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 &joy]‘보배로운 섬’ 진도를 어슬렁거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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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한생 별거러뇨… 응, 응∼ 아리랑고개로 내가 넘어간다

어화 세상 벗님네들, 이 내 말 좀 들어 보소. 사람 한생 팔십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 사는 인생. 아차 한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세. 나랏돈 도둑질해 먹은 놈, 불효하는 놈, 화목 못 하는 놈, 차례로 잡아다가 늘어진 계수나무 끄트머리에 매달아, 저 세상에 먼저 보내 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여 앉아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하면서 거드렁거리며 놀아 보세. 어화 어화 여루 상사뒤여, 얼루루 상사뒤여. 세월아, 네월아, 가지를 마라. 아까운 청춘들이 다 늙는구나. 어화 가는 세월 어쩔거나. 늦여름 진도 운림산방. 오랜 가뭄에 배롱나무꽃이 겨우 꽃잎을 열었다. 진도=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어화 세상 벗님네들, 이 내 말 좀 들어 보소. 사람 한생 팔십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 사는 인생. 아차 한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세. 나랏돈 도둑질해 먹은 놈, 불효하는 놈, 화목 못 하는 놈, 차례로 잡아다가 늘어진 계수나무 끄트머리에 매달아, 저 세상에 먼저 보내 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여 앉아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하면서 거드렁거리며 놀아 보세. 어화 어화 여루 상사뒤여, 얼루루 상사뒤여. 세월아, 네월아, 가지를 마라. 아까운 청춘들이 다 늙는구나. 어화 가는 세월 어쩔거나. 늦여름 진도 운림산방. 오랜 가뭄에 배롱나무꽃이 겨우 꽃잎을 열었다. 진도=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진도홍주를 마시다보면
몸속의 길이 환히 보인다.

간이역을 차례로 들러 느릿느릿
종점에 도착하는 야간완행열차처럼
목구멍-위-작은창자-큰창자-방광으로 내려가는
구불구불한 길이 차례로 들여다 보인다
중간에 대동맥-소동맥-실핏줄로 퍼져나가는
가느다란 샛길들마저 낱낱이 보인다.

진도홍주에 취하다보면
역주행의 길도 환히 보인다.

밭일 마친 진도 아낙들 얼쑤절쑤
흥타령 부르며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듯
방광-큰창자-작은창자-위-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비틀비틀한 길이 절로 들여다 보인다
홍주 속에 녹아들어 있는 진도의 길과 가락
불타는 세방낙조까지 뜨겁게 보인다.

-김선태 ‘진도홍주’ 전문

진도는 ‘보배로운 섬’이다. 사람, 땅, 문화 모두 그렇다. 땅은 ‘한 해 농사로 삼 년 먹고살’ 만큼 기름지다. 사람은 넉넉하고 따뜻하다. 아무리 슬프고 화나더라도 그런 것들을 곰삭여 가락으로 풀어낸다.

죽은 사람의 한까지도 씻김굿으로 말갛게 씻겨낸다. 출상 전날 망자의 가족에게 춤과 노래로 토닥토닥 마음을 달래 주는 게 바로 무형문화재 상여놀이 ‘다시래기’다. 가슴이 ‘폭폭한’ 아녀자들은 ‘달 밝은 밤 강강술래’로 꽁꽁 맺힌 것들을 스르르 풀어 버린다.

