났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그날의 산행이었지만 피로와 고통을 견디며 걷노라니 결국 그날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항암의 고통이었지만 참고 견디노라면 결국엔 그 끝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처럼….

유방암 환우에게 있어서 비만은 금물이다.

필수영양분을 골고루 잘 섭취하면서 운동으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인 건강관리 방법 중 하나이다. 그래서 유방암에 걸리기 전에는 북한산조차 가보지 않았던 환우들도 자주 산에 오른다. 그러한 환우들과 5년여 전부터 매월 전국의 자연휴양림을 1박 2일로 찾아다니며 산을 오르고 있다. 기차와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며 천천히 하는 여행이다. 처음에는 30분도 못 가서 주저앉았던 환우들이 이제는 1500여 m의 겨울 설산도 몇 시간씩 오르내리게 되었다. 휴양림 깊은 숲 속의 통나무집에서 각자 조금씩 가져온 맛난 음식과 뜨거운 차를 달여 마시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리들의 이야기들. 항상 마지막 결론은 ‘유방암’에 관한 대화로 끝이 나지만, 1박 2일 동안의 여행과 운동은 체력단련과 더불어 지나간 한 달 동안의 시름은 모두 날려버리고 다음 한 달 힘차게 일상을 꾸려갈 기운을 우리에게 안겨주곤 한다.

‘비구름 없는 하늘이 그 어디에 있으며, 고난이 없는 인생이 그 어디에 있으랴… 인생의 뜻을 알기에 내 마음 훨훨 날아요.’

요즘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합창곡이다.

그렇다. ‘암 진단과 투병’이 내 인생의 가장 큰 고난이었기에 그 고난 속에서 인생의 뜻을 좀더 깨닫게 되었을까. 노래 가사처럼 또 다른 세상을 찾아서 내 마음은 지금도 가을 하늘을 훨훨 날고 있다.

이병림 한국유방암환우회 합창단 대표
#유방암#비너스회#히말라야#운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