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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스포츠

[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47> 해설자 변신 옛 농구스타 현주엽

입력 2015-10-19 03:00업데이트 2015-10-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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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은퇴 6년… “지도자로 헹가래 받고 싶다”
최근 인천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 골프대회 취재 현장에서 우연히 왕년의 농구 스타 현주엽(40)을 만났다. 가족과 구경을 왔다던 그는 팬들의 사인과 사진 촬영 요청에 응하느라 바빴다. 농구 선수로 전성기를 보내던 예전으로 돌아간 듯 보였다. 지난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TV에 출연하다 보니 알아보는 분들이 다시 늘었다. 원래 방송 나가는 걸 꺼렸는데 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높이는 데 도움 될까 싶어 카메라 앞에 선다”고 말했다. 그가 출연하는, 정글에서 살아남기를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은 동 시간 시청률 1위를 지키고 있다.
○ 부산 아시아경기 금메달 주역

지난달 시즌을 개막한 프로농구에서 2년째 해설자로 일하는 현주엽은 2009년 은퇴할 때까지 15년 넘게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TV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배경이 된 1994년은 그가 고려대에 입학한 해이다. 당시 현주엽 전희철 김병철 등을 앞세운 고려대는 이상민 서장훈 등이 버틴 연세대와 캠퍼스 농구의 전성기를 이끌며 실업팀마저 압도했다. 현주엽은 “그땐 참 대단했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에 살았는데 소녀 팬들이 밤낮 없이 우리 집에 몰려들어 엘리베이터, 담벼락 등에 낙서까지 해댔다. 동네사람들에게 미안해 새로 페인트칠을 해준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화려한 시절을 보냈던 그에게 침체기를 맞은 한국 농구의 현실은 안타깝다. “언제 적 현주엽 서장훈인데 아직도 통하는 걸 보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경기력에 문제가 있다. 오픈 찬스에서 던진 슈팅도 성공률이 떨어진다. 문경은 김영만 같은 선배들은 수비가 달라붙어도 집어넣었다. 어이없는 실수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재미가 있으면 팬들은 농구장에 몰릴 것이다. 해설도 쉽고 편하게 하려고 한다.” 대학 때인 1996년 현주엽은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했다. 한국 남자 농구는 이후로 올림픽에 못 나갈 정도로 국제경쟁력이 떨어졌다. 덩크슛을 하다 백보드를 부술 정도의 파워와 탄력을 지닌 그는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금메달 주역이다.

현주엽은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SK 유니폼을 입었고 골드뱅크 코리아텐더 KTF를 거쳐 LG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팀 매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떠돌이 시절을 겪어 아쉬움이 클 만도 한데 그의 생각은 달랐다. “농구의 폭과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전력이 약한 팀에서는 내 일만 해서는 안 됐다. 내·외곽을 넘나들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게 됐다.” 그는 파워포워드로는 드물게 트리플 더블을 7차례나 올렸다. 팔방미인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기록이다.

○ 서장훈 형은 영원한 동반자

1년 선배인 서장훈은 ‘실과 바늘’ 같은 존재다. 애증의 관계라는 등 주위의 평가도 엇갈린다. 두 선수 모두 근래 TV에 자주 나온다는 공통점도 생겼다. 현주엽은 “장훈이 형은 내겐 ‘영원한 동반자’다. 내가 휘문중 1학년 때 야구를 하던 형이 전학을 와 함께 농구를 시작했다. 오랜 세월을 같이했기에 서로를 너무 잘 안다. 종종 술자리를 갖고 사는 얘기를 나눈다. 예전엔 형이 더 잘 마셨는데 요샌 내가 좀 센 것 같다”며 웃었다. 서장훈이 연세대에 1년 먼저 입학한 뒤 현주엽은 진로를 놓고 고민했다. “장훈이 형이 같이 뛰자고 했고 나 역시 그러면 훨씬 편하게 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를 더 필요로 했던 고려대를 선택했다.”
○ 사기사건 시련… 가족이 날 살려

현주엽은 저돌적인 플레이를 앞세워 팬들을 열광시켰지만 정작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했다. 연골이 거의 없어진 왼쪽 무릎 탓에 코트를 떠난 그는 은퇴 후 수십억 원 사기사건 등에 휘말려 신문 사회면에 등장했다. “더 뛰고 싶었는데 내 뜻과 무관하게 은퇴한 뒤 농구와 인연을 끊으려 했다. 명예 회복을 원하셨던 아버지까지 그즈음 돌아가셨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까지 당하다 보니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다. 가족이 나를 살렸다. 아내와 두 아들이 큰 힘이 됐고 이겨낼 수 있었다. 쉽지 않았지만 마음을 비우니 편해지더라.”

현주엽은 전설적인 미국프로농구(NBA) 스타인 찰스 바클리에 비유된다. 둘 다 프로에서 무관에 그친 점도 똑같다. 현주엽은 “우승반지가 없다는 건 너무 아쉽다. 그 꿈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지도자로 헹가래를 받고 싶다. 마음의 고향 같은 코트에 있을 때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선수로 뛴 삶의 전반전을 마감하며 후회를 남겼다는 그는 현재 조금 긴 듯한 하프타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매직 히포(하마)’ 현주엽이 열어갈 후반전이 더욱 기다려진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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