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에세이/성소은]뒤늦은 출가

동아일보 입력 2012-10-31 03:00수정 2014-08-2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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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은 녹명종교나눔터 운영위원장
나는 순복음 교회 교인이었다. 성장기 기독신앙 때문이었는지 공익과 공공선을 우선시하는 업무만을 계속해 왔다. 만져지지 않는 가치를 키우는 일, 내게는 그런 일이 기쁘고 신나는 일이었다. 일본 릿쿄(立敎)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도쿄(東京)대 법학정치학연구과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을 전후해서 한일 양국 정부기관과 국제교류재단 등 비영리기관에서 13년간 근무했다. 유학과 직장생활을 위해 오랫동안 머물렀던 일본에서도 주일을 생명처럼 여기고 거리에서 복음성가를 부르는 ‘신실한’ 신자였다.

기독교인이 된 것은 나의 의지와 무관했다. 어릴 적 부모님 손길에 이끌려 주일학교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이후론 주입식(?) 설교에 물들어 가며 자연스럽게 주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굳혀 가는 나날을 보냈다. 20여 년 동안 고분고분하고 성실한 신자로서 말이다.

○ ‘한권의 책’이 의심없던 믿음 흔들어

의심 한번 없었던 믿음이 좌우로 삐거덕거리기 시작한 것은 정지된 신앙과 자라나는 실존의식이 충돌하면서부터이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왜 살고, 어디로 가는 것인지. 구원은 무엇이며, 사랑은 무엇인지…. 예수를 닮고자 하는 진지한 인간적 고민에 교회는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 나의 언어로 정리할 수 없는 과제들이 쌓여 가면서 내적 체증은 한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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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오강남 교수가 쓴 ‘예수는 없다’라는 책이다. 이 책은 내게 정신을 맑게 하는 풍경소리가 되어 온몸과 삶을 흔들어 놓았다.

이후 내 안의 무기력한 ‘예수’를 해체하고 참 그리스도로 부활시켜야 하는 ‘새 기도’를 찾는 방황이 시작되었다. 누군가를 앙망하며 질질 끌려다니는 삶 말고, 스스로 주인 되는 삶, 세상에 대한 경계심이 없고 막힘없는 자유의 삶에 대한 물음에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선(禪) 수행을 만났다.

수행이란 무엇인가? 외부 환경에 의지하거나 구애됨 없이 먼저 ‘나’를 갈고 닦고자 하는 자기학습이자 자율학습이었다. 누군가의 말을 듣거나 글을 읽어 깨닫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스스로의 마음을 궁구하는 것이었다. 숱한 경전이 담고 있는 진리의 참뜻을 찾아 고요히 내면으로 들어가는 마음 공부였다.

일본에서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후에 서울대 연구공원에 위치한 국제기구에서 코디네이터로 근무하고 있던 때였다. 당분간이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수행에 전념하고 싶었다. 사직을 결심하고 부모님에게는 장기 해외프로젝트가 있다는 핑계를 대고 수행할 수 있는 곳을 찾기로 했다. 이때부터 자유로운 삶을 목표로 진리 찾는 일에 온 정신을 모았다.

선방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가 되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마주하는 곳이다. 선방에 놓여진 좌복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신앙에서 놓여나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고 하는 대긍정, 대화합, 대환희를 알게 해 주는 자리였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 했던가. 참 나를 찾아 실현하며, 또 다른 이의 삶의 여정을 돕는 삶을 살고자 출가(出家)를 결심했다. 행자를 거쳐 전통 강원인 청도 운문사 승가대학에 들어가 봄과 여름을 지나며 두 철을 스님으로 살았다. 겉은 회색 옷에 삭발한 모습이었으나 안은 내내 ‘하나님’을 만난 기쁨으로 두려울 것도 주저할 것도 없는 생의 축제 기간이었다.

선방에서 만난 선불교는 분리된 너와 나, 부딪히는 겉 나와 속 나를 하나이게 하는 화합과 소통의 메신저였다. 나는 이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 것이다.

이 뒤늦은 깨달음을 크리스천 벗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기독신앙이 돈독할수록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 많이 보아 온 터였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웃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가 더해질 때 얼마나 시원한 소통을 맛볼 수 있으며, 삶의 지평이 넓어질 수 있는지를 사랑하는 교우들과 나누는 일, 그것이 나의 소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일었다.

그래서 나는 환속했다. 스님 형상을 벗었다. 회색 옷 대신 청바지로 갈아입고, 싹둑 잘라낸 머리카락을 길러 묶었다. 출가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처럼 환속 또한 별스러운 게 아니었다. 수행도, 출가도, 환속도 내게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목말라 마시는 물이었으며 배고파 먹었던 따듯한 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집을 떠나 봐야 집의 소중함을 안다고 나온 후에야 ‘진리’가 교회 담장 안에도 있었다고 하는 것을. 문제는 기독교다, 불교다가 아니라 어떤 기독교냐, 어떤 불교냐 하는 것이었다.

나는 참선이라고 하는 불교의 심층을 통해 기독교의 심층을 발견했다. 불교도 기독교도 표층이 아니라 심층이라면 거기서 내안의 불성 혹은 신성을 찾아 환호성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열린 종교냐 닫힌 종교냐, 그것이 문제이다.

그동안 본의 아니게(?) 다양한 종교 전통을 체험할 수 있었다. 기독교, 성공회, 선불교 각각 다른 교리와 의식과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심연에서는 모두 ‘큰 사랑’에 맞닿아 있는 한 뿌리, 여러 가지와 다름 없었다.

인간세(人間世)에서 분리와 반목이 초래하는 갈등과 소모는 얼마나 될까. 사소한 생각의 차이도 그러할진대 이념이나 믿음에 이르러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배타성과 파괴력으로 나타나기 일쑤이다. 기계는 점점 스마트해지는데 인간의 무지는 여전히 뒷짐을 진 채로 거드름만 피우고 있다. 종교라는 거룩한 요새를 피난처 삼아.

한바탕 출가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지금은 물음 대신 나눔이 화두가 되었다. 사슴은 들판에서 먹이를 찾으면 우우 소리 내어 기쁜 울음을 운다고 한다. 주변 사슴들을 모아 함께 나누어 먹자고 말이다. 시경(詩經)에 나오는 유유 녹명(鹿鳴)이다. 딱 사슴처럼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으로 녹명을 필명으로 삼으며 글을 쓰고 생각 나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 한바탕 출가여행후 나눔이 화두로

9월 초 ‘녹명종교나눔터’(www.njn.kr)라는 울타리 없는 들판을 마련하였다. 녹명종교나눔터는 평신도들이 중심된 이웃 종교간 소통의 자리이다. 추구하는 활동은 크게 세 가지다. 종교가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생각하는 아카데미 프로그램과 기도하는 명상 프로그램, 마지막으로 사유하고 익힌 것을 삶의 현장에서 풀어 낼 수 있는 함께 행하기, 사회참여 프로그램이다. 세상을 바꾸는 종교, 혹은 종교가 더는 문제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더디나마 느린 걸음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붉게 물든 단풍이 뚜덕뚜덕 떨어지는 가을은 ‘출가’의 계절이다. 익숙했던 공간과 뻔한 나를 뒤로 하고 길을 떠나기에 맞춤한 계절이다. 늦은 출가는 가장 간절한 출가이게 한다. 간절함은 능치 못함이 없다.

성소은 녹명종교나눔터 운영위원장
#출가#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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