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이 무거워 보였다. 며칠째 밤샘 촬영과 연습, 쏟아지는 행사…. 섭외가 힘들 줄 알았던 그가 바로 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달인으로 유명한 인기 개그맨 김병만(36)이었다. 그의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올 US여자오픈골프 챔피언 유소연(21·한화)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열성 골프 팬을 자처한 김병만과 유소연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달인 스크린골프장’에서였다. “골프에 푹 빠져 있다”는 김병만이 안방 드나들 듯 찾다가 7월에 아예 인수한 곳이다. 서로 분야는 달라도 최고를 꿈꾸는 이들에게 팬과 스타의 위치는 수시로 바뀌었다.
김병만(이하 김)=TV로만 보다 실제로 명사를 만나니 영광이에요. 집에 가면 늘 골프 프로그램을 보다 잠이 들어요. 불 끄면 잠을 못자요.
유소연(이하 유)=달인도 무서운 게 있네요. 예전에 친구랑 개그콘서트 녹화장에 간 적 있어요. 저도 운동을 하니까 달인 연기의 뒤에 숨은 땀이 보이는 것 같아 더 좋아요. 골프 달인도 한번 하시죠.
김=그렇지 않아도 한번 해보려고 해요. 웨지로 공을 70번까지 튀길 수 있어요. 요즘 골프가 유일한 낙이에요. 어제는 40분 자고 서서울CC에서 수근(절친한 개그맨 이수근), 달인 팀 후배 류담, 노우진 등과 공을 쳤어요. 오전 5시 20분 티오프였는데 골프장 가니 그렇게 좋을 수 없더군요. 87타를 쳤는데 18번홀에서 트리플 보기만 안 했어도….
유=체력이 정말 좋으신 것 같아요. 아마추어 분들과 치다 보면 대부분 남성분들이 여자 프로보다 거리에서 뒤질 수 없다는 듯 힘을 잔뜩 내시는데 대개 결과가 안 좋아요. 롱기스트 홀만 가면 공이 엉뚱한 데로 가고요.
김=근데 보통 슬라이스 때문에 고민을 하는데 난 공이 왼쪽으로 자주 말려요.
유=선수들도 대개 훅 구질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앞바람에서 미스 샷이 나오기도 하고요. 어깨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치면 오히려 멀리 가죠. 팔보다는 몸통을 활용해야 헤드 스피드를 높일 수 있어요.
김=지난해 제주 오라CC에 간 적이 있는데 마침 여자프로대회가 있었어요. 미녀 선수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내 이상형들이 다 거기 있는 거예요. 내가 상체만 발달해서 그런지 하체가 튼실한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근데 골프는 멘털 스포츠라고 하잖아요.
유=심리 상담을 받고 있어요. 잘 치는 것뿐 아니라 행복한 골프선수가 되고 싶어요. 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으로 바뀌는 요령 같은 걸 터득할 수 있거든요.
김=개그도 비슷해서 마음이 즐거워야 사람들을 웃길 수 있거든요. 내가 부정적인 성격이 강했어요. 늘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죠. 우리 달인 팀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함께 있으면 너무 행복해요. 골프도 같이 하자고 꼬드겼는데 노우진은 며칠 전 120개 쳤어요.
유=골프에선 캐디와의 호흡이 중요한데 저는 130개 친 적도 있어요. 서울 세종초등학교 2학년 때 골프 시작한 지 두세 달 만에 어떤 대회에 나갔을 때였죠.
김=개그맨들은 골프도 재밌게 쳐요. 어떤 골프장은 파 3홀에서 온을 하면 축하 팡파르를 울려주는 데가 있잖아요. 티샷하기도 전에 장난으로 팡파르 버튼을 누른 적도 있어요.
유=주말골퍼 분들은 허겁지겁 클럽하우스에 도착해 몸도 안 풀고 라운드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충분히 스트레칭을 하지 않으면 다칠 수도 있어요.
예정된 인터뷰 시간이 지나도 이들의 대화는 끝날 줄 몰랐다. 라디오 출연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는 김병만의 매니저 모습이 들어왔다. 김병만은 최근 펴내 10만 부가 넘게 팔린 자서전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에 사인을 해 유소연에게 건네며 “늘 밝은 얼굴이 매력인 것 같다. 나중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올라갈 것 같다”고 덕담을 했다. 유소연은 “인생 선배에게서 좋은 팁을 배웠다. 계속 웃음을 책임져 달라”며 웃었다.
“힘들고 지칠 때 달인 팀을 불러주세요. 골프가 이렇게 재밌는 거구나 알게 해 줄게요”라며 떠나는 김병만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A: 2관왕에 올랐던 2006년 아시아경기대회예요. 4년을 기다린 가장 큰 대회거든요. 국내에서는 아마추어 마지막 대회였던 2007년 전남 전국체육대회예요. 당시 단체전 개인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땄을 뿐 아니라 생애 첫 홀인원도 기록했거든요.
Q: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프로골퍼 2명만 꼽아주세요.
A: 최경주 프로와 안니카 소렌스탐이에요. 최 프로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더 큰 비상을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배울 게 많아요. 후배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시고요. 소렌스탐은 은퇴 후에도 코스 설계와 골프아카데미 운영 등으로 골프 발전에 힘쓰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롤 모델로 삼고 있어요.
Q: 체력관리를 위해 특히 잘 먹는 음식과 보양식이 따로 있나요.
A: 잘 먹는 음식은 낙지예요. 튀김, 밀가루 음식, 패스트푸드, 탄산음료 등은 즐기지 않아요. 육류도 너무 많이 먹지는 않죠. 보양식을 챙기기보다는 해로운 음식을 피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Q: 먼 훗날 은퇴 후 모습을 그려본다면….
A: 그동안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어요. 선수 지원과 매니지먼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느끼다 보니 골프선수를 관두면 후배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몇 년 전만 해도 골프의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는데 요즘은 스포츠마케팅에 관심이 많아요. 나중에 정말 뭘 하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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