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에세이/이동일]세상이라는 거친 들판으로 나가는 제자들에게

동아일보 입력 2012-09-05 03:00수정 2012-09-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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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일 양평고 특수교사
“어, 외국사람이에요?” “눈동자 색이 이상해요.” 이 질문들은 내가 학교를 옮길 때마다 내 외모를 두고 학생들이 묻는 입국심사와도 같은 통과 절차다.

난 알비니즘(Albinism)이 있다. 일명 ‘백색증’. 피부, 눈동자, 머리카락 등 내 전신은 온통 하얗고 이 때문에 남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외모로 4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다. 알비니즘은 현대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희귀 유전성 질환이다. 피부는 자외선에 매우 약하며 시각장애(저시력)를 동반하는 특징이 있다.

1970년대 초반 나는 “양키 새끼를 낳았다”는 아버지의 원망 섞인 얘기를 들으면서 세상에 나왔다.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이 질환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햇볕에 선탠을 시켜 주면 까맣게 될 거예요”라는 말도 안 되는 주변의 권유를 실천하다 3도 화상을 입어 매우 큰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적도 있었다.

알비니즘이라는 생소한 병명, 거기에 원치도 않았는데 ‘저시력’이라는 ‘1+1’ 추가 구성까지 갖춘 나는 서울맹학교 초등부,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만든 여의도 중·고등학교 특수학급을 다녔다. 집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어서 등하교 시간만 4시간이 걸렸다. 코 혈관조차 약했던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코피를 쏟았다. 코피가 멈추지 않아 늘 응급실에서 콧구멍 전체를 꽁꽁 틀어막는 응급처치를 받은 후 며칠을 코피가 지혈되길 기다리는 것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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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덥게 느껴지는 올여름, 남들 다 하는 물놀이도 내게는 도전이며, 작열하는 태양 아래 마음껏 공을 차는 것조차 내게는 꿈이자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의 벽이다. 또한 나의 저시력은 시각장애인들의 염원인 운전도 불가능하게 했다. 난 어디를 가든 지하철, 버스,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 대중교통을 사랑하는(?) 국민이 되었다.

대학 진로를 고민하거나 직업을 갖는 데도 사회의 높은 벽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을 받았다. 눈이 나쁘니 의학이나 생명공학, 디자인을 전공하는 게 불가능했고, 경찰이나 소방관이 되려 하여도 이 또한 이 사회가 만든 신체검사라는 기준이 나를 가로막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사회에서 만든 벽보다 더 큰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내 장애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다. 20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이 문제를 깨닫게 되고 인정하면서 나와는 단절됐다고 느꼈던 세상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나와 같은 장애인을 가르치는 특수교사가 되어 내가 겪었던 아픔, 시행착오 등을 내 후배 장애 학생들은 덜 겪도록 해 주고 싶었다.

대학에서 중등특수교육을 전공한 나는 2001년 경기도에 임용되어 올해 12년차의 선생님이 되었다. 교원자격증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나오는 것이지만 선생님은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만들어져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올 3월 나는 양평고등학교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주로 정신지체(지적)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이다. 자기만의 특성과 능력, 독특한 저마다의 개성들을 가지고 있기에, 개별적으로 접근해 지도해야만 그들의 잠재력을 끌어내 줄 수 있다.

1분이 멀다 하고 “선생님” 하며 나를 부르는 나의 학생들,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툼과 사고와 결석 등으로 나를 긴장시키는 녀석들. 그렇지만 난 이 녀석들 덕분에 행복하고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학창시절이라는 시간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좋았음을 느낄 수 있다. 비록 장애는 있지만 내 소중한 학생들도 학교에서의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나가길 기대한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길을 나도 함께 웃으며 걷고 싶다.

이동일 양평고 특수교사
#알비니즘#특수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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