“아리랑 응∼응∼응∼ 아리라가 났네” 진도아리랑 후렴구는 만사형통의 마술주문이다. 한번 입으로 부르기만 하면 모든 걱정과 시름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이 중에서도 ‘응∼응∼응∼’은 ‘꽃 중의 꽃’이다. 턱을 주억거리며 토해 내는 ‘응∼’은 곧 ‘찬란한 슬픔’이다.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는 ‘꽃자리’가 바로 ‘응∼’인 것이다. 그것은 신음이자 기쁨의 소리다. 불같은 진도홍주가 배 속에 뜨겁게 목구멍을 타고 흘러갈 때, 온몸이 그 홍주의 뒤를 따라 뻥 뚫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도에선 애당초 ‘글씨, 그림, 소리’ 자랑은 하지 않는 게 예의다. 시골마을 화장실에도 번듯한 글씨나 그림이 떡하고 붙어 있으니 잘해 봐야 본전이다. 노래나 춤은 말할 것도 없다. 길 가는 사람 누구라도 육자배기 한 자락씩은 구성지게 뽑아 낸다. 들판에도 소리꾼이요, 고깃배에도 소리꾼이요, 시장바닥 주막집에도 온통 소리꾼 천지다. 어깨춤을 덩실덩실 얼쑤절쑤 추어 대며 굽이굽이 아리랑고개를 넘어들 간다. 하기야 진도 코앞 울돌목(鳴梁·명량)도 쿠르르! 쿠르르! 임방울의 쑥대머리소리를 토해 낸다.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거제도 다음으로 큰 세 번째 섬이다. 볼 곳이 그만큼 많다. 산도 나지막하다. 우선 소치 허련(1808∼1893)이 37년 동안이나 살았던 운림산방에 들러 봐야 한다. 소치는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의 제자. 1856년 스승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이곳에 돌아와 운림산방을 짓고 여생을 보내며 진도문화의 꽃을 피웠다.

각진 연못에 둥근 섬. 붉은 배롱나무꽃이 오랜 가뭄에 빛이 바랬다. 아쉽다. 연못 앞 무성한 동백나무와 늙은 소나무도 초록이 지쳤다. 수양버들은 치렁치렁 혀를 길게 내빼고 있다. 오직 운림산방 앞쪽 좌우의 은목서, 금목서 나무 만이 성성하다.

해질 무렵엔 무조건 세방마을로 달려간다. 붉은 노을이 황홀하다. 세방해안은 남해와 서해가 만나는 경계선이다. 경계에 고운 노을꽃이 핀다. 울돌목과 같이 급물살이다. 썰물 때면 톳 양식장이 갈비뼈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늦여름 말매미가 자진모리로 악을 쓰며 한 자락 뽑고 있다.

붉은 햇덩이가 ‘올망졸망 점점이 섬 사이’로 미끄덩! 사라진다. 땅도, 하늘도, 바다도, 내 눈도, 숲도, 온통 붉은 홍주빛이다. 손가락섬(주지도), 발가락섬(양덕도), 누에머리섬(잠두도), 부처섬(불도), 부처님옷섬(가사도), 긴섬(장도), 접운도, 하갈도, 접운도…. 20여 개의 섬이 숯불처럼 발갛게 달아올랐다. 양덕도 너머엔 신안의 하의도가 아스라이 불똥으로 잡힌다.

‘그제야 술이 묻는다./너는 술만큼 투명하냐/너는 술만큼 진하냐/너는 술만큼 정직하냐/이때 물음에 답하는 것은 내 얼굴빛/내 얼굴빛이 홍주빛일 때/비로소 내게 홍주 마실 자격을 준다.’(이생진 ‘許女史!’에서)
▼시골 마을에 국보급미술품 수두룩▼
임회면 삼막마을 ‘장전미술관’

국보급미술작품이 수두룩한 장전미술관 내부.
국보급미술작품이 수두룩한 장전미술관 내부.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는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진도읍에서 남쪽으로 약 8km 떨어진 동네. 그곳에 보석 같은 미술관이 숨어 있다. 장전미술관이 바로 그곳이다.

다산 정약용의 ‘8폭병풍 홍매’, 공제 윤두서 ‘고목산수도’, 이당 김은호 ‘미인도’, 대원군 시첩, 대원군 난 그림, 심산 노수현 ‘송하대기도’, 오지호 유화 ‘비원’, 월전 장우성 ‘장미도’, 남농 허건 ‘하경산수도’…. 보는 것마다 입이 떡 벌어진다. 그림이 다가 아니다.

