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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스포츠

김세진 감독 “스타의식 버린지 오래… 난 이제 겨우 30점짜리 감독”

입력 2015-01-05 03:00업데이트 2015-01-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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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33>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

김종석 기자
밤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는 그는 자리에 앉아 밤(栗)라테를 주문했다. 강추위가 몰아친 2일 경기 용인시 대웅제약 연수원 카페에서 만난 프로배구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41)이었다. OK저축은행은 이곳을 훈련장과 숙소로 쓰고 있다. “커피를 못 마신다”고 말하는 김 감독 목소리는 잔뜩 쉬어 쇳소리가 났다. 시즌이 한창이라 스트레스가 말 못할 정도로 심해 보였다. 전술 구상과 복기를 하다 보면 2, 3시간밖에 못 잔다고 했다. 현역 시절 ‘월드 스타’라는 별명과 함께 당대 최고의 라이트로 이름을 날렸던 김 감독은 2013년 5월 러시앤캐시(현 OK저축은행)의 창단 감독을 맡아 두 시즌째 팀을 이끌고 있다. 지난 시즌 7개 구단 중 6위였던 그의 팀은 이번 시즌 2위를 달리며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새해 소망을 묻자 그는 “성적보다도 우리 아이들이 안 다치기를 바란다”고 했다.

가장 큰 무기는 소통

김 감독은 OK저축은행 초대 사령탑에 오르기 전까지 지도자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의 발탁은 도박이라는 얘기까지 돌았다. 김 감독도 “제의를 받고는 얼굴마담이 필요하다면 나는 아니라고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확답을 하지 못하던 그를 움직인 건 최윤 구단주였다. 김 감독은 “구단주께서 창단 팀에 적임자라며 인사권을 비롯해 모든 권한을 전폭적으로 주셨다. 내가 생각하는 그림이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어 1주일 만에 OK했다”고 설명했다.

부임 초기 연패에 허덕이며 시행착오를 겪던 그는 선수들과의 벽을 허물면서 팀도 자리를 잡아갔다고 했다. “틈만 나면 대화를 했다.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다 같이 술잔도 기울였다.” 김 감독은 지난해 12월 30일 삼성화재와의 경기에서 패한 뒤 낙심한 선수들을 데리고 송년 소주 파티를 했다. 그는 모임이 끝난 뒤 레프트 송명근을 끌어안고 잤다. 스킨십을 높이려는 의도였다. 격의 없는 감독의 모습에 20대 초반이 대부분인 선수들은 주눅 들었던 마음을 열고 감독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

김 감독은 “선배는 물론이고 후배들에게도 수시로 배구와 관련된 걸 묻는다. 감독이 이런 것도 모르냐고 할까 창피해하지 않는다”고 했다. 뭔가를 배우는 데 자존심은 필요 없다는 의미였다.

김 감독의 가슴에 스타의식은 사라진 지 오래다. “선수들에게 ‘그것밖에 못하느냐’ 식의 말이나 누구와 비교는 하지 않는다. 잘못을 지적하려면 직설적으로 눈물이 쏙 나게 한다.” 감독 앞에서만 잘 보이려 한다거나 수동적으로 움직이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올 시즌 OK저축은행에 가세한 쿠바 출신 시몬은 특급 외국인 선수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선발 배경을 묻자 그는 “인성이 좋아 뽑았다. 어떤 선수인지 살피려고 와인을 마시며 면접을 했는데 직접 물도 가져오고 스스로 호텔 체크인도 하더라. 주위를 배려할 줄 알았다. 배구 좀 한다고 독선적이면 다른 선수와 조화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코트 밖 넓은 세상을 통해 배웠다

충북 옥천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김 감독은 197cm의 큰 키를 앞세운,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성장했지만 한때 키가 작아 운동을 관둘 뻔했다는 남모를 사연을 털어놓았다. “고교 때까지 키가 170cm밖에 안 됐다. 반에서 (키가) 중간 이하였다.” 단신의 핸디캡 탓에 그는 세터로 7년을 뛰었다. 왼손잡이인 줄만 알았던 김 감독은 원래 양손잡이였다고 한다. 세터로 남보다 잘하려고 왼손을 연마했던 그는 고교 2학년 때 키가 갑자기 크면서 공격수가 됐다. 세터 출신이라 넓은 시야에 이단 토스와 수비에도 재주를 지닌 전천후 선수로 거듭났다.

선수 은퇴 뒤 김 감독은 배구와 무관한 외도를 했다. “따뜻한 실내 코트를 떠나 비바람 참 많이 맞았다. 건설회사에서 2년 동안 영업을 했다. 정보기술(IT)업체에서 사업본부장으로 집적회로(IC)카드 비즈니스도 했다. 그러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7년 반 동안 배구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가 겪은 산전수전은 소중한 자산이 됐다. “스포츠나 사업이나 결국 사람이더라. 올바른 대인관계와 팀워크가 없으면 어떤 결실도 얻을 수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앞만 보고 바르게 갈 뿐”

김 감독은 1995년 삼성화재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과는 오랜 인연이 있다. 김 감독은 “신 감독님과는 내가 처음 국가대표에 뽑힌 1992년부터 15년 가까이 사제관계였다”고 했다. 올해로 20년째 삼성화재를 지키며 우승 제조기로 명성을 날린 신 감독은 관리 배구의 대명사로 불린다. 심야에 선수 휴대전화 수거나 야식 금지 등 간섭이 심해 ‘유치원’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김 감독은 “삼성화재에서는 밤에 선수들의 차량 바퀴 위에 돌멩이를 몰래 올려놓은 적도 있다. 외출했는지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명색이 프로인데 불만이 나올 수 있지만 성적이 워낙 좋으니까 전부 믿고 따른 것이다. 나만큼 신 감독님 속을 썩인 제자도 없지만 나만큼 믿고 따른 제자도 없었다”며 웃었다. 일탈의 추억을 통해 김 감독은 선수 심리를 잘 꿰뚫게 됐다.

강한 훈련과 기본기를 강조하는 김 감독은 매일 오전 7시 선수들의 체중을 재게 하고 있다. 식사든 훈련이든 지각하는 선수는 단단히 혼날 각오를 해야 한다. “과체중은 부상 위험을 높인다. 단체 생활에서 시간 준수는 철칙이다.”

어느덧 우승 후보가 됐다는 기자의 새해 덕담에 김 감독은 손사래를 쳤다. “아직 멀었다. 선수들이 밝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달라졌기에 30점짜리 감독은 된 것 같다. 우승은 희생과 양보, 절제에 의한 독한 마음에서 나온다. 매일 살얼음을 걷는 것 같지만 급하다고 뛰면 물에 빠진다. 앞을 보고 바르게 갈 뿐이다.” 과욕과 성급만 앞세우다 상처 받고 낭패를 보는 게 어디 배구코트뿐이랴. 훈련 시간이 다가와 선수들이 기다린다며 자리를 떠난 김세진 감독이 던진 한마디가 기자의 귓전을 때렸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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