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에세이/김효진]뒤늦은 사과, 엄마 용서하세요

동아일보 입력 2012-09-27 03:00수정 2014-08-2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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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
나는 착한 딸이었다.

지체장애가 있는 탓에 어린 시절 주로 집 안에서만 생활했고, 엄마의 보살핌 없이는 등교와 나들이 등 다른 어떤 시도가 불가능해 거의 엄마와 한몸처럼 지냈다.

그로 인해 엄마와 매우 밀착된 관계가 형성되면서 일찌감치 어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부작용(?)을 겪었다. 한창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이미 세상 풍파를 어느 정도 겪고 난 어른의 시선을 갖게 되었으니 애늙은이라 할 수밖에…. 나의 모든 판단과 행동의 기준이자 원칙은 엄마의 그것에 거의 맞춰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크면서 큰 실수는 물론이고 사소한 일탈도 스스로에게 용납하지 않는 착한 딸 노릇을 했던 건 따지고 보면 장애를 가진 딸을 둔 엄마의 고통, 죄책감과 남들 알게 모르게 겪어야 했던 멸시, 그리고 고된 돌봄 노동이 모두 내 탓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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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엄마의 불행을 보상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나 자신을 억누르며 성장기를 보냈다. 실패하면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봐 완벽을 추구했고, 젊은 시절 내내 나보다 엄마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엄마는 장애 딸을 키우느라 겪은 고생에 대해 친구 혹은 이웃에게 자주 말씀하셨다. 나 들으라는 말씀은 아니었지만 그 말들은 언제나 내 귀에까지 들어와 박혔다. 나는 늘 엄마 곁에 있었으니까.

엄마의 신세 한탄을 자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적어도 나만큼은 주변 사람들처럼 내 장애에 대해 엄마 탓을 하지는 않을 것이며, 아무리 힘들어도 엄마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리라고. 그리고 그 결심은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다. 그것이 장애 딸을 이만큼 단단하게 키워 준 내 엄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여겼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그래도 장애인으로 사는 저만 하겠어요?” 하며 받아쳤던 순간이 있었다. 40대 초반 무렵이었는데, 적어도 엄마 앞에서만큼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내게 엄마가 너무 자주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 버거웠던 것 같다.

나 역시 장애를 이유로 차별하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푸념을 엄마 앞에서 늘어놓고 싶은 순간이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엄마에게 상처가 될 뿐임을 잘 알기에 가슴에 묻어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알아주지 않는 엄마가 야속했다. 게다가 엄마가 신세 한탄을 할 때마다 장애를 안고 온갖 차별에 직면하면서도 꿋꿋이 헤쳐 나가고자 하는 내 삶의 의미가 자주 흔들리는 경험을 했던 것이 엄마의 말을 받아친 결정적 계기였다. 그래서 장애를 갖고 사는 나와 그 딸을 키운 엄마 중 누가 더 힘든지 비교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는 줄 알면서도 어느 날 나는 오랫동안 삼켜왔던 그 말을 입 밖에 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나는 곧 후회했지만, 한번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말 한마디로 나는 이제까지 예우해 왔던 엄마의 삶을 한순간에 간단히 배반하고 말았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최근 출간한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집필을 위해 장애 자녀를 둔 열두 명의 엄마들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나는 그때 내가 엄마에게 했던 독한 말이 살아나 계속 마음이 어지러웠다.

어떤 이유로든 그때 내가 엄마에게 했던 말은 평생을 장애 딸에게 헌신한 엄마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쑥스러운 마음에 엄마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못하고 있다. 엄마, 지금까지도 둥글어지지 못하고 뾰족하게 살아가고 있는 못난 딸을 용서하세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 해요.

누구에게나 자신의 아픔이 가장 큰 법이다. 내 아픔과 남의 아픔은 서로 비교할 수도 없으며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것이다.

나는 엄마가 장애인이라 힘들다는 아홉 살짜리 내 아들에게 장애인으로 사는 엄마가 더 힘들다고 애써 강변하지 않는다. 아이는 기껏해야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웠을 때 보조기가 머리에 닿아 아프다거나 엄마와 함께 달리기를 하지 못해 아쉬운 정도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만 어디 그뿐이랴.

엄마, 아빠에게 장애가 있어 한 번도 업혀보지 못한 것, 자전거를 잡아주지 못해 아직도 두발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것 등이 그 나이에 아이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엄청난 무게일 수 있음을 헤아리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머지않아 아들 녀석에게도 용서를 구하게 될 날이 올까 봐 조금 두렵기는 하다.

김효진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
#김효진#장애인#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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