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있게한 그 사람]최종일 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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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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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백의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의 한 장면. 동아일보DB
프레더릭 백의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의 한 장면. 동아일보DB
18년간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는 일을 계속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창작’하는 일은 내게 여전히 고통을 수반하는 힘든 작업이다. 시나리오 작업도 수많은 잡다한 생각과 글을 쓰고 버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늦은 밤까지 작업하는 일이 잦은 편이다.

혹자는 내게 대표이사가 한가롭게 시나리오나 붙잡고 씨름하고 있느냐고 하기도 한다. 시나리오를 쓸 시간에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회사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경영 전략을 더 고민하는 게 필요하지 않으냐는 얘기다. 또 다른 지인은 너무 일에만 빠져 있기보다는 체력을 잘 관리하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다 나를 생각한 조언이다.

돌아보면 그동안 적지 않은 작품을 기획해 왔다. 초기의 작품들을 통해 실패와 시행착오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 기획한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등은 과분할 정도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이제는 회사도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춰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주위에서 내게 창작 활동보다는 최고경영자로서의 역할에 집중하라는 얘기를 하곤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콘텐츠 기업의 본질적인 힘은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으로부터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최고의 경영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기획하는 애니메이션은 분명히 수익 창출을 추구하는 상업용 콘텐츠다. 하지만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와 최소한 콘텐츠를 접촉하는 그 시간만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수익 창출 만큼이나 포기할 수 없는 제작 목표이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도 내가 경영에만 집중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이의 영향을 받았다.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을 들라면 난 주저 없이 캐나다 출신의 애니메이션 작가 프레더릭 백을 꼽는다. 난 그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현존하는 애니메이션 거장 중 한 명인 백은 1924년에 태어났으니, 올해 우리 나이로 89세를 맞이했다. 그는 29세이라는 이르지 않은 나이에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러 작품에 스태프로 참여하며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기존의 셀 애니메이션과 페이퍼 애니메이션의 제작 방식을 결합하여 그만의 독특한 표현 기법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1970년부터 다양한 창작 애니메이션을 발표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한 명성의 바탕에는 애니메이션을 시작한 후 약 18년이라는 긴 기간에 제작 현장에서 갈고 닦는 노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후 그는 흔들의자가 된 나무의 일생과 그 의자를 사용했던 사람들의 삶을 그린 ‘크랙!’으로 1982년 아카데미 단편영화상을 수상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고, 1987년에는 약 5년간 2만 장에 이르는 그림을 직접 그리느라 한쪽 시력을 상실하면서까지 완성해 낸 ‘나무를 심은 사람’으로 또다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황무지에 매일 100개의 도토리를 심어 결국 울창한 숲을 조성해 낸 양치기 노인의 삶을 그린 ‘나무를 심은 사람’이 상영된 후 캐나다에서는 전국적으로 나무 심기 운동이 전개되어 약 2억5000만 그루의 나무가 심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1993년에는 캐나다의 세인트로렌스 강이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위대한 강’으로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한다. 그는 일생 동안 애니메이션을 통해 대자연의 소중함을 일관되게 알려 왔다.

그의 애니메이션에는 그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는 애니메이션에 청춘을 쏟아 부었다. 직접 기획하고, 시나리오 작업은 물론 수만 장의 그림을 일일이 그것도 아주 세밀하게 직접 그려 넣는다는 것은 그 일에 거의 목숨을 걸지 않고는 도저히 엄두를 내기도 어려운 일이다. 또한 그의 애니메이션에는 진정성이 있다. 단지 화려한 영상이나 미사여구가 아닌 그의 진심이 담겨 있었기에 그의 애니메이션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스물아홉에 일을 시작해서 18년간의 수련 기간을 거쳐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그 열정은 전혀 식지 않았다. 그는 계속 창작에 몰두했고 59세에 첫 번째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64세에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70세에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의 창작은 계속되고 있다.

내 나이 올해 마흔여덟. 주위에서는 내가 기획한 애니메이션에 대해 많은 성원을 보내주고, 이제는 몸도 관리하라고 염려해 주지만, 난 이제 한걸음을 뗐을 뿐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창작이란 고통스러운 작업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특히 어린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최종일 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 대표
#애니메이션#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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