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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스포츠

[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45>박한 대한농구협회 부회장

입력 2015-08-31 03:00업데이트 2015-08-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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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로 지도자로 행정가로… ‘영원한 농구인’
“70년을 살면서 50년 넘게 농구장을 지키고 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했다’는 자부심은 갖고 싶다.”

말쑥한 양복 차림을 한 그는 ‘호랑이 감독’으로 코트를 호령하던 때만큼 젊어 보였다. 70세라는 무게감은 느끼기 힘들었다. 큰 키(192cm)에서 퍼져 나오는 중후한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지난주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박한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이었다. 1945년생 해방둥이인 박 부회장은 ‘영원한 농구인’으로 불린다. 선수와 지도자로 이름을 날린 뒤 대학농구연맹 회장을 거쳐 농구협회 임원 등 행정가로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박 부회장은 “내 이름은 ‘나라 한(韓)’ 자를 쓴다. 광복을 맞이한 해에 태어난 걸 기념하려고 아버지가 지어주셨다”며 말문을 열었다. 광복 후 강산이 일곱 번 변할 동안 한국 농구는 영욕이 교차했다. 그는 그 중심에 섰던 ‘코트의 살아 있는 역사’였다. 시작은 늦었다. 서울 인창고 2학년 때인 1963년 농구공을 잡은 뒤 반세기 전인 1965년 고려대 입학 후 주목받았다.

“대학 입학 후에도 밤이면 인창고를 찾아 후배들과 땀을 쏟았다. 전력 사정이 나빠 전등불 하나 겨우 켜고 공을 던졌다.”

대학 2학년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단 그는 1973년까지 대표선수로 활약했다. 센터 박한이 골밑을 지킨 한국은 1969년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농구선수권(ABC) 정상에 오른 뒤 1970년 방콕 아시아경기에서 첫 금메달을 차지했다.

“우승했다고 카퍼레이드를 했다. 제대로 먹기 힘들었던 시절, 선배들이 불고기 사준다고 명동에 데리고 가면 10인분은 거뜬히 먹었다.”

박 부회장은 은퇴 후 1975년 11월 고려대 감독에 부임해 1997년까지 22년 동안 49연승 신화를 비롯해 통산 500승 넘게 올렸다. 장수 비결을 묻자 그는 “학교의 믿음과 배려가 없이는 힘들었다. 특히 작고하신 김상겸 전 고려대 체육위원장이 늘 버팀목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관계와 기본을 중시하는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그를 거쳐 간 제자들은 한결같이 “마치 친아버지처럼 아껴주고 잘 챙겨줬다. 선수에 앞서 학생의 본분을 강조했다”고 말한다. 강한 체력과 수비를 앞세운 고려대 농구는 성인 실업팀을 압도하기도 했다.

박 부회장은 “한때 선수들에게 물도 못 먹게 하며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다. 돌이켜보면 참 미안한 일이다”고 회고했다. 이충희 임정명 전희철 현주엽 등 숱한 스타들을 길러낸 그는 “간판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희생해준 후보 선수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1980년대 초반 이충희가 고려대를 졸업하고 현대에 입단할 때의 일이다. 정주영 회장의 특명 속에 이충희 영입에 성공한 현대는 감사 표시로 당시 고려대 감독이던 그에게 서울의 아파트 한 채를 주려고 했지만 끝내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거액의 연봉이 보장되는 아마추어 실업팀과 프로팀의 감독 제의를 수도 없이 받았지만 모두 사양했다. 원칙과 의리를 지켰던 그는 감독 시절 이렇다 할 잡음도 없었다.

진지하게 과거를 돌아보던 박 부회장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도 자주 드시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술 얘기라면 더 할 게 없다”고 대꾸한 그가 두주불사 스타일이라는 건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허재 전 KCC 감독은 박 부회장을 ‘주성(酒聖)’에 비유했다. 대학 3학년 때 친구 4명과 소주 99병을 비웠다거나 고려대 감독이던 1980년대 만리포 하계훈련 때 선수 20명과 술 대결을 벌여 모두 녹다운시켰다는 등 전설적인 사연이 많다.

박 부회장은 “제대로 취해 본 적은 없다. 술이 센 게 아니라 음주 후에도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게 더 맞다. 요즘도 술자리에 나를 불러주는 사람이 많다. 술을 통해 좋은 분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아직 총각이다. 첫사랑의 상처가 심했다거나 중풍에 걸린 아버지를 15년 넘게 간병하다 혼기를 놓쳤다는 등 추측만 무성할 뿐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진 사실은 없다. 그 대신 농구를 ‘평생의 배필’로 맞은 그는 2년 전 홀로 모시던 어머니가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은 뒤 혼자 지내고 있다. 가정사로 화제를 돌리려 하자 박 부회장은 “대만 존스컵에 출전하는 농구대표팀 단장으로 내일 출국한다. 그런 얘기는 출장 다녀와 대포라도 하면서 하자”고 했다. 40대 중반에 접어든 기자는 20대 후반 당시 젊은 혈기만 믿고 박 부회장과 술로 대적했다 심한 내상을 입고 고생한 적이 있다. ‘인생극장 시즌2’를 위해 몸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걸까.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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