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혁 전문기자의 세상이야기]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무리 김범일 대구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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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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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대구라는 존재감 알려 뿌듯…광고로 치면 10억달러 효과”

제13회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인 김범일 대구시장은 3일 대구를 찾은 기자에게 “서울에서는 관심이 어떠냐”는
 질문부터 했다. 그러면서도 “이제부터 대구를 재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대구=서영수 전문 기자 kuki@donga.com
제13회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인 김범일 대구시장은 3일 대구를 찾은 기자에게 “서울에서는 관심이 어떠냐”는 질문부터 했다. 그러면서도 “이제부터 대구를 재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대구=서영수 전문 기자 kuki@donga.com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경보 50km 경기가 열리던 3일 오전, 이탈리아 선수단의 한 임원은 김범일 대구시장에게 이런 말을 했다.

“You put Daegu on the world map!(당신은 대구를 세계지도 위에 올려놨습니다).”

물론 경기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이기도 한 김 시장을 치켜세워 주기 위한 ‘덕담’일 것이다. 하지만 김 시장에게는 그냥 인사치레로만 들릴 수 없는 말이었다.

대구를 세계지도 위에 올려놓는 일, 그건 대구시민과 김 시장이 대회 결산보고서의 맨 앞장에 적고 싶은 성과였다.

도시의 시대라는 21세기, 도시의 국제적 인지도는 도시 브랜드 만들기의 알파요 오메가다. 해마다 발표되는 안홀트 도시 브랜드 지수(Anholt city brand index)는 여섯 가지 기준을 적용하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존재감(Presence)이다.

대구는 국내에서도 서울-부산-대구에서 서울-부산-인천-대구로 세(勢)가 밀렸을 뿐 아니라 서울은 물론이고 부산과 인천에 비해서도 국제적 지명도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김 시장은 “세계인이 어느 도시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다. 대구라는 도시의 존재감을 알리는 것, 그게 우리의 목적이고 이번 대회의 성과다”라고 말했다.

경보 경기를 지켜보며 김 시장의 대회 결산, 특히 세계육상선수권대회라는 스포츠 이벤트가 대구와 대구시민에게 남긴 것들을 들어봤다. 김 시장은 옛 총무처 과장 때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휘장사업과장으로 파견돼 일찌감치 스포츠외교와 스포츠마케팅을 경험한,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는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이탈리아 임원의 말 한마디로 대구의 국제적 지명도 상승을 얘기하는 건 좀 성급하지 않나.

“물론 대회의 성과를 이어가는 것은 앞으로 남은 우리의 과제다. 하지만 전 세계 190개국에 경기가 중계됐다. 중계를 보는 사람들은 대구챔피언십, 대구스타디움이라는 말을 수백, 수천 번 들었을 것이다. 광고로 치면 10억 달러 이상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언론, 특히 일부 마이너 언론사 보도이기는 하지만 경기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대회 운영이 ‘F 학점’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언성을 높이며) 당장 오늘 저녁 스타디움에 가서 현장을 한번 보고 가라. 일부 언론이 얼마나 깎아내리는지…. 취재단 식사 문제라든지 교통편의 문제라든지 부족한 걸 지적하는 건 좋다. 하지만 그런 부수적인 문제 빼고 경기운영 자체는 완벽했다고 자신한다. 이런 대회, 특히 육상대회는 엄청나게 힘들고 복잡하다. 눈에 보이는 건 10%에 불과하다. 며칠 전 이건희 회장 초청으로 대회장을 찾은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국제대회 운영 수준이 뛰어난 나라로 독일 캐나다와 우리나라를 꼽더라. 그런 평가들은 안 보고…. 정말 답답하고 섭섭하다. 특히 오전 경기는 (햇살이) 따가우니까 관중이 자리를 바꾸곤 하는데 빈자리만 찍어서 내보내기도 하고….”

―하도 기록이 안 나오니까 하는 소리이긴 하겠지만, 대구처럼 덥고 습한 도시에서 육상대회를 치르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얘기도 있더라.

“더위가 기록에 지장을 주겠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2007년 오사카 대회 때는 섭씨 34도를 오르내렸다. 2009년 베를린 대회도 대구와 비슷했고….”

―(웃으며) 베를린이나 오사카는 그래도 국제적인 도시라 사람들이 한 수 접고 봐준 것 아닌지 모르겠다.

“(다시 언성을 높이며) 그러니까 대구를 더 높이 평가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육상선수권대회는 대부분 세계적인 도시에서 개최됐다. 그런 대회를 대구 같은 지방자치단체가 자기 힘으로 유치하고 준비했다는 건 엄청난 의미를 가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의 국력이나 국격이 올라가는 것 아니냐. 대구가 그에 필적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대구가 우리나라 지방자치 발전에 있어 하나의 획을 그은 것 아닌가.”

―도시의 존재감이나 지명도가 도시 브랜드 높이기의 첫째 요건이긴 하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들(People)의 언어적 문화적 개방성도 중요하다. 그런 개방성이 있어야 그 도시를 찾는 외지인들을 따뜻하게 포용할 수 있고, 방문객들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가 대구라는 도시의 국제적 개방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에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분지적 사고(盆地的 思考)를 버려야 한다”라고 말해 논란을 빚기도 했는데….

“지방의 내륙도시가 공항이나 항만이 발달한 도시에 비해 보수적인 건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통적인 현상이다. 인구 이동성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구도 많이 바뀌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부터) 15년간 야당 도시로 설움도 받았고, 경제적 어려움도 겪었다. 이젠 세계화의 물결을 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이번 대회만 해도 자원봉사자들이 새벽 5시, 6시에 나와 밤 12시, 1시까지 뒷바라지하고 있다. 모두 그런 열정이 모인 것이다.”

