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나도야 간다]<1>女레슬링 첫 메달 도전 김형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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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레슬링의 운명 짊어진 내 넓은 어깨가 자랑스럽다”

《 “비인기 종목의 설움은 잊었다. 주목받지 않아도 좋다. 금메달이 보장된 ‘효자’ 종목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올림픽에 모든 것을 걸었다. 나는 대한민국 최고인 ‘국가대표’니까!”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선 체조 양학선, 근대5종 이춘헌 정훤호,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겨울 아시아경기에선 알파인스키 정동현 김선주 등이 본보 ‘나도야 간다’에서 만난 뒤 감격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에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이다.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비인기종목 선수들을 소개한다. 》

천생 여자였다. 쑥스러운 듯 인터뷰 내내 배시시 웃었다. 곤란한 질문에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는 “그런 건 묻지 마세요”라며 부끄러워했다. 방금 전까지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던 여전사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여자 레슬링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꿈꾸는 김형주(28·창원시청) 얘기다. 4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김형주를 만나 ‘여자 레슬러로 산다는 것’에 대해 들어봤다.

○ 레슬링은 내 운명

여성미 넘치는 김형주가 거친 스포츠의 대명사인 레슬링에 입문한 사연은 ‘운명’에 가깝다. 그는 서울체고 시절 유도를 했지만 엘리트 선수로 성공하기엔 2%가 부족했다. 체대 진학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용인대에서 여자 레슬링 선수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이거다 싶었다. “저도 왜 레슬링에 꽂혔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냥 꼭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운명적인 만남이었죠.”

레슬링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다. 2012 런던 올림픽은 그래서 더 절박하다. 여자 레슬링 사상 첫 메달을 노리는 김형주가 4일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훈련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레슬링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다. 2012 런던 올림픽은 그래서 더 절박하다. 여자 레슬링 사상 첫 메달을 노리는 김형주가 4일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훈련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김형주는 레슬러가 되기 위해 한동안 손을 놓았던 공부에 몰두했다. 그는 체육특기자 전형이 아닌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러 당당히 용인대 격기지도과를 차석으로 입학했다. 본격적인 레슬링 수업을 받은 김형주는 승승장구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 은메달,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 동메달을 따내며 한국 여자 레슬링 간판으로 성장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숨은 금메달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 여자 레슬러로 산다는 것

김형주에게 여자 레슬링의 삶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에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까지. 한때는 자신이 레슬링 선수라는 것을 숨긴 적도 있다. “프로 레슬링 선수 아니냐는 말을 들을 때 가슴이 아팠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호기심의 대상밖에 안 된다는 생각에 눈물도 많이 흘렸죠.”

하지만 그는 고참이 되면서 부끄러움보다 자부심이 더 크다고 했다. 레슬링 선수 특유의 부은 귀도 이제는 당당히 드러내고 거리를 활보한단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이제는 저의 넓은 어깨와 근육질 몸매가 자랑스러워요.”

○ 나 그리고 후배들을 위해

김형주는 런던 올림픽에서 세계 최강 일본 중국 등과 금메달을 다툴 것으로 전망된다. 약점으로 꼽히던 심리적인 부분은 여자 레슬링 1세대인 이나래 코치(33)의 지도를 받으며 많이 보완했다. 4월 카자흐스탄에서 런던 올림픽 출전권을 걸고 열린 쿼터대회에서는 세계 2, 3위권 선수를 연달아 격파했다. 메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김형주는 “나는 물론이거니와 여자 레슬링 전체를 위해서도 메달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 여자 레슬링의 첫 올림픽 메달을 따고 싶어요. 후배들이 희망을 갖고 여자 레슬링에 도전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야 비인기 약세 종목이라는 꼬리표도 뗄 수 있겠죠.”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런던 올림픽#나도야 간다#여자 레슬링#김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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