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펀더멘탈이 부실한 한국 축구의 위기

  • 입력 2002년 8월 22일 11시 08분


요즘 스포츠 신문을 보면 우리가 월드컵에서 세계 4강을 이룬 나라인가 하는 의문이 저절로 든다. 먼저 월드컵 멤버들과 관련된 이슈를 보면, 월드컵 이후 유럽 진출이 활발할 것이라는 기대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던 상황에서 그나마 잘 풀리는 것 같았던 ‘차두리’는 모교인 고려대에서 ‘이적동의서’를 발급 안 해줘서 국제 미아가 될 지경이라고 하고, 한국 축구의 간판이었던 황선홍과 유상철은 무적 선수가 되었으며, 안정환의 진로는 오리무중에 빠져 있다. 또한 홍명보는 LA 갤럭시 진출 문제로 구단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고, 이천수는 필화 사건에 연루되어 곤욕을 치루고 있다. 그나마 송종국, 이을룡, 설기현 등이 제자리를 찾았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새삼 느껴지는 마당이다. 월드컵 이후 우리 선수들이 톡톡히 홍역을 치루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선수들에 관한 이슈 이외에 K리그를 바라보면 더욱 가관인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다. 부천의 ‘최윤겸’ 감독이 전격 경질되는 정말 알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고, 월드컵 열기를 바탕으로 관중 몰이에 성공한 K리그에서는 연일 판정 시비로 얼룩지고 있는 모습이 연출된다. 대표팀을 보면 아이트호벤으로 떠난 히딩크에게 연일 러브콜을 보내는 웃지 못할 풍경이 연출되면서 성인 대표팀 감독 자리에 대한 논의는 교착 상태에 빠진 듯 보인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한 명의 축구 팬으로서 한마디 욕지거리가 튀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정말 개판이군…’

그럼 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 답은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 축구계는 흔히 경제위기 때 쓰이는 용어인 ‘펀더멘탈’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매번 경제 위기가 오면 국민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위정자들은 ‘우리 나라의 펀더멘탈이 건실하기 때문에 그리 큰 위기는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기본이 튼튼하니까 위기가 오더라도 충분히 견딜 수 있으니 국민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것일 테다. 이 펀더멘탈론을 우리 축구계로 옮겨 보자. 과연 우리 축구의 펀더멘탈은 어떤가?

지도자, 구단 행정, 심판 문제, 에이전트, 방송 등등등… 축구의 펀더멘탈이라고 불리는 많은 요소들 중에 그 어느 것 하나 건실한 요소가 있는가? 아직도 선수를 패는 감독, 신임 감독을 리그 초반에 명분 없이 경질하는 구단, 매 경기가 있을 때마다 문제가 되는 심판 판정, 비전문적인 에이전트…. 기본적인 펀더멘탈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평가치를 적용해 보면 우리 축구계는 너무도 부실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그나마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지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많은 이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축구의 이런 부실한 기본 구조가 눈에 보이는 현상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선수들에 관한 이슈만 해도 펀더멘탈을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인 에이전트 시스템의 부실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차두리의 문제만 해도 중간에서 고려대와 원활하게 문제 해결을 중재해 줄 프로페셔널한 에이전트가 없어서 꼬인 부분일 수도 있다. 고대 측에서도 차두리에게 무언가 서운한 점이 있어서 ‘이적동의서’를 발급 안 해 주는 것일 테니 무작정 고대측만 비난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두 당사자간에 커뮤니케이션 혼란에 의한 오해가 있다고 하니 이것을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을용이 터키로 이적에 성공하고 난 직후 언론에 잠시 언급된 내용 중의 하나가 이적료의 일부에 대한 불투명성이었다. 필자 또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이것이 원인이 되어 결국 그의 이적에 공헌을 했던 에이전트가 경질되었다고 한다. 월드컵 이후 선수들의 매니지먼트 문제는 더욱 이런 심각성을 보여준다. 축구 선수를 무슨 연예인 매니지먼트 하는 식으로 대하고 있으니 이천수 필화 사건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선수가 그런 말을 개인적으로 할 수도 있으나, 글로 옮기는 작업에서 에이전트의 의도가 없었으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책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이천수가 이번 일로 심리적 타격을 받아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책임은 어린 선수 뒤에서 장사 속으로 움직인 에이전트가 져야만 할 것이다.

해외에서는 선수의 이적과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에이전트들의 활약으로 인해 구단과 선수 또는 협회 및 스폰서 등이 원활하고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모든 당사자들 사이를 오가며 원활한 혈액의 흐름을 담당하는 스포츠계의 핵심이다. 그러나 우리의 펀더멘탈에는 이런 중요한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에이전트를 전문적으로 육성하고 그들의 존재를 존중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는다면 이런 문제들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단순히 규정에 대해 알고, 법 상식에 대해 아는 것을 테스트하는 에이전트 자격 시험을 치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이다.

아직도 다른 구단의 감독이 된 사람에게 ‘자리 비워둘 테니 2년 후 다시 와 달라’는 러브콜을 보내는 협회, 심판 문제에 불만만 토로하고 근본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투자할 생각이 없는 구단, 월드컵 이후 오히려 축구 프로그램이 줄어 들어 버린 우리 방송의 현실,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며 문을 닫아 가는 축구 관련 회사들, 원칙과 일관성을 잃어버린 많은 행정들… 우리 축구계의 펀더멘탈은 월드컵을 기점으로 안정이 되고 튼튼해 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흔들리고만 있다는 느낌이다.

부디 이런 흔들림이 지각 변동을 예고하는 지층의 움직임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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