―애향심과 개방적 시민의식은 좀 다른 것 아닌가.

“물론 그렇다. 세계적으로 잘나가는 도시들을 보면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공항이나 항만을 두고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다양성이다. 뉴욕이나 파리만 해도 50% 이상이 ‘비(非)토착민’으로 구성돼 있다. 그만큼 문화적 인종적으로 다양하다. 그에 비해 대구는 토착민 비율이 80%나 돼 (다양성보다는) 호모지니어티(homogenity·동질성)가 강하다. 접근성만 해도 초라한 국제공항이 하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대구에서 이런 규모의 대회가 열린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VIP들이 많이 찾은 것도 처음이고, 거리에 이렇게 많은 외국인들이 모인 것도 처음이다. 대회를 치르면서 시민들은 (글로벌화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대구시민들은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아닌 게 아니라 동대구역에서부터 경보 경기가 열리는 시내 국채보상공원 주변 도로까지 외국인들이 넘쳐났다. 무엇보다 응원하는 시민들과 외국인들 사이에는 별다른 벽도 느껴지지 않았다. 붉은 티셔츠에 중국의 오성홍기(五星紅旗)를 들고 응원하는 20대들, 미니벨로를 타고 그 옆을 지나가는 10대, 그리고 흑·백·황인종의 선수들과 각국의 선수단 관계자들, 또 외국인 관광객들이 그냥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다가왔다.

―김 시장은 대회 성공을 기원하는 담화문에서 △1가정 1경기 이상 관람 참여 △대회기간 대중교통 이용 및 교통통제 협조 △경기 관전 에티켓 지키기 및 경기장 분위기 조성 △손님맞이 미소 친절운동과 아름다운 도시 환경 만들기를 시민들에게 호소했는데 그동안 시민들의 참여나 열기는 어땠나.

“알다시피 한국에서 육상은 비인기 종목이다. 그런데도 스타디움이 꽉 찼다. 국제스포츠 관계자들이 관중의 관전 수준도 유럽 수준이라고 놀라워했다. 대구시민은 물론이고 이제 한국인들도 육상이 이렇게 재미있구나 하고 그 진미(眞味)를 느끼기 시작한 것 아닌가 싶다. 주말 KTX 열차도 꽉 찼다. 그리고 어제(2일) 저녁까지 관중 수가 38만 명이었다. 베를린 대회 수준이고, 오사카 대회에 비해서는 두 배나 많은 수다.”

―일부 언론 보도를 보니 관중 수는 좀 논란이 있는 것 같던데….

“VIP용 2000석과 선수용 몇천 석은 항상 비워둔다. 그걸 빼고 정확하게 입장객 컴퓨터에 찍힌 수치다. 국제육상경기연맹하고 같이 확인한다. 저녁에 봐야 한다. 열기가 정말 대단하다. 학교 운동회 때 들리는 함성의 1만 배는 될 것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높아진 대구의 존재감을 채워나갈 콘텐츠가 중요할 것 같다. 결국 도시의 경쟁력이랄까 매력인데 어떻게 이어나갈 계획인가.

“그냥 지나가는 관광객의 평가는 그리 높지 않지만 대구에 오래 머문 사람들의 평가는 서울보다 높다. 그 단적인 예가 주한미군 만족도 조사인데, 항상 대구가 1등이다. 그리고 한국 재복무를 신청하는 미군의 60%가 대구에 근무했던 군인들이라고 한다. 미군들 통계인데 나도 깜짝 놀랐다. 주한미군뿐 아니라 외국 기업이나 영어 강사들의 만족도도 높다. 또 문화시설만 해도 서울만 못하지만 오페라 뮤지컬 극장 등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다. 물가도 싸다. 다만 시민들이 특유의 정(情)은 있는데 세련되게 표현하지 못하고 외국어에 자신감이 없었을 뿐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이 달라질 것이다. 대구에는 또 ‘골목투어’가 있다. 6·25전쟁 때 도시가 파괴되지 않은 곳은 대구와 부산뿐이다. 그중에서도 전쟁 이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도시는 대구가 유일하다. 그런 ‘골목투어’와 팔공산 문화, 그리고 뷰티산업과 의료 및 헬스산업 등 이제부터 갈고닦아 나가야 할 자원이 많다. 이번 대회가 대구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문득 “(서울)시장 한 명이 바꿀 게 많다”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2일 발언이 생각났다.

―대구시장은 어떤가. 2006년부터 5년째 시장으로 재임 중이니 이젠 감이 좀 잡힐 것 같은데….

“(즉답을 피하며) 성취감이 없으면 못한다. (머리가) 돈 사람 아니면 못한다. 지방은 우선 시민들이 먹는 걸 해결해야 한다. 지방 광역시장의 우선순위 1번부터 9번까지는 전부 경제다. 수도권은 가만히 있어도 기업이 오고 인구가 는다. 지방세도 늘고…. 매출 1000억 원이라고 해도 서울에서는 별로 표시도 안 나는 규모지만 지방에선 확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세무조사에 준조세, 심지어 최고경영자(CEO)가 몰고 다니는 승용차 차종까지 신경을 쓴다. 그러다 ‘아이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귀찮다’면서 서울로 가버린다. 뭘 좀 하겠다고 프로젝트를 수립해 땅을 수용하면 돈은 전부 서울 강남으로 빠져버린다. 그런 상황인데 지방에서 이런 대규모 대회를 하면 좀 미비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격려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김창혁 전문기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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