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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스포츠

김효주 “멘털甲 비결? 필드에 서면 편안… 거기선 날 건드릴 사람 없어요”

입력 2014-12-22 03:00업데이트 2014-12-2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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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32> 프로골퍼 김효주와 아버지

“장관님 만났어요. 호호.”

1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효주(롯데)는 자랑부터 했다. 소방헬기 추락사고 순직 유가족을 위해 강원도청에 5000만 원을 기부해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에게 감사패를 받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가슴에 흰 별 장식이 붙은 김효주의 검정색 정장은 12월 들어서만 기자가 시상식에서 네댓 차례 봐 익숙한 차림이었다. 19세 소녀의 발랄하고 수수한 모습이었다.

김효주는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대상 등 4관왕에 올랐다. 9월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올해 국내외를 합해 7차례 트로피를 안은 그는 상금과 보너스 등을 합쳐 40억 원 넘게 벌었고, 롯데와 5년간 총액 65억 원(인센티브 제외)에 재계약했다. ‘100억 소녀’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의 곁에는 아버지 김창호 씨(56)가 항상 있었다. 인터뷰 도중 아버지가 주차해 둔 차를 옮기러 잠시 자리를 비우자 “아빠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다. 딸을 위해 많은 걸 희생하셨다”고 했다. 평소 쑥스러워 대놓고 하지 못한 말을 기자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 골프는 내 운명

김효주의 경기 용인시 집에는 수많은 트로피와 함께 대형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두 살 때 캘린더 모델 경연대회에 참가해 찍은 것이라고 한다. 사진 속 아이는 장난감 골프채와 캐디백을 메고 있다. 아버지는 “그 어린 아이가 하필 골프용품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참 희한하다. 인연이 있었나 보다”고 했다.

김효주는 6세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강원 원주시 집 근처 스포츠센터 태권도학원을 갔다 골프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말이다. “원장이 내 선배였는데 효주의 운동감각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골프가 맞겠다며 권했다.”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빗대 골프 스타들은 대개 골프에 반쯤 미친 아빠들의 ‘바짓바람’을 받지만 사실 김 씨는 골프와는 무관한 사람이다. 그는 “오히려 그게 약이 됐다”고 했다. “아빠가 이런저런 간섭을 했다면 아마 반발심리가 생겨 다른 길로 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딸이 골프를 시작한 이후 나도 책이나 TV 등을 보며 공부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회에 나가 천재성을 인정받은 김효주의 골프 수업은 한연희 전 국가대표 감독이 10년 넘게 가르치고 있다. 그 대신 아버지는 올바른 정신자세와 발육에만 전력을 다했다. “감정 조절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쳤다. 성과가 안 좋다고 남의 탓을 할 때는 따끔하게 혼을 냈다. 이젠 딸아이 걸음걸이만 봐도 대충 그날 스코어가 짐작될 정도다.”

김효주의 키가 166cm로 작지 않은 편인데 아버지 김 씨의 키는 170cm가 안 된다. 남자로는 단신(短身)인 셈이다. 오랫동안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식당 일을 했던 김 씨는 “딸애 키를 크게 하려고 무조건 잘 먹였다. 한 끼에 스테이크를 몇 장씩 구워줬고 자연산 미꾸라지를 잡아 뼈를 갈아 끓여줬다.”

승승장구하던 김효주는 중3 때인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 대회를 앞두고 1타 차로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아시아경기만 바라보고 운동해 왔던 그에게는 큰 상처였다. 김효주는 “운동을 때려치우고 싶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재도약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빠의 격려와 위로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멘털 슈퍼 갑’으로 통하는 김효주. 비결을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긴장감을 굳이 극복하려 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할 도리만 하면 그만이다. 골프장에 들어가 잔디를 밟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곳에서 날 건드릴 사람은 없다.”

○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의 이런 강철 심장은 엄청난 훈련의 산물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매일 밤 2시간 넘게 빈 스윙을 하며 기본기를 다졌고 클럽 헤드가 닳을 정도로 공을 쳤다. “처음엔 아빠나 코치님이 시켜서 한 것인데 훈련을 반복할수록 좋아지는 걸 느끼니까 나 스스로 알아서 하게 되더라. 선수로서 내 골프는 90점이 만점이다. 남은 10점을 채우기 위해 늘 노력할 것이다. 100점이 됐다고 여기면 은퇴해야 한다.”

김 씨는 “늦잠 자다가도 골프 연습하러 가자고 하면 벌떡 일어났다. 대회 때 열이 40도까지 올라 포기하자고 했는데 결국 출전해 트로피 들고 병원 간 적도 있다”고 했다. 부상은 늘 그를 따라다니는 짐이다. 올해 에비앙챔피언십 때는 아킬레스건을 심하게 다쳐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고 한다. 김효주는 “연습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아빠가 주물러 주려 해도 통증이 너무 심해 건드리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 더 큰 세상을 향해

김효주는 내년 LPGA투어에 진출한다. “영어 소통이 가장 부담스럽다. 또 부상이 걱정이다. 아프면 집중이 안 된다. 안 다치고 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내년에 만 20세가 되는 그에게 좌우명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잠시 머뭇거리다 최근에 ‘스무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아버지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자 “에이, 연습 많이 하라는 말 아니냐”고 받아쳤다.

딸의 아양 섞인 비난에도 아버지의 당부는 이어졌다. “골프장 직원, 캐디, 갤러리들에게 늘 감사해야 한다. 우리를 위해 고생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고개를 끄덕이던 그가 “맞다. 올해는 특히 감사할 일이 많았다. 누군가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할 때 더 기쁜 것 같다. 버디 했을 때보다 더 좋더라”고 답했다. 요즘엔 자식들과 대화가 어렵다는 아버지들이 많은데 두 부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저런 믿음이 지금의 김효주를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갈 무렵 옆에 있던 김효주의 매니저가 이제 4시간 동안 피트니스클럽에서 운동을 해야 한다며 인터뷰 마무리를 부탁했다. 그 말을 듣고 김효주가 환하게 웃으며 아빠에게 던진 말은 이것이었다. “점심은 빵으로 해결하겠으니 아빠는 따로 드셔야겠네요.”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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