율곡 이이 간찰을 비롯해 한석봉, 우암 송시열, 추사 김정희, 김옥균, 민영환, 소전 손재형, 일중 김충현 등 내로라하는 명필 글씨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미술관이 너무 작아 상당수가 수장고에 묵고 있다. 김영중, 박양선, 하영생, 김대길, 김행신, 정혜정 등의 유명 조각 작품도 즐길 수 있다. 기기묘묘하고 빼어난 분재도 많다.

그뿐인가. 도기는 아예 별채에 따로 전시해 놓았다. 삼국시대 토기항아리, 고려청자 ‘연화문정병’, 분청사기 ‘물고기무늬 장군’, 조선 백자, 달항아리 등 국보급이 수두룩하다. 전시실이 비좁아 ‘전시라기보다는 한곳에 모아’ 둔 느낌이다.

장전(長田)은 서예가 하남호 선생(1926∼2007)의 호. 그는 명필로 유명한 소전 손재형 선생(1903∼1981)의 제자로 평생 수집한 작품들을 모아 고향마을에 미술관을 만들었다.

진도엔 소치 허련 가문과 그 화맥을 이어온 작가들 작품을 볼 수 있는 소치미술관과 남도전통미술관, 소전 손재형 선생의 작품과 소장품이 전시돼 있는 소전미술관, 한국화가 이상은 씨의 나절로미술관이 있다. 장전미술관은 규모는 작고 소박하지만 작품의 질이나 다양성으로 본다면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061-543-0777

▼얼쑤! 사물놀이로 흥 돋우는 진도의 ‘멋쟁이 시인’▼
이평기 문화관광해설사

진도군문화관광해설사 이평기 씨(55·사진)의 호는 ‘도팍’이다. ‘도팍’은 ‘돌(石)’이란 뜻의 진도사투리.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부른 별명이 호로 굳어졌다. 그가 ‘도팍’을 호로 삼아 명함에 박고 다니는 것은 ‘돌처럼 변하지 말고 늘 처음처럼 살자’는 뜻을 담고 있다.

그는 평생을 진도에서만 살았다. 3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 모시고 농사지으며 고향을 굳게 지켰다. 1984년엔 진도군 4H연합회 회장을 할 정도로 농촌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국악을 익히고 고향 역사를 공부해 문화관광해설사 역할까지 맡았다. 그는 2006년 계간 문학춘추 추천으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섬은/안개를 두르고 흘러간다/들물에는 드러눕고/날물에는 옷자락을 걷어내는/섬은 바람이다//드러누운 그림자가/체념하고 흘리는 마른기침/숨쉬기조차 힘든 걸음걸이/목젖을 젖힌다’(이평기의 ‘바람’에서)

그는 2008년 해양수산부 주최 전국문화관광해설사대회 장려상, 2009년 전라남도 주최 전국문화관광해설사대회 동상을 받으며 명해설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뿐인가. 이달 초엔 전남 무안군에서 열린 전국품바경연대회 사물놀이부문에서 그가 속한 걸쌈패가 대상을 차지했다. ‘걸쌈’이란 ‘신나고 흥겹게 논다’는 뜻의 진도 말. 그는 꽹과리와 북을 갖고 한판 신명나게 놀았다. 그의 정식 직업은 기아자동차 딜러. 하지만 고향 진도를 위하는 것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나선다.

“아들(대학 4년)이 초등학교 때부터 7년 동안 백혈병을 앓다가 완치됐는데 정말 느낀 게 많았습니다. 판소리 조상현 선생의 ‘사철가’와 가수 이문세의 노래 ‘행복한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요즘엔 소금(퉁소)을 배우러 다닙니다. 중학교 때 좀 불었는데 다시 기억을 되살리고 있지요. 토종닭도 한 100마리 운동 삼아 키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진도관광백서’ 책을 한 권 써볼까 하는데 능력이 부족해 잘 될까 모르겠습니다.”

진도개 강아지 뭍에서 키우려면

진도개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다. 강아지 때부터 길러야 교감이 깊어진다. 진도에선 진도개가 새끼를 낳으면 2주 이내에 진도군청 진도개사업소(061-540-6337)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물론 어미, 아빠개 모두 혈통이 등록돼 있어야 한다.


