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 아하, 육상!]<3>‘마라톤 영웅’ 아베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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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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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로마올림픽 세계기록 ‘깜짝’
맹장수술 5주뒤 도쿄서 2연패 ‘기염’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맨발로 역주를 하고 있는 아베베. 동아일보DB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맨발로 역주를 하고 있는 아베베. 동아일보DB
《 에티오피아 아베베 비킬라(1932∼1973)는 양치기였다. 해발 3000m 고지대 초원에서 소를 몰면서 자연스럽게 심장과 다리근육을 키웠다. 그는 1960년 로마 올림픽 남자마라톤에서 맨발로 달려 세계최고기록(2시간15분16초)으로 우승했다. 》
아프리카 흑인 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당시 ‘흑인은 결코 장거리를 달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서구 전문가들은 깜짝 놀랐다. 아베베는 편견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당시 사람들은 아베베가 ‘신발을 살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가난해서’ 맨발로 달렸다고 생각했다. 그가 신발을 신었다면 얼마나 빨리 달릴지도 궁금해했다. 과연 아베베는 신발이 없었을까. 사실은 있었다. 그는 연습할 때 대부분 신발을 신었다. 가끔 신발이 발에 맞지 않을 땐 맨발로 달렸다. 기록은 맨발일 때 더 좋았다. 20마일(약 32km)을 맨발로 1시간45분, 신발로 1시간46분30초에 달렸다.

당초 로마 올림픽에서 맨발로 달릴 생각이 없었다. 당시 독일의 아디다스사는 에티오피아 육상팀에 신발을 후원하고 있었다. 당연히 아베베에게도 아디다스의 신발이 지급됐다. 하지만 그 신발이 잘 맞지 않아 물집이 생겼다. 새 신발은 1, 2주일쯤 전부터 길을 들여야 하는데, 아베베는 올림픽에 임박해서야 그 신발을 신어봤던 것이다(로마에 와서 새로 산 러닝화가 발에 맞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아베베는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다. 과연 그가 또 맨발로 달릴 것인가. 연거푸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할 수 있을 것인가. 당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아베베의 우승을 비관적으로 봤다. 아베베는 올림픽 5주일 전인 9월 16일에 맹장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베베는 9월 27일 훈련을 재개했다. 그리고 10월 21일 2시간12분12초 세계최고기록으로 보란 듯이 우승해 버렸다.

아베베는 도쿄 올림픽에서 맨발로 달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세계적인 신발 회사들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로마 올림픽에서 어처구니없게 아베베를 놓쳐버린 아디다스가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베베를 잡는 데 성공한 것은 아디다스의 라이벌 독일의 푸마였다. 아디다스는 뼈아팠을 것이다. 푸마가 ‘아디다스의 창업자 아디 다슬러의 형인 루돌프 다슬러의 회사’라는 데서 더욱 그렇다. 피를 나눈 형제였지만 사업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었다.

아베베가 시상대에 선 도쿄 올림픽 남자마라톤 시상식은 아직까지도 ‘소가 웃을 해프닝’으로 기억되고 있다. 시상대에서 에티오피아 국기는 올라갔지만 국가는 일본 국가나 마찬가지인 기미가요가 연주됐던 것. 도쿄올림픽조직위는 “에티오피아 국가를 준비하지 못해 부득이 개최국의 기미가요를 연주한다”고 말했다.

1969년 2월 아베베는 에티오피아 황제가 하사한 폴크스바겐을 몰고 가다가 빗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목이 부러지고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됐다. 하지만 아베베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1970년 노르웨이 25km 휠체어 눈썰매크로스컨트리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10km 레이스에선 특별상도 받았다. 장애인올림픽 양궁과 탁구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내 다리로는 더 달릴 수 없지만 나에겐 두 팔이 있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아베베는 1973년 41세 나이에 뇌종양으로 숨졌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성 요셉 공동묘지에 묻혔다. 무덤 좌우엔 그의 올림픽 우승 골인 장면을 묘사한 두 개의 동상이 서 있다. 한쪽은 1960년 로마올림픽 때 맨발의 아베베, 다른 쪽은 1964년 도쿄 올림픽 때 신발의 아베베. 그는 맨발과 신발을 아우르는 진정한 마라톤 영웅이었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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