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못다한 이야기]⑤배드민턴 혼복 8강탈락 나경민

  • 입력 2004년 9월 8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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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아테네 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8강전에서 뜻밖의 패배로 금메달을 놓친 나경민. 라켓과 셔틀콕을 마주한 채 좌절을 딛고 재기를 준비하는 그의 눈빛에서 희망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변영욱기자
2004아테네 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8강전에서 뜻밖의 패배로 금메달을 놓친 나경민. 라켓과 셔틀콕을 마주한 채 좌절을 딛고 재기를 준비하는 그의 눈빛에서 희망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변영욱기자
라켓을 거꾸로 들어도 금메달이라고 했다. 아테네 올림픽 직전까지 14개 대회 연속 우승에 70연승을 달렸으니 누군들 금메달을 의심했을까. 셔틀콕 사상 최강의 혼합복식조로 평가되던 나경민(28·대교눈높이)과 김동문(삼성전기)조의 올림픽 준비는 그만큼 빈틈이 없어 보였다.

○‘덴마크 복병’ 만나 공든탑 와르르

하지만 김-나조는 아테네 올림픽 8강전에서 덴마크의 라스무센-올센 조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나 좌초하고 말았다.

“어떻게 졌는지도 몰랐어요.” 8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대교눈높이배드민턴팀 숙소에서 만난 나경민은 아직도 8강 탈락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아무것도 묻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드릴 말씀도 없고 모든 것이 미정이에요.”

나경민은 아테네 올림픽이 끝나면 모든 짐을 훌훌 벗어던지고 쉬려고 했다. 마음껏 자고, 마음껏 먹고, 마음껏 여행도 다니고. 하지만 ‘확률 100%’라던 금메달을 놓친 뒤 나경민은 블랙홀에 빠진 듯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서명원 대교눈높이 감독의 설득으로 10일부터 열리는 2004전국가을철실업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6일 팀에 합류했지만 아직 라켓을 잡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내가 이제 뭘 할 수 있을까.” 나경민의 무력감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나경민은 배드민턴을 그만두고 준비하던 대학원(한국체대 박사과정)도 포기하겠다고 밝혀 주위를 놀라게 했다. 다행히 서 감독의 설득으로 앞으로 1∼2년 더 선수생활을 계속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지만 지난 일을 정리하고 새 출발하기는 쉽지 않은 듯했다.

“4년 전 시드니 올림픽 8강전에서 패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너무 뜻밖의 패배여서 경기 중에는 물론 경기가 끝난 뒤에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지는 법’을 몰랐던 거 같아요. 그걸 모르니 지금까지 이러고 있는 것 아닐까요.”

○왜 졌는지 해답 찾아야 진로 결정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직전 혼합복식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나경민은 박주봉, 김동문과 차례로 호흡을 맞추는 동안 국제대회에서 패한 것은 불과 5번. 그중 가장 충격적인 패배를 지난 두 차례의 올림픽 8강전에서 당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나경민에게 특별한 징크스는 없다. 다만 큰 경기를 앞둔 전날 꿈을 많이 꾸는데 8강전을 앞둔 그날도 꿈을 꿨지만 다른 때와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는 것.

그래서 나경민은 더 혼란스럽다. 도대체 질 이유가 없는데 왜 졌을까? 태극마크를 반납하느냐,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도전하느냐의 기로에 선 나경민은 “그 해답을 찾아야 다시 라켓을 들 힘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어이없이 패하고 나면 그 자리에서 라켓을 부러뜨리고 싶지 않는가요?” “그 귀한 걸 왜 부러뜨려요.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일은 없었어요.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그러나 초등학교 4년 때부터 잡은 라켓은 여전히 나경민의 희망이다. 4년 뒤 베이징에서 그의 ‘3전4기’를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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