강아지가 한 달 정도 크게 되면 진도개사업소 직원이 직접 방문하여 유전자검사(구강채취)를 한다. 보통 30% 정도가 진도개유전자 합격 판정을 받는다. 8마리에 2, 3마리 비율이다. 합격한 강아지는 귀에 바코드 칩을 심어 색인 등록이 되고, 불합격 강아지는 잡종개로 분류된다.

등록된 진도개 강아지를 뭍으로 가져가 키우려면 강아지와 함께 진도개사업소에 가서 반출신청서를 작성하고 혈통증명서와 반출증명서(3000원)를 발급받아야 한다. 보통 진도개사업소에 강아지 분양 문의를 하면 생산 농가를 소개해준다. 가격은 수요자가 직접 생산농가와 흥정한다. 값은 한 마리 최저 50만 원에서 최고 1000만 원대까지 천차만별. 보통 100만 원 안팎에서 거래된다고 보면 된다. 암수 가격차는 없다. 품평회에서 암수 3대가 챔피언을 한 경우 1000만 원대를 호가한다.

등록된 진도개를 불법 반출할 땐 관련 법에 따라 불이익을 받는다. 진도대교를 건널 때 센서가 즉각 반응한다.

▼金∼土 1박2일 진도 여행… 공연-명소순례 환상 코스▼

진도는 멀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5시간 가까이 걸린다. 금요일에 떠나야 볼 것, 들을 것이 많다. 매주 금요일 저녁(오후 7시)엔 국립남도국악원(061-540-4034)에서 무료상설공연을 펼친다. 진도의 춤, 노래와 판소리를 선보인다.

토요일 아침엔 운림산방을 둘러보고, 곧바로 운림산방경매장(061-280-5823)에서 열리는 남도예술은행 토요경매(11시)에 참가할 수 있다. 10만∼40만 원대가 주류. 한국화, 서예, 문인화 경매가 이뤄진다. 토요일 점심 뒤(오후 2시)엔 진도향토문화회관(061-544-8978)에서 강강술래, 남도들노래, 진도씻김굿, 다시래기 등을 무료로 볼 수 있다. 이 공연이 끝나면 곧바로(오후 4시) 진도개테마파크(061-540-6310)에서 진도개 묘기와 진도개 경주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마침 진도개 묘기가 끝날 때쯤이면 세방마을(승용차로 30분 거리) 해변의 낙조가 붉게 익을 시간이다. 일요일 오후 3시에는 진도문화원(010-5567-3413)에서 진도민속공연도 볼 수 있다.

■Travel Info

▲ 교통

▽승용차=서울∼서해안고속도로∼목포 나들목∼목포대교∼영암방조제∼금호방조제∼77번국도∼우수영∼진도, 서울∼경부고속도로∼대전∼호남고속도로∼광주광산나들목∼13번국도∼나주∼영암∼해남∼18번국도∼진도 ▽버스=서울강남고속터미널∼진도(하루 4회, 4시간 50분 소요), 서울강남고속터미널∼목포(하루 24회, 3시간 50분 소요) 목포∼진도(하루 23회, 1시간 소요) ▽KTX=서울 용산역∼목포(하루 10회), 목포에서 버스로 진도행. ▽항공기=서울∼무안(하루 1회), 무안에서 버스로 진도행

▲ 먹을거리

♣아침 ▽추어탕 산울림(061-544-3564) ▽백반 및 콩나물국밥 버섯마을(061-544-6446) ▽듬북이국 맛나식당(061-544-6171) ♣점심 ▽꽃게·성게비빔밥 신호등(061-544-4449) ▽생선구이 해미원(061-543-6997) ▽수제비·파전, 작은 갤러리(갤러리 겸한 식당, 한국화가 우초 박병락 씨 직접 운영, 010-4620-1071) ♣저녁 ▽옥천횟집(061-543-5664) ▽문화횟집(061-544-6007) ▽진도수산식당(010-3230-1416) ▽회정식 기와섬(061-543-5900) ▽간재미 재진관(061-544-2419) ▽진도한우 묵은지(061-543-2242)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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