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eye]선수 인생 바꿔놓을 ‘4분 출전’

  • Array
  • 입력 2012년 8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이헌재 스포츠레저부 기자
이헌재 스포츠레저부 기자
일본 기자가 묻습니다. “한국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뛰는 게 군대 때문이냐”고. 브라질 기자도 묻습니다. “경기에 지면 곧바로 군대에 끌려간다는 게 사실이냐.”

예전 야구 국제대회를 취재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다른 나라 기자들은 기량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는 한국 선수들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질문은 군대와 연결됩니다.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런던 올림픽 축구 한일전도 그렇습니다. 한국 선수들은 죽기 살기로 뛰면서 분위기를 압도했습니다. 거친 태클과 강력한 항의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경기 내내 지치지도 않습니다. 지난해 일본에 0-3으로 완패했던 한국 성인 대표팀과는 극과 극입니다. ‘군대로이드(군대와 스테로이드의 합성어)’는 시키지 않아도 죽어라 뛰게 만드는 힘이 있나 봅니다.

따지고 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프로 선수들에게는 더욱더 시간이 돈입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를 통해 병역특례를 받느냐 못 받느냐에 따라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이 왔다 갔다 합니다. 해외 진출에도 걸림돌이 없어지지요.

한국이 낳은 대표적인 야구, 축구 선수인 박찬호(39·한화)와 박지성(31·퀸스파크 레인저스)도 그랬습니다. 수많은 영광의 순간이 있었겠지만 박찬호가 가장 환한 웃음을 지었던 건 1998년 방콕 아시아경기 금메달을 확정지은 때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병역 혜택을 받은 박찬호는 그 후 메이저리그에서 선전하며 통산 124승을 거둬 국위선양과 함께 국민에게 즐거움을 함께 줬습니다. 돈도 1000억 원 가까이 벌었습니다.

축구 선수 박지성도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으로 병역특례를 받은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병역 특례가 아니었다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고 명문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동메달을 확정지은 후 “개인적으로도 기쁘지만 앞으로 한국 축구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병역 혜택을 받은 선수들처럼 이 선수들도 더 발전해서 한국 축구에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한 선수가 불쑥 떠오릅니다. 후반 45분 교체 투입돼 단 4분을 뛰고 극적으로 병역 혜택을 받은 수비수 김기희(대구)입니다. 그는 “축구 인생이 끝날 때까지 절대 잊지 못할 4분”이라고 했습니다. 이 4분이 앞으로 그의 축구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유심히 살펴봐야겠습니다.

이헌재 스포츠레저부 기자 uni@donga.com
#올림픽#김기